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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민지 Nov 13. 2021

폐암 4기인 아빠에게 인생에서 누가 제일 밉냐고 물었다

놀람주의

"아빠,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털어놔 봐."

"뭘?"

"진짜 미웠던 사람이 누구야?"

"...."


아빠가 폐암 판정을 받은 지 3년이 다 되어 간다. 6개월 밖에 못 살거라는 의사의 첫 판정과는 달리 몸에 잘 맞는 표적치료제가 있어 암이 급속도로 줄어 들면서 2년을 별 아픔 없이 지냈다.


"지금은 잘 들어도 내성이 있는 약이니까 계속 경과를 지켜봐야 해요."


그리고 2년 째 되는 해, 약은 더 이상 듣지 않았고, 의사의 말대로 다시 암세포가 온 몸에 퍼졌다. 아빠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어지러워 잘 걷지도 못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병원의 치료로는 병이 낫지 않는다는 걸 경험한 우리 가족은 <이상구박사님의 뉴스타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우리 가족은 그 곳에서 아빠가 병에 걸린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족 사이에서 혼자 맴돌던 아빠, 어릴 적 제대로 된 사랑을 못 받고 할아버지에게 맨날 혼이 나던 아빠, 소심한 성격에 남한테는 한 번도 큰 소리 쳐본 적이 없는 아빠는 모든 고민과 걱정들을 속으로 삼켜왔다. 그런 스트레스들이 모여 담배 한 대 핀 적이 없는 아빠는 끔찍한 질병에 걸렸다.


프로그램을 끝내고 집으로 온 아빠는 어느 날 이렇게 선포했다.


"내일부터 요양병원 들어갈란다"

우리 가족은 깜짝 놀랐지만 별 다른 말 없이 아빠가 인근 지역의 공기 좋은 요양병원에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마다 엄마와 나는 아빠를 보러 1시간 버스를 타고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누룽지, 삶은 밤, 과일 등을 담은 가방을 매주 꼬옥 쥐고 간다.


뉴스타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족간의 사랑이 병을 치유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지 알고부터 나는 아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29년을 어색하게 지냈지만 먼저 다가가 손을 잡았고, 며칠 뒤엔 안았고, 한 달 뒤에는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진 아빠와 나 사이는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다. 그런데 뭔가 하나가 더 남은 듯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빠를 햇빛이 드는 정원에 눕히고 햇살을 마음껏 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 그리고 근육이 다 빠져 앙상한 다리가 안쓰러워 엄마와 난 번갈아 가며 아빠를 산책시켰다.

"여보, 이 정도도 안 걸으면 나중에 진짜 못 걷는데이! 꼭 하루에 만보는 걸어!"


그렇게 산책을 시키고 흔들의자에 셋이 앉아서 멍하게 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쑥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빠, 혹시 아직까지 용서 안 한 미운 사람 있어?"


아빠는 조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대답했다.

"이제 그런 거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털어놔 봐."

"뭘?"

"진짜 미웠던 사람이 누구야?"

"...."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몇 인물이 있었다. 아빠가 30대였던 시절 5000만원을 빌려간 친구가 돈을 떼먹고 나른 일, 술에 취해서 길바닥에서 자고 있는데 왠 20대 청년이 아빠를 구타했던 일, 초등학생이었던 아빠가 거실에서 자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와서 한심하다며 아빠 배를 냅다 걷어찬 일, 사장에게 언어폭력을 들으면서도 노가다를 하러 가야했던 일 등 아빠가 억울하고 미웠을 사람은 많았다.


그런데 아빠의 입에서 나온 인물에 엄마와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진짜 미운 사람?..."

"응"

"나는... 니."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은 엄마를 향했다. 엄마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봤다. 기가 찬 눈빛이었다.


"니는 어떻게 내가 미울 수가 있노!!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엄마의 표정은 분노로 변했다. 이제껏 아빠를 돌봐 준 건 엄마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빠는 엄마가 제일 밉다고 했다.


"젊을 때 나한테 많이 뭐라 캤잖아.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나는 니가 무섭다."


그랬다. 엄마와 아빠는 정말 많이 싸웠다.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서로 쥐어뜯고 싸웠다. 엄마는 매일 소심한 아빠가 답답했고, 아빠는 기 센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엄마가 점점 분노해가자 아빠는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이렇게 가다가는 영영 서로를 미워하게 될까 걱정이 됐다.


"아냐. 엄마. 그만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픈 건 아빠니까. 아빠 입장에서 이해해 주자. 엄마가 성격이 센 건 맞잖아~ 아빠가 얼마나 기가 죽었겠어!"


엄마는 내 말을 듣고 할 말이 더 있지만 꾹 참는 듯 했다.


"아빠도 사실 잘못한게 많으니까 엄마가 화를 내지. 그러니까 아빠가 먼저 엄마한테 사과해. 미안하다고."


아빠는 한 번도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자 아빠는 엄마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여보, 미안하다."

"나도 성격이 너무 세서 미안해. 이제는 나 미워하지 마."


분위기가 훈훈해지자 나도 거들었다.

"아빠, 그렇게 일하면서 수모를 겪었는데도 꾸준히 일 나가서 나 공부시켜줘서 고마워."

나도 이제껏 아빠에게 처음 하는 말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작은 몸짓으로 큰 기계들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일할 때 얼마나 서러웠을까. 어른이 되어야한 부모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이제야 생각났다. 아빠를 미워했던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러자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다. 내 딸인데. 당연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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