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행성의 스텔라에게
1월 27일 오전 7시 7분.
아빠는 행운의 숫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어. 신기하지?
그 때가 새벽 5시 쯤이었던 것 같아. 아빠가 위급하다는 엄마의 전화에 택시를 타고 급히 병원으로 갔어. 3일 못 봤을 뿐인데 아빠 얼굴이 너무 달라져 있더라고. 숨을 헐떡이는 모습에 눈을 봤는데 내가 이제껏 본 수많은 얼굴 중에 가장 섬뜩하고 기괴한 모습이었어. 눈알이 부어서 눈꺼풀 밖으로까지 튀어나온 거야. 아마 넌 상상도 못 할거야. 그 모습은 본 사람만 알 수 있거든.
숨을 겨우 쉬는 아빠는 말을 하나도 못 했어. 숨을 겨우겨우 쉬어간다는 게 그렇게 힘들고 고귀한 일인지 몰랐어. 지금 가장 안타까운 건 마지막 순간에 아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거야. 그런데 난 그 순간까지도 배고픔을 느꼈어. 나 스스로에게 혐오를 느꼈지.
미친년.
아빠가 죽어가는데 식당가서 밥 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면 안 될 것 같더라고. 촉이라는 게 있잖아.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빠가 누워있는 침대를 둘러싸고 가만히 아빠를 쳐다봤어. 언니는 아빠의 손을 잡았고, 엄마는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었지. 아빠의 몸을 만질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나봐. 그렇게 가족의 곁에서 아빠는 힘겹게 숨을 헐떡이다가 숨을 크게 한 번 쉬었어.
드라마나 영화 보면 사람이 죽을 때 기계에서 삐- 소리가 나잖아. 근데 아무 소리도 안 났어. 아빠는 그렇게 예고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마지막 숨을 내쉬었던 거야. 정말 하마터면 아빠가 죽은지 조차 모를정도로 아빠가 숨을 거두는 순간은 고요했어. 가족들끼리 거기 서서 이야기라도 했다면 마지막 숨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아빠의 이기적이고 착한 성격처럼 죽음의 순간도 제멋대로에다가 너무 조용했지.
사람이 죽는데 병실 밖은 너무도 이상하리만큼 다들 자기 일을 하고 있더라고. 맞아. 내가 기대하는 게 이상하지. 병원에서는 원래 사람이 자주 죽으니까. 오늘도 저 사람이 갔구나 싶겠지. 근데 그 순간이 다 세트장 같은 느낌이었어. 진짜... 가족이 죽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 태평하게 날 보고 있어. 화장실 가는 사람, 다른 환자를 보러가는 간호사들, 시끄럽게 떠드는 환자들. 내가 생각한 죽음의 순간과는 너무 다른거야.
다시 시간을 돌려서 소원하나를 말할 수 있다면 아빠의 마지막 순간에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자기가 이 생을 떠난다는 건 아는지, 지금 이 순간 많이 고통스러운지, 남은 가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누워있는 그는 아무 말이 없었지. 나 혼자 상상으로만 아빠의 기분을 예측해야 했어.
지금도 나는 혼잣말을 많이 해. 마치 누군가 앞에 있는 것 처럼 말이야. 아빠와의 순간들을 말하기도 하고, 기억을 더듬어 재조립하기도 해. 혹시나 그 때 이랬으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하지. 그래서 그냥 편하게 그 대상에게 이름을 지어주려고. 네 이름은 스텔라야.
스텔라. 네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나는 몰라. 마블 영화에 나오는 멀티버스 세계처럼 혹시나 나 자신도 어떤 다른 세계에 존재할지도 모르지. 나를 영 모르는 사람보다는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나에게 말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 너는 나처럼 후회없이 하루를 살아가길 바래. 혹시나 그 세계에서 너희 아빠가 아직 살아있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 아빠의 부재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내 앞에 앉아서 잠시 들어줄래?
To. 다른 세상의 모든 스텔라에게
From. 지구의 세상에서 아빠를 잃은 스텔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