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민지 Sep 09. 2022

그 간병사의 말은 듣지 말았어야 했어

세상을 떠난 아빠에게 후회많은 서른살의 딸이

스텔라, 오늘은 아빠의 방에 들어가봤어.


이제 아무도 지키지 않는 그 텅 빈 방에는 아빠가 누워있던 1인용 두툼한 전기장판과 그 옆에는 간이 대변용 플라스틱 의자가 있었지. 그리고 전기장판 맞은편에는 1인용 갈색 소파가 있어. 가끔씩 아빠가 누워서 자는 게 허리가 아파서 너무 힘들 때가 있거든. 말 그대로 아파서 못 누워 있는거야. 그러면 그 차디찬 새벽에 엄마는 몽롱한 정신으로 온 힘을 다해 아빠를 들어서 소파에 앉혀놓고 꾸벅꾸벅 잠깐이라도 졸 수 있도록 해 놓곤 했어. 그리고 한밤 중의 그치지 않는 기침소리. 그 기억들이 막 스쳐지나가서 눈을 꼭 감았어.


내 방 바로 옆이 아빠가 지내던 방이거든. 너무 붙어 있어서 아빠가 하는 행동들, 소리들이 너무나도 잘 들려. 오늘 내 방문을 살짝 닫았는데 아빠 방 문이 세게 '쾅' 하고 닫히더라고. 나는 평소에 이 소리가 너무 싫었어. 아빠가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을까 불만이었단 말이야. "문 좀 살살 닫지..." 하는 불평이 목 끝까지 차올랐어. 그런데 그 문은 원래 그렇게 닫기는 문이었던 거야. 그것도 모르고 나는 화만 냈던 거지.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전기 장판 위에 누웠어. 아빠가 평소에 누워있던 것처럼. 그냥 아빠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나봐. 거기 누워서 문 쪽을 바라보는데 그 방에 누워있는 내 자신이 왜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지는지. 천장은 왜 이렇게 높게 느껴지는지. 아빠가 아마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아. 세상에 홀로 있는 기분. 그 때 처음 아빠의 기분을 온전히 느껴본 것 같아.


인디언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잖아. 


그 사람의 신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Until I walked a long time in the shoes of a man, Do not judge the person.


아빠의 편에 한 번도 서 보지 못한 것 같아. 한 날은 아빠를 보러 병원에 갔는데 가자마자 아빠가 변비약을 사오라는 거야. 병원에서 약을 안 준다며 나보고 직접 약국 가서 사오랬지. 근데 나는 그걸 또 엄마한테 말했어. 그냥 엄마의 허락이 최종적으로 떨어지길 바랬나봐. 늘 그랬던 것 처럼.

 

“엄마, 아빠가 변비약 사오라는데 진짜 사 와?”


엄마는 통화 중이라 잠시 기다려보라며 지금 안 사도 된다고 말했어. 그래서 아빠한테 엄마가 지금 사지 말라고 하던데 라고 전했지. 그랬더니 아빠가 덜컥 짜증을 내더라고.


“아직까지 엄마 말만 듣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 아픈 사람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아픈 사람이 급하다는데 나는 왜 엄마한테 의견을 물었을까. 엄마는 환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인데. 건강한 사람 말만 들었어. 아빠가 얼마나 괴로울지는 생각을 안 한 거야. 문득 문득 내가 얼마나 아픈 사람의 입장에 서지 않고 아빠의 기분을 판단했는지 반성하곤 해. 내 몸 안 아프다고 그 사람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고 나한테 짜증낸다고 미워하곤 했어.


아빠는 그렇게 끈질기게 아픔을 견디면서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사람인 걸 미리 알았어야 했어. 그런데 옆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를 돌보던 간병사가 말하더라고. "이렇게 1년을 더 간호해야한다고." 엄마와 나는 그 말을 듣자 힘이 쭉 빠졌지. 모르겠어.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하는데 이렇게 간병하며 일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그냥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어.


더 이상 길게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뚱한 표정으로 병실에 앉아있는데 아빠는 느꼈던 것 같아. 우리가 많이 지쳤다는 걸. 나도 느꼈어. 순간 아빠를 바라보는 내 눈빛에 원망이 가득 담겨있다는 걸. 그렇지만 절대 아빠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어. 아빠가 그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


나를 보는 아빠의 큰 눈망울이 아직도 기억나. 아빠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 그 날 우리는 그렇게 아빠를 잠시 병실에 혼자 놔두고 병원을 나와서 집으로 향했어. 평소 같으면 혼자 못 있는다고 떼를 쓰는데 오늘 만큼은 다녀오라고 하더라고.


스텔라. 그 간병사의 말은 듣지 말았어야 했어. 아빠는 2달도 못 버티고 눈을 감았잖아. 아빠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그 후회로 오늘 또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해 잠에 쉽게 들지 못할 것 같아.


그래도 오늘은 글 따윈 한 줄도 못 쓰겠다며 컴퓨터를 껐다가도 번득이는 생각에 다시 컴퓨터를 켜서 하얀 빈 화면을 바라봐. 이렇게 꾸역꾸역 쓰면 어제보다는 오늘 좀 더 낫겠지 하는 희망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벽에 똥칠하는 게 잘못된 건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