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그 행성 사람들은 어때?
난 요즘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해.
저들은 자신이 자유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저 순간이 굉장한 축복인 걸 알까?
하루하루 몸의 기능을 상실하는 아빠를 보면서 내 몸을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실이 굉장한 고통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지.
이 닦는 것부터 물 마시는 것까지.
밥 먹는 것부터 똥 싸는 것까지.
모든 것들이 혼자 힘으로 안 될 때, 그건 얼마나 큰 고통일까. 과연 사는 게 사는 걸까.
근데 내가 그 상황이 아니라서 가끔은 아빠가 답답하기도 했고,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서 짜증을 내는 아빠에게 화나기도 했어.
(그렇다고 진짜 화낸 건 아니야.)
그런데 내가 내 몸을 못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나는 감히 그런 감정을 가지면 안 됐던 거야.
그렇게 오늘 나 자신에게 또 과거의 기억으로 질타를 해.
한 날은 엄마가 일 가고 없던 날이었어. 집에는 오로지 아빠와 나 뿐이었지.
아빠는 누워있는 것도 힘들고 앉아있는 것도 힘들기 때문에 가끔씩 자세를 바꿔줘야 하거든.
한 시간 정도 누워있었던 아빠가 휠체어에 앉고 싶어 하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
내가 몸도 자그마하고 근육도 없는 말라깽이라서 엄두가 안 났어. 일단 젖먹던 힘까지 짜서 아빠를 안고 일으켰어. 그런데 다음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 내가 힘이 약한 걸 알고 아빠도 못 움직이는 다리로 안간힘을 썼어. 그 때 내가 약골인 게 굉장히 한탄스러웠지.
그렇게 몇 초간을 대치하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앉겠대. 그래서 천천히 아빠를 침대 위에 내려놓는데 바로 안 눕고 한쪽 엉덩이를 들고 옆으로 앉더라고.
나는 사태를 보고 깜짝 놀랐지 뭐야. 아빠도 힘을 내보려고 노력하다가 똥을 싼 거야.
혹시나 내가 똥을 치우는 데 힘들까봐 살짝 걸터 앉은 거더라고.
아빠는 살면서 우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한 번도 한 적은 없지만 최대한 가족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했어. 한 밤중에도 오줌 쌀 까봐 소변통을 끌어안고 잤고,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건 혼자 해보려고 노력했어. 그것만은 확신해.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이런 대사가 있어.
"벽에 똥칠은 안 해야 할 텐데..."
그런데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 난 그게 더럽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어. 바지에 똥이 참 예쁜 모양으로 앉아있더라고. 그런 게 사랑일까 잠시 생각했어. 혹시나 너가 밥을 먹고 있었다면 미안해. 그런데 이 사건은 굉장히 나한테 큰 깨달음을 줬으니까 이해해줘.
아빠는 살짝 민망했나 봐. 아내한테는 맡겨도 딸한테는 보이고 싶지 않은 순간일 수도 있었을 거야.
그래서 나도 최대한 밝게 아빠한테 괜찮다고 이야기하며 바지를 벗기고 새로 갈아 입혔지.
그리고 몇 분 뒤에 아빠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더라고. 5만원을 손에 쥐어 주면서 말했어.
“조금밖에 못 줘서 미안하다”
나는 그 돈을 받고 한참이나 쳐다봤어. 괜히 꾸깃꾸깃 만졌지. 마음이 아팠어.
그 돈은 아직 내 책상 서랍에 들어있어. 내가 그 돈을 어떻게 쓰겠어. 아마 평생 그 돈은 못 쓸거야.
아빠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데 그런 기억들이 아직도 날 괴롭게 해. 그런데 또 그런 기억들이 삭막한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스텔라, 넌 그런 기억 있어?
마음 아픈데 따뜻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