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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민지 Sep 20. 2022

구역질이 나 밥을 못 먹는 아빠에게 엄마가 한 말

스텔라,

암병동에 있으면 매일매일 많은 일이 일어나.     


먹고 자고 싸고 그걸 하루동안 몇 번 반복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있지.

밖에서 하루를 굉장히 알차게 살다가 여기서 아빠를 간호하고 있으면 하루가 이렇게도 갈 수 있구나... 생각해.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점은 같은 병실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잠깐 이야기했던 사람이 아침이 되면 죽어있다는 거야. 조금씩 나아가는 것 같아서 재활치료를 받으며 이제는 병실 문까지면 걸어볼까 하면서 부축하며 걸었던 환자는 다음 날 싸늘한 시체가 되었어.


한 날은 그런 일도 있었어.

"학생... 학생..."


아빠 옆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소리나는 쪽을 쳐다봤어.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 아저씨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지. 그 분은 며칠 전 암이 급성으로 악화되어 입원하셨어. 가래가 목에 계속 끼는데 그걸 뱉을 힘이 없어서 괴로워 했어. 가래 때문에 숨 막혀 죽을까봐 비상버튼을 손에 꼭 쥐고 있었지.


몸을 전혀 움직일 줄 모르는 분이라 그 버튼은 그 분께 생명과도 같은 거였어.     


그 날은 그 버튼 누르는 기계를 손에서 놓친거야. 불안해 하는 아저씨를 빨리 안심시켜주려고 서둘러 그 버튼을 찾았지. 그 분의 손에 꼭 쥐어주는 순간 그제서야 그 분은 용 쓰던 머리를 침대에 기대며 고맙다고 했어.


그런데 며칠 뒤, 그 아저씨도 세상을 떠났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한 번이라도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 죽는 걸 보면 세상에 과연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하게 돼.


희망이라는 걸 가져도 되는 걸까.

한 번 더 의심하게 되지.


그런데 그 희망의 의미를 엄마를 보고 다시 알게 됐어.


아빠는 마지막 때 쯤엔 음식을 거의 못 먹었어.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했고, 목구멍으로 삼키는 것도 힘이 들어서 못 했지.


그런데도 엄마는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썼어. 암환자는 못 먹어서 죽는다는 말도 있거든. 암과 싸울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잖아.


엄마가 아빠를 먹이기 위해 했던 노력은 정말이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어.     

밥 냄새가 역겨워 헛구역질을 하면 사과를 아주 엷게 썰어 입에 넣어줬고, 기력이 없을 때는 두유를 조금씩 떠서 숟가락으로 먹여줬지. 아기처럼 다른 데로 시선을 돌렸다가 음식을 입에 넣어주기도 했어.

마지막에 물도 삼킬 수 없을 때는 거즈에 물을 묻혀서 입으로 빨 수 있게라도 해줬지. 


그런 엄마가 한 날은 밥 먹기 싫어하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더라고.


“여보, 얼른 나아서 집 가야지~”  


앙상하게 뼈 밖에 없는 아무 몸도 못 움직이는 아빠에게 그런 희망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엄마가 경이로웠어.

황당하기까지 했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있잖아.

아빠는 그 말을 듣고 엄마가 주는 밥을 꾸역꾸역 온 힘을 다해 넘겼어.     


희망이란 그런 건가봐.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기력없이 앉아있는 나에게도 그 때를 생각하며 희망을 불어넣어 보려고.

"민지야, 얼른 나아서 다시 인생 즐겁게 살아봐야지~"


스텔라, 혹시 너도 사는 게 너무 암울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면 내 이야기를 기억해 줘.

희망은 보여서 믿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아도 있을 거라고 간절히 믿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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