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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민지 Oct 17. 2022

독한년이 되는 과정

"저 오늘 운전면허 시험 못 칠 것 같아서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오늘 저희 아빠가 돌아가셨거든요."


스텔라,

아빠가 돌아가신 날 아침에 가장 먼저 전화를 건 곳이 운전면허장이야. 당시 나는 대학원 영어 시험이 2달 남았고, 운전면허를 준비하고 있었고, 매일 아침 학원에 수업을 하러 나갔지.


장례식 3일이 끝난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이 뭔지 알아? 영어 공부야. 내 머릿속엔 슬픔도 있었지만 시험을 준비해야한다는 마음도 한 편 있었어. 그렇게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 만에 대학원 가겠다고 영어공부를 시작했어.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니까. 내가 해야할 일이 뭔지부터 생각했지.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자기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공부한다고 누가 나한테 손가락질할까봐. 나는 내가 독한년인 줄 알았어. 하루종일 영어시험에 몰두하면서 아빠를 아주 쉽게 잊었어. 그렇게 두 달을 미친 듯이 공부했어. 다행히도 시험은 잘 쳤고,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모든 원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나에게 틈이 생겼어. 세상을 돌아볼 틈.


공부하는 사이 아빠가 돌아가신 추운 겨울도 지났어. 아파트 앞에는 분홍색 잎을 보란듯이 뽐내는 벚꽃나무가 폈어. 그런데 기분 좋다기 보다는 말이야,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불편했어. 시간이 너무 잘 갔기 때문이야. 왜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는거야? 나는 그새 모든 걸 잊은 듯 했어.


그런데 말이야, 병간호 하느라 하루를 정신없이 보고, 다시 영어공부 그리고 운전면허까지 따면서 그냥 너무 앞만 보고 달렸나 봐. 모든 게 끝나고 갑자기 찾아온 고요가 나를 이렇게 삼킬 줄은 꿈에도 몰랐어. 열심히 하루를 보냈던 날들은 까맣게 잊고, 하루 하루를 아무 생각없이 허비했어. 옷을 사고, 네일을 하고, 드라마를 봤어. 그리고 문득문득 아빠가 생각났어. 아빠를 오래 기억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나는 자주 아빠가 그립다는 이야기를 했어.


아무도 나에게 아빠를 떠나보내서 괜찮냐는 말을 묻지 않았어. 친구들도 지인들도. 어쩌면 그 말들을 바랬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먼저 이야기 꺼내면 모두의 기분이 다운될까봐. 그런데 아무도 안 물었어. 그래서 나는 괜찮은 척 했어. 그러다가 깨달았어. 나는 아직 내가 아빠를 잃은 줄 몰랐던 거야. 알긴 알았는데 그냥 아빠가 멀리 출장간 것처럼 인식을 했나봐.


그런 거 있잖아. 남자친구랑 헤어져도 바로 슬프지는 않는 것 처럼. 근데 그 다음날 매일 오던 카톡이 안 올 때 그 때서야 깨닫잖아. '아 나 진짜 헤어졌나 보다.' 그리고 그때서야 눈물이 줄줄 흐르지. 


독한년이 아니라 바보였지. 잊은 게 아니라 인지하지 못 한 거야.


그걸 깨닫고 나서 나는 이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어. 하루종일 눈물을 흘렸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어. 뭘 해야할지도 몰랐어. 하필 또 학원의 일도 끊겼던 터라 갈 곳도 없었지. SNS도 안하고,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어. 그렇게 가끔 아빠가 꿈에 나오면 절망같은 한숨을 쉬며 잠에서 깼어.


미래에 대한 계획은 무슨. 오늘 당장 뭘 해야할지에 대한 계획도 없었어. 누가 오늘 뭐 할 거야? 라고 물으면

오늘은 영감을 얻기 위해 넷플릭스를 볼거야. 라고 답했지. 불행하다 생각했고, 그래도 살아있다고 아침에 눈 뜨는 게 내 삶에게 눈치 보였고,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서 여기 저기 태클을 걸었지.     


스텔라,

그런 내가 점점 싫어지더라고. 그래서 다짐했지. 오늘 하루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한 장이라도 쓰자고.     

그렇게 쓰다 보니 알게 됐어. 과거의 기억이 날 괴롭혀서 토하듯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뱉어내야 하는 거라고. 너도 토하듯이 뱉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루에 한 쪽 글로 뱉어 봐. 색다른 일이 펼쳐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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