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난 인생을 너무 내 멋대로 살았나 봐.
요즘 그런 말들 많잖아.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지 말고 스스로의 인생을 살라고. 나는 그 말을 철저하게 따랐어. 지금껏 나 하고싶은대로 살았거든. 내가 하고 싶으면 도전했고, 하기 싫으면 때려쳤어. 그 순간들에 부모님의 의중은 상관없었어. 내 인생이니까. 내 멋대로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생각이 장례식장에서 처참히 무너졌지.
장례식장은 말이야, 내가 쌓아온 모든 인간관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더라고. 내가 이제껏 이뤘던 것들, 들어갔던 회사들은 화환으로 증명이 되고, 나를 생각해주는 지인들은 서울에서 대구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줬지. 같이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어도 귀찮음 때문에 안 온 사람들, 그리고 부조금의 액수로 그 마음이 한 번에 다 들켰어. 속물이라고 말하면 할 수 없지만 액수를 보는 순간 알겠더라고.
사실 우리 집에는 화환이 거의 안 왔어. 아빠가 번듯한 직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거든. 아빠가 대학교 때 동아리 활동 했던 시절의 동창회에서 화환이 하나 오긴했지. 그 외엔 없었어. 나도 딱히 직장을 안 다니고 있었고, 프리랜서로 학원을 다녔지만 학원에서는 비정규직까지 챙기진 않았지. 언니도 결혼해서 직장을 그만둔 탓에 뭐 없었고, 동생도 백수였지. 이렇게 쓰고 보니 자식 셋이 참 너무 제멋대로 살았나 봐.
그렇게 휑한 빈소를 보며 내 지난 날을 후회하고 있는데, 어디서 화환이 우르르 들어오고, 양복입은 사람 여럿이 들어오는 거야. 하나씩 뭔가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마음이 벅차더라고. 알고보니 모두 형부가 다니던 회사 식구들이 우르르 장례식장에 많이 찾아오고, 화환도 여러개 보낸 거였더라고. 다행히 그 덕에 아빠 빈소는 너무 휑하지 않은 곳이 되었어.
조직생활에 대해 참 많이 부정했던 지난 날을 반성했어. 어렵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나름 자리를 잡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면 참 많은 혜택들이 있더라고. 직장생활을 오래 한 형부라도 없었으면 우리 가족이 어떤 꼴이었을지 참 부끄러운 거 있지.
내가 너무 대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신경안 쓴 채 내가 원하는 것만 추구하고 다녔나... 하는 상실감이 갑자기 들었어. 나는 한 번이라도 아빠가 뭘 원하는지 물은 적이 있었나. 너무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한 것 아닐까. 가족이라면서 아빠의 의견을 듣거나 딸로써 아빠가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요소들을 제공을 해줬나.
아빠도 분명 사람들에게 자식을 자랑하고 싶었을 텐데.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고 착실하게 월급 꼬박꼬박 받아가며 그렇게 안정적으로 사는 딸을 바랬을 텐데. 그런 사회적인 시선을 내가 너무 무시하고 그냥 어른들의 꼬장정도로만 생각했나봐.
그리고 마지막 날, 다행히도 내가 책을 출판했던 출판사에서 화환이 하나 들어왔어. 그래도 아빠 가는 길에 화환 하나 내 힘으로 놓은 것이 있어 다행이야.
스텔라,
네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프리랜서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좀 더 열심히 체계적으로 왜 사는 게 좋을거야. 나는 사회적 시선, 돈 버는 것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며 철없는 선비처럼 행동했거든. 조금 더 인생을 전투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거지. 직장인들은 그래서 대단한 것 같아. 매일 같은 시간, 사회적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잖아. 그래서 멍하게 있지말고 이제 조금 더 힘을 내보려고. 그리고 계획을 좀 세우며 목표를 견고히 다지며 사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