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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민지 Oct 06. 2022

돌아가신 일용직 아버지의 휴대폰 메세지함에는

스텔라,

혹시 부모님 휴대폰 본 적 있어?


부모님도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 함부로 보진 못 할거야. 사실 이제 휴대폰은 어떤 소지품의 영역에서 벗어나 개인의 모든 정보 그리고 숨기고 싶은 것들까지 모조리 담겨있는 판도라의 상자같은 것이지.


아빠가 죽고 나서 우리 가족은 한동안 휴대폰을 그대로 놔뒀어. 휴대폰을 없앨 생각도, 해지할 생각조차 없었어. 엄마도 아빠의 휴대폰은 항상 부엌 책상 위에 놔두더라고. 더 이상 전화같은 건 안 와. 그렇지만 없애기에는 참 애매한 물건이랄까.


어느 날 새벽, 잠깐 잠에서 깬 적이 있어. 어둠이 땅까지 내려온 시간에 잠깐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갔다가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에 눈길이 멈췄지. 볼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어. 실망하기 싫어서일 수도, 부모님의 사생활을 엿본다는 죄책감도 있었지.


사실 좀 두렵기도 했어. 내가 몰랐던 사실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 지금은 내가 아빠를 좋게 추억하고 있지만 아빠도 남자니깐. 딸에게 보여주기 싫은 자신만의 무언가 있을 수 있잖아. 아마 아빠는 휴대폰 내용을 정리할 정신도 없었을 거야. 갑자기 뇌 기능이 떨어졌고, 몸을 쓸 수 없었으니까. 그 때 되서는 휴대폰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더라고.


결국 나는 호기심에 졌고, 아빠 휴대폰 전원을 켰어. 빨간색 화웨이 로고가 눈 앞에 반짝이면서 켜지는 동안 심장이 쿵쾅댔지. 전원을 키자마자 메세지들이 마구 쏟아졌어. 알림이 띵- 하고 여러개 울리더라고.


그렇게 미리보기로 보인 문자메세지에는 눈에 익은 단어가 보였어.


[숨고]


내가 아는 그 어플리케이션이 맞나? 순간 의심했어. 이 앱을 아빠가 알리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 문자를 클릭했지.


[숨고] OOO님의 요청이 도착했습니다!

*요청내용 : 옥상공사/방수


아빠 직업은 일용직이었어. 쉽게 말하면 노가다라고들 많이 하지. 그런데 암에 걸리고 나서 일을 못하니까 가장으로써 돈을 못 벌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나 봐.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쓰는 숨고 같은 앱들을 깔아놨더라고. 혹시나 한 번씩 일이 들어오면 그 몸을 이끌고 갈 수 있게 말이야.


그런데 이걸로 일을 받을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 돈 한 푼 더 벌어놓으려고 로그인 하고, 등록하는 법을 혼자 끙끙대며 알아봤을 그 모든 과정들에 마음이 찌릿했어.


그리고 낯선 젊은 여자들 이름이 보이는 그룹채팅방 하나가 눈에 보였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쿵쾅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그 채팅을 클릭했지.


"코인 차액남기는 거라서 10만원만 해보고 공유해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예전 생각이 나더라고. 내가 3년 전 쯤, 유튜브 시작했을 때 엄마가 이야기해줬어. 아빠가 방 안에서 휴대폰 공기계를 여러대 놔두고 내 영상을 하루종일 틀어놓더라고. 그래서 왜 그렇게까지 하냐니까 내 유튜브 조회수를 올려서 하루빨리 수익창출 조건을 맞춰주고 싶대. 아빠 돌아가셔도 내가 유튜브로 돈 벌 수 있게 말이야.     


돈 번다는 거.

아빠는 그게 참 힘들었던 것 같아. 아픈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주식에 손을 댔지. 아빠는 죽기 전까지 주식을 안 놨어. 매일 등락을 보며 단타를 했지. 그게 우리는 너무 답답했어. 다 죽어가는 마당에 주식한다고 말이야.     


그런데 아빠는 조금이라도 더 벌어놓고 세상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나 봐. 아직 자리를 제대로 못 잡은 자식이 셋이나 있으니 말이야. 아빠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어. 그래서 아빠가 하는 행동들의 의중을 잘 모를 때가 많았던 것 같아.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 휴대폰을 보면 대부분 알 수 있는 것 같아. 아빠는 너무 깨끗했어. 마지막까지 돈 걱정을 하다가 간 것 같애.


스텔라,

너에게 부모님의 휴대폰을 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오히려 안 보는 게 더 나을 때가 많을거야. 그렇지만 부모님이 말하지 않아도 항상 너를 생각하고 걱정한다는 사실은 잊지마. 때때로 부모님이 잘못하는 순간도 있을거야. 어쩌면 생각보다 더 과할수도 있지. 그래서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거야. 부모님도 아기였던 너를, 이제는 어른인 너를 대하는 게 이번 생에 처음이잖아. 배운 적이 없지.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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