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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Nov 05. 2022

프린스 메이커 외전 -1-

기사 이야기

 < 태초에 하느님이 계셨으니 모두 그를 경배하라 그는 가시의 하느님이시다 그는 가시들을 이루어 거대한 가시 왕국을 이루셨도다 내 아들의 아들의 아들에게까지 가시를 누리게 하리라 나와 나의 연인에게 가시는 금지되었다 하느님의 품 안에서 우리는 가시에 대한 경배를 외친다 그들의 가시여>


  옛날 옛적 태곳적의 한 음유시인이 지었다고 하는 노래 가사였다. 기사는 그 노랫말을 살며시 따라 불러보았다. 입에 착착 붙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 음유시인도 나와 신세가 비슷했던가 보군."


  기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랬다. 기사는 마왕의 침입으로부터 몇 번이나 이 대륙을 구한 용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왕국으로부터 쫓겨난 낙오자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그가 마왕과의 전투를 거부하고 마왕을 따라 마계로 온 때문이었다. 기사와 마왕은 싸우면서 서로에게 정이 들었다. 기사는 마계를 두고 떠나온 마왕의 슬픔이 온전히 느껴졌다. 마왕도 마왕을 상대해야 하는 기사의 고독이 느껴졌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합의하에 전쟁을 종식시키고 마계로 함께 떠났다.


  마계는 기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들풀조차 자라지 않는 메마른 대지와 매번 폭풍우가 밀려드는 냉혹한 하늘이 있을 뿐이었다. 마실 물조차 구하려고 해도, 거대한 사막을 파고 또 파도 물은 쉽게 나오질 않았다. 오로지 마왕의 성이 있는 곳에서만 물과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 마왕의 배려로 기사는 성 안에서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성 밖으로 나오면 기사는 인간계와 다른 무미건조한 세상에 또 한 번 절망했다. 날이 갈수록 기사는 인간계가 그리워졌다. 생명이 살아 숨 쉬며 매번 아름답게 변해가는 계절을 가진.


  하루는 기사가 마왕에게 말했다.


  "그대, 그대와 함께 하는 것은 행복하지만, 나는 내가 속했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태양빛을 받아 온갖 곡식들이 영글고 생명의 물이 흘러넘치는 인간계로 말이에요. 나와 함께 인간계로 가지 않겠어요?"


  마왕은 기사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대가 얼마나 그대의 세상을 그리워하는지 잘 아오. 그리고 그대가 나와 함께 하고 싶다는 것도. 그러나 나는 마계에 속한 자. 마계를 떠나 인간계로 가게 되면 마계는 나의 속박을 벗어나 혼란스러워지고, 인간계도 나의 영향을 받아 균형이 깨지게 되오. 내 그대에게 잠시 인간계로 돌아가 살 시간을 주겠소. 그 시간 동안 마음껏 지내다 오시오. 내 그대가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겠소."


  기사는 마왕의 말을 듣자,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펐다. 꿈에도 그리던 인간계로 가게 되었지만, 연인이었던 마왕과는 헤어지게 된 것이었다. 기사는 마왕의 손을 잡고 말했다.


  "반드시 돌아올게요. 당신과의 약속을 꼭 지키겠어요."


  마왕의 곁을 떠나 마계의 문을 나서는 내내 기사는 마왕을 몇 번이나 돌아보다 인간계로 떠났다.


  인간계에 도착한 기사는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하늘의 태양을 바라보았다.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태양이 하늘의 지배자로 당당하게 군림한 순간이었다. 기사는 간간히 볼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하늘을 날아오르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인간계에 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마계에 다녀오고 난 뒤로 모두 아름답게 느껴졌다. 기사는 마치 소중한 것을 품는 것처럼 한 발 한 발 천천히 이 땅을 느끼며 인간 왕국을 향해 나아갔다.


  왕국에 도착한 그는 시장 벽보에서 자신에게 현상금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마왕과 밀거래해 왕국을 멸망에 빠뜨리려 한 죄로 무려 황금 100개가 걸려 있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마계의 시간보다 인간계의 시간이 빨라서 그랬는지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는 거의 없었고, 그에게 현상금이 붙은 것도 이미 10년 전의 일이었다. 인간계의 시간이 10년이 지났다 해도 조심해야 할 것은 조심해야 했다. 10년 전의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를 찾아가기로 했다. 친구가 그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 보고 싶었다.


  그는 친구의 10년 나이 든 모습을 상상하며 마을 한 편에 위치한 작은 벽돌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벽돌집의 문이 열리고 나온 것은 건장한 청년이었다.


  "누구신가요?"

  "나는 호아킨 씨의 친구인데, 호아킨 씨는 어디 가셨나?"

  "아, 아버지요. 잠시만요."


  아버지라... 이 친구 결혼한 모양이군. 그렇지만 아이가 생각보다 너무 장성했는걸.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한 40대 중년 남자가 대문으로 나왔다.


  "내 친구라고 해서 나왔는데... 뉘신지?"

  "날세. 가브리에프. 날 몰라 보나, 자네."

  "아니, 자넨... 그때 마계로... 아니, 아니지. 어서 들어오게."


  호아킨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서둘러 기사를 집 안으로 들였다.


  "여기서 자네는 역적일세. 왕이 아주 화가 단단히 나 있단 말일세. 이제 1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야."

  "그건 약간 오해가 있네. 난 마왕과 정전 협정을 하고 함께 마계로 떠난 것인데, 이게 일이 이렇게 꼬일 줄 몰랐네."

  "나야 자네가 신의 없는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금방 왕의 이야기에 넘어가 버렸네. 아무튼 이곳에서는 '가브리에프'라는 이름도 쓰지 말게."

  "좋네. 가브라고 불러주게."

  "자네 아주 기분이 좋은 모양이구먼. 누구는 애가 탈 지경인데..."

  "메마르고 휑한 마계에 있다가 생기 넘치는 인간계 땅으로 오니, 기분이 절로 좋아지더군."


  그때, 호아킨의 옆에 아까 그 청년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청년은 누군가? 아까 보니, 자네를 아버지라 하는 것 같던데..."

  "아, 이 아이는 내 양아들일세. 신에게 기도를 드려 신께서 보내주신 아이지. 10살부터 내가 교육을 시켰다네."

  "그렇군. 자네와 달리 아주 훤칠하게 잘 생겼구먼."

  "내 아들이 잘 생겼지. 카일. 이리 와서 아버지 친구에게 인사해라."

  "안녕하세요, 기사님. 저는 카일이라고 합니다. 존함은 아버지로부터 익히 들어왔습니다. 왕국을 지킨 용사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왕국을 지키긴... 이젠 현상수배범에 불과하네. 그래도 말이라도 고맙네."

  "아녜요. 저도 기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기사님이 존경스러워요."


  기사는 훤칠하게 생긴 카일의 모습을 보자, 문득 자신이 이 아이를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떤가? 나에게 기사 수업을 받아보는 게. 호아킨,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야 자네가 이 아이를 가르쳐준다면야 더 바랄 게 없지. 카일, 네 생각은 어떠니?"

  "저도 좋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가브 삼촌."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이때부터 기사는 정식으로 카일의 스승이 되어 카일을 기사로 만드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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