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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Jun 12. 2023

인어 아가씨 -1-

  "최유진 환자 분, 1번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사방이 흰 백지로 도배되어 있는 차갑다면 한없이 차갑게 느껴질 것 같은 이곳. 이곳은 서울시 소재의 한 종합병원 정신과 진료실. 나는 이 진료실의 30대의 젊은 의사 유익환이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막 정신과 전문의를 달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에 수 십 건의 진료를 해내야 하는 실정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텐션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진료실의 미닫이 문이 열리면서 긴 머리를 풀어헤친 20대 여성이 들어와 앉았다.


  "최유진 씨, 이번 주도 잘 지내셨나요?"

  "......"


  이 여자, 좀처럼 대답이 없다. 하긴, 이 여자는 처음부터 말이 없었다. 정말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햇볕이 좋네요."


  그녀는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온몸으로 즐기는 듯이 창 쪽으로 몸을 틀어 앉았다. 그 자세는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인어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랬다. 그녀는 인어였다. 아니, 자신을 인어라고 여기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처음 우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초여름 어둑어둑한 한밤중에 한강 근처 벤치에서 발견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조차 몰랐다. 다만, 그녀의 신원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가방 안에 있던 작은 노트 표지에 적힌 '최유진'이라는 이름뿐이었다. 발견된 곳에서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병원은 신원도 알 수 없는 그녀를 받아들였다. 아니, 사실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우리 병원의 병원장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 최고급 브랜드라는 것을 알아보고, 재벌가의 숨겨진 딸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그녀를 잘 보살피고 있으면 그녀를 소리 소문 없이 찾고 있던 재벌그룹 측에서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녀를 맡게 된 우리 병원에서는 그녀를 '최유진' 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녀는 환자복 위에 자신이 처음 올 때부터 입고 있었던 나풀나풀거리는 노란 스웨터를 더욱 나풀거리며 병원 이곳저곳을 신기한 듯이 돌아다녔다. 하루는 병동 TV에서 동물의 왕국 해저 편을 방송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닷속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뭔가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최유진 씨, 뭐 하고 계세요?"


  한 간호사가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곳은 내 고향이에요."

  "고향이요?"

  "......"


  그녀는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우리들은 그녀를 '인어 아가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실 정신과 병동에서는 관계자들이 부르는 환자마다의 별칭이 있었다. 팔을 자주 긁는 환자 두영철 씨는 '비버', 자신이 여자 예수라고 생각하는 오나라 씨는 '마리아'가 그런 예였다. 최유진 씨도 마찬가지였다. 인어 아가씨. 바다가 자신의 고향이라니, 인어 외에 더 이상 떠오르는 단어는 없었다. 인어 망상에 걸린 한 젊은 여자. 그녀는 도대체 어디서 왔고, 왜 한강 근처에서 발견되었을까.


  그녀에 대한 실마리가 밝혀진 것은 그다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경찰 측에서 병원으로 연락이 왔다. 어떤 남자가 20대 여성을 간절히 찾고 있다는. 그 여성이 최유진 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경찰과 수소문한 남자가 직접 그녀를 확인하겠다고 병원에 방문했다. 남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덥석 부둥켜안았다.


  "지영아."


  그러나 그녀는 남자가 자신을 부둥켜안자마자, 신경질적으로 뿌리치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는 듯이 남자의 손이 닿았던 자신의 몸을 쓰다듬었다.


  "누, 누구세요?"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은 그녀를 향해 울먹거리며 말했다.


  "나야, 유진이. 지영아,  나 못 알아보겠어?"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저리 가세요."


  경찰과 병원 관계자에게 자신이 '최유진'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인어 아가씨가 자신과 결혼했던 사이라고 밝혔다. 이름은 윤지영. 그녀는 대형 아쿠아리움에서 인어 쇼를 했었다고 했다. 아, 그래서 자신을 인어라고 생각했던 거였구나. 그제야 병원의 간호사들과 보호사, 의사인 나도 그녀의 말과 행동을 납득할 수 있었다. 우리는 경찰에게 남자가 찾는 여성이 인어 아가씨가 맞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우리의 말을 들은 경찰들은 그녀를 남성과 함께 데려가려 했지만, 그녀는 좀처럼 남성과 함께 떠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성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남성은 우리 의료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영이 좀 데려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나 우리 의료진은 그녀가 아직 정신 상태가 병리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그녀를 병원에 두고 차차 기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겠다고 남성을 설득했다. 남성은 결국 포기하고 경찰과 함께 병원을 떠났다.


  그때부터였다. 그녀가 히스테릭해진 것이.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민하고 까칠하게 굴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다만, 창으로 햇볕이 들어올 때만 아늑하고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예 그녀를 위해 햇볕 벤치를 만들어 그녀가 그곳에 앉아 햇볕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모든 정신과 프로그램을 한결같이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것은 산책이었다. 보호사들과 함께 병원 밖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정오에 하는 그 산책을 너무나 좋아했다. 햇볕을 쐬는 것이면 모든지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햇볕을 쬐면서 마치 인어처럼 다리를 옆으로 꼰 채로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우리는 그녀가 정말 인어가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남자는 매주 토요일 정오에 그녀를 면회하러 왔다. 남자는 그녀가 기억할 만한 추억의 증거를 가져와 그녀 앞에 내밀었다. 그와 그녀가 함께 찍은 웨딩사진과 둘이 나눠 맞춘 반지, 그녀가 키우던 강아지 푸들 사진 등. 남자는 헌신적일 정도로 그녀에게 정성을 들였다. 제발 돌아와 달라고 남자는 그녀에게 애걸복걸했다.


  "지영아, 제발 날 알아봐 줘."


  그러나 그럴수록 그녀는 남자에게 냉랭한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그를 잔뜩 경계하는 눈빛조차도 보였다.


  "선생님, 제발 저 남자 좀 안 보게 해 주세요."


  도대체 그녀는 왜 저 남자를 그렇게 싫어하는 것일까. 기억을 잃어서 낯설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무의식 속에 그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어서일까. 그게 어떤 것이든 그녀의 기억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팩트였다. 그녀의 기억이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 좋을까. 의료진으로서 그녀가 기억을 찾게 하는 것이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악영향이 되어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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