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갈해리 Jun 30. 2023

노을이 지는 시간과 첫눈이 내리는 시간(시 버전)

첫눈처럼 그대에게 가겠다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의 한가운데에

노을과 첫눈은 평생에 단 한 번

교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첫눈이 내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던 나는

노을이 지는 시간 속에 살고 있던 그대와

우연하고도 소중한 찰나에 만났다


한없이 시원한 바람을 내주는 느티나무 같던 그대는,

내게 언제나 자신의 곁을 내어 주고는 나의 사소한

의지와 선택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 준다


삶의 때가 묻어 있는 것이 아닌 삶의 나이테가 있는 그대는,

자신의 남은 생을 나에게 허락하고는 나와 함께

그 삶을 영유하기를 간절히 갈망한다


첫눈이 내리는 시간 속에서 추위에 사무치게 떨고 있던

나는, 한없이 따스한 노을빛에 감싸여 저 먼 수평선 위를

부유하는 민들레 떼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비록 그대는 노을이 지고 곧 어두운 밤을 맞이하겠지만

비록 곧 나는 첫눈이 내리고 추운 겨울을 맞이하겠지만

우리가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존재한다


사랑하는 자만이 존재의 존엄성을 안다고 했던가


그래, 그대와 나는 평생에 단 한 번 스치듯 이어져

이제 남은 시간 동안 그 인연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노을처럼 나에게 올 테고

나는 첫눈처럼 그대에게 가겠다


<노을이 지는 시간과 첫눈이 내리는 시간>



이전 18화 인어 아가씨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