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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Dec 13. 2021

노을이 지는 시간과 첫눈이 내리는 시간

노년의 신사와 30대 청년의 사랑 이야기


<노을이 지는 시간에 대하여>


  그와 나는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 그는 노을이 지는 시간에 살고 있고, 나는 첫눈이 내리는 시간에 살고 있다. 왜 이렇게 표현했느냐 하면 그는 황혼에 접어들고 있는 나이였기에 노을이 지는 시간이었고, 나는 초겨울 첫눈이 내리던 때에 태어났기 때문에 첫눈이 내리는 시간이었다. 그는 내가 겪었던 일들을 이미 30년은 먼저 겪어내고 모진 풍파를 견뎌낸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새파란 철없는 청년에 불과했다. 그런 우리가 만난 지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그의 어떤 면이 가장 끌렸냐면 그것은 그의 느린 대답이었다. 대개 나의 아버지뻘의 사람들은 성격이 급했고 다혈질이었으며, 뭐든지 빨리빨리를 외치곤 했다. 이것은 그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유전자 같은 것이었다. 전후 피폐했던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너도 나도 가난을 물리치고 먹고살기 위해 신성한 노동을 했던 그때. 그때의 유전자가 아버지뻘의 사람들에게는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도 다른 중년들처럼 빨리빨리 행동해야 할 때는 적절히 빠르게 행동했지만, 그는 나와 있을 때에는 한없이 느리고 여유롭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재촉하는 법이 없었고, 나의 생각의 속도나 의사결정을 존중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나는 다른 어른들과 있을 때와는 달리 의사결정의 자유와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한 번은 나이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이유에 대해 절친한 친구가 물어온 적이 있었다. 친구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지."


  그랬다. 그는 앞에 말한 것과 같이 한 번도 조급증을 낸 적도 없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조급함을 드러낸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지 깊이 숙고했고 그 숙고의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럴 때 그의 입에서는 논리 정연하며 감성과 이성을 넘나드는 어떤 통찰이 담긴 대답이 나오곤 했다. 아직 치기 어리고 세상을 더 알아갈 나이인 30대의 나는 그런 그에게 가끔씩 조언을 구하곤 했다. 조언을 구할 때마다 그는 전혀 귀찮아하는 법 없이 내 얘기를 끝까지 듣고 기다려준 다음에 그제야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하지만 의견의 마지막에는 항상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이것도 충고일 뿐이야.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게 옳아."


  이렇게 그는 나의 의견이나 생각을 존중해줬다. 단지 얼굴에 주름살이 많고, 머리는 희끗희끗해져가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의 주름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도 진보적이었는데, 가끔씩 요새 이슈가 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나와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 그만큼 나와 일상을 함께 하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가 없었다.


  그는 패션 센스도 꽤 있는 편이어서 그리 비싸지 않은 옷들을 사서 적절히 기품 있어 보이게 배치했다. 젊은 사람들도 별로 선호하지 않는 청청패션도 그가 입으면 멋있고 기품 있게 탈바꿈했다. 게다가 그는 적당히 운동을 해서 슬림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옷을 입을 때마다 태가 났다. 그와 함께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면 사방에서 옷 잘 입는 미중년이라며 함께 사진 찍기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쇄도하곤 했다.


  이런 그였기에 나는 그의 나이는 더 이상 걱정되지 않았다. 솔직히 나이 걱정을 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아니, 그에 대한 믿음이라든가, 그가 내게 주는 안정감이 타인을 의식하지 않게 만들었다.





<첫눈이 내리는 시간에 대하여>


  그와 나는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 그는 첫눈이 내리는 시간에 살고 있고, 나는 노을이 지는 시간에 살고 있다. 그는 첫눈처럼 맑고 깨끗하고 티 없는 존재였고, 나는 노을처럼 금방이라도 아스라 질 것만 같은 존재였다. 그는 내가 겪어온 일들을 30년 후에나 겪겠지만, 언제나 모험 정신과 희망에 차 있었고 도전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은행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질 듯 말 듯한 아슬아슬한 공중제비를 하고 있는 노년의 신사에 불과했다. 그런 우리가 만난 지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그에게 끌렸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환한 웃음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 어디서나 힘든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꿋꿋이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정열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련과 고통에 맞서서 자신을 무장할 줄 알았고 그것을 최대한 자신의 능력치로 승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청년실업이 대두되고 있는 현시대. 열심히 공부하고 각종 스펙을 쌓아도 취업의 문턱에서는 한없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 청년은 오뚝이처럼 바로바로 일어서는 저돌적인 면이 있었다. 실업의 상황 속에서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만도 한데, 학자금 대출은 아직 다 갚지도 못한 상황인데도 이 청년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누구보다 먼저 그 임무를 맡으려고 했다. 그런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의 말끔한 외적인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내면에 성실함과 충실함이 가득 차 있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한 번은 나의 평생지기가 한참 나이 어린 아들뻘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의아해하며 물어온 적이 있었다. 도대체 어떤 면이 마음에 들기에 그 친구를 만나냐며.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열적이고 저돌적이야.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


  그랬다. 그는 앞에 말한 것과 같이 한 번도 못하겠다고, 안 되겠다고 포기하는 법이 없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려고 한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 것에 열정적이었고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실천에 옮겼다. 그런 그를 볼 때마다 나는 30년 전의 나를 떠올리기보다는 새로운 인류가 탄생했다는 충격을 받곤 했다. 30년 전의 나는 이 친구만큼 열정과 노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친구를 존경하며 한편으로는 전적으로 신뢰한다.


  또, 그는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라든가, 예의범절 같은 것이 깍듯했다. 그의 부모님께서 그를 잘 키웠노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언제 어디서든 감사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조언을 구할 때조차도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매번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렇게 그는 나의 의견이나 생각을 존중해줬다. 단지 나에 비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노화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잔잔한 호수처럼 깊이가 있었다. 어떨 때는 그의 생각은 나보다도 보수적일 때가 많았는데, 내 부모님의 기일이나 제사를 먼저 챙겨주는 모습이 그랬다. 그런 면은 꽤 많이 감격스러웠다.


  그는 음주 가무에 능통했는데, 아무래도 회사 생활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음악을 알고 있어서 가끔씩 나와 요즘 젊은이들이 간다는 코인 노래방을 가서 노래를 부르는데, 트로트나 가곡을 간드러지거나 구성지게 잘 부르는 편이었다. 그와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으면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다.


  그런 그였기에 나는 그와의 관계가 더 이상 걱정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기도 했고, 그의 친구들 역시 나를 스스럼없이 대해주기 때문에 나는 그와의 연애가 즐겁다. 나는 이미 그의 열정과 성실함을 보았기 때문에 그가 내게 주는 행복감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자체가 내게는 전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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