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독특한 놀이가 있었는데 할머니가 "눈" 하면 할아버지는 좀 서투른 몸짓으로 손가락을 자신의 눈 주위에 댑니다.
할머니가 "귀" 하면 할아버지는 귀를 잡고 "배꼽" 하면 겉옷을 들쳐 배꼽을 할머니에게 드러냅니다.
이 놀이를 하며 두 분은 웃다 울 정도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백발이 다 된 노부부가 어린아이처럼 이 놀이를 시작하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할머니는 먼 곳에 살고 있는 손자가 보고 싶었고 손자와 함께 눈, 코, 입 하며 놀았던 기억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심정을 잘 아는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부르는 대로 예전 손자의 몸짓을 흉내 냈던 것입니다.
따뜻한 편지 2311호
노부부의 특별한 놀이에는 자식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부모의 애틋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배려하고 위로하려는 할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 소포클레스 –
*출처 : 따뜻한 편지 2311호
따뜻한 편지 2311호 <노부부의 특별한 놀이> 편 잘 읽었습니다. 손주를 그리워하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지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부부의 모습이 뭔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사진=MBN '강석우의 종점여행' 방송 화면 캡처
저와 동생이 서른을 넘겨 어느덧 결혼 적령기에 다다르자, 부모님께서 부쩍 외로움을 타시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우스갯소리로 "손주 하나 있으면 좋겠구먼." 하시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 저는 가슴이 찡하니, 아픕니다. 왜냐하면 제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일은 없을 테니까요.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사춘기가 왔을 때부터 남자인 저는 같은 남자를 좋아했습니다.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남들에게 제 마음을 쉽게 내보일 수가 없었는데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해야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다른 제 모습은 돌연변이나 외계인처럼 이상하게 느껴질 테니까요. 다행히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많이 변화되었지만, 아직도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호모새끼, 동성애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밥먹다' 홍석천 /사진=SBS플러스 방송화면 캡처
저는 부모님께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성인이 되기 전에 일찍 말씀드렸는데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께 대들다가 아버지가 집을 나가라 하셔서 우발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온 건데요. 중학교 2학년 때 동성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친구에게 반강제로 성관계를 당한 것을 얘기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으신 듯싶었습니다. 그때 흥분해서 아버지께 그런 말을 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20살 때에는 제 애인을 집에 몰래 데려와 성관계를 하다가 여동생이 알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성관계하는 장면을 본 것은 아니고, 애인과 제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동안 여동생은 제게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 여동생이 "그래도 내 오빠니까 이해해 볼게."라는 말을 해줘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탈반(이반에서 벗어나다)' - 다시 벽장 속으로 들어가다. 출처 : 친구사이 홈페이지
그 뒤로 아버지와 여동생은 동성애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찾아본 모양이었습니다. 하루는 여동생이 제게 '탈반하는 방법'(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바뀌는 방법)을 알려주는 만화를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동생은 "오빠, 노력하면 바뀔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건 기호를 묻는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나는 원래부터 남자한테 더 끌렸고, 남자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여동생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실망했지만, 그래도 여러 정보를 많이 알아봐 준 것만 해도 고마웠습니다. 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거니까요.
저는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아무도 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게이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놀면서 그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흥청망청 노는 것은 잠시 해방감만 들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몸과 마음의 건강만 날이 갈수록 나빠질 뿐이었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게이 세계에 대한 경험은 쌓아 나갔지만, 딱히 제 사람이라고 할 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연인처럼, 부부처럼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며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원했지만, 그런 사람은 여태껏 없었습니다.
▲꼬북이가 그린 몽실이와 꼬북이 캐릭터
그러다가 SNS를 통해 꼬북이(그의 애칭)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꼬북이는 제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듬뿍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만의 틀이 확고했고, 그 결과 꼬북이와의 4년 가까이 된 연애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그 뒤로도 꼬북이와는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고 있습니다만, 저는 아직도 제 짝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성애자 친구들은 벌써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고 있을 즈음이겠죠. 저는 그들처럼 할 수 없는 것이 슬프고 서럽습니다. 하다 못해 동성애자는 입양조차도 할 수 없는 현실이라니요. 아이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너무나 괴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제 자신을 속이고 여자를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도 몹쓸 짓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차마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집 반려견 쿠키와 버터
부모님께서 요즘 들어 저희 가족이 기르는 반려견들을 애지중지하시는 게 마치 손주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부모님께서 반려견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시거나 간식을 주실 때마다 "**아!"라고 그 아이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저에게는 처량하게만 들려옵니다. 저야말로 제 자식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차마 성관계도, 결혼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 이 글을 빌려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못난 자식이어서 죄송합니다. 너무나 죄송합니다···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아서······. 차마 용서해 달라는 말씀은 못 드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