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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Mar 10. 2023

물 밖의 물고기 / 신라의 불가능한 꿈

<따뜻한 편지 2328호>를 읽고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바로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맹자의 격언입니다.


동남아에 서식하고 있는 '등목어'라는 물고기는 주로 혼탁한 수질과 수초가 많은 지역에 있는데 극도로 불리한 수질 조건에도 견딜 수 있습니다. 등목어는 한문으로 오를 등, 나무 목자로 말 그대로 나무에도 올라갑니다.


길이 25cm 남짓한 이 독특한 물고기는 아가미덮개에 뒤쪽을 향해 뻗은 가시가 있습니다. 양쪽에 하나씩 있는 그 아가미덮개를 뻗어 교대로 바닥을 짚고 튼튼한 꼬리로 힘차게 밀면서 나무 위를 기어 올라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등목어를 클라이밍 퍼치(Climbing perch)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따뜻한 편지 2328호

보통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그저 퍼덕거리다 죽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물 밖의 물고기'라는 꼼짝 못 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물고기에게 '물 밖'이라는 환경이 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등목어'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내 삶에 갑자기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려울 때 가장 많이 성장합니다.



# 오늘의 명언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자가 강물의 세기를 안다.

– 우드로 윌슨 –


*출처 : 따뜻한 편지 2328호


따뜻한 편지 2328호 <물 밖의 물고기> 편 잘 읽었습니다. 물고기들은 도무지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던 물 밖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등목어 같은 물고기도 있군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적응해 나갈 수 없는 환경이라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환경에서 적응해 나갈 수도, 그 고난을 헤쳐나갈 수도 있군요. 결국 환경 탓, 고난 탓만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 출처 : 구글 이미지

오늘은 드라마 <선덕여왕>과 실제 선덕여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신라를 배경으로 한 <선덕여왕>은 선덕여왕, 즉 덕만의 일대기를 그린 사극인데요. 특히, 미실과 덕만의 대결을 재밌게 본 시청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명대사와 어록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저는 그중에서도 이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왕들이 자주 했던 말인 '불가능한 꿈'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진흥왕의 전성기 전까지 신라는 정말 작고도 약한 나라였습니다. 내물 마립간 시절에는 서라벌로 쳐들어 온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광개토 대왕에게 군사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번번이 쳐들어오는 고구려와 백제 군사를 막기에도 급급했죠. 그런 보잘것없는 신라가 진흥왕 덕택에 한강 유역까지 진출해 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의 군세는 여전히 강성했고, 때로는 신라가 수세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신라의 사정을 잘 아는 진흥왕이었던지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태손인 백정(훗날 진평왕)에게 '불가능한 꿈'을 꾸라고 유지(遺志)를 내린 것이었습니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 출처 : 구글 이미지

'불가능한 꿈' 이야기는 그 후 몇십 년이 지나고 덕만이 스스로 왕이 되겠다 외치면서 또 한 번 등장합니다. 여인의 몸으로 왕이 되겠다고 선언한 덕만. 그런 덕만은 계략으로 미실을 속여 신권(神權)을 차지하고 국선(國仙) 문노가 낸 수수께끼를 맞히면서 선조들이 말한 '불가능한 꿈'이 바로 삼한일통(三韓一統:삼한통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덕만은 삼한일통의 대업을 준비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던 고급 철로 농기구를 생산함은 물론, 황무지를 개간하고 우경(牛耕)을 도입해 식량 생산을 폭발적으로 증대시켰습니다. 또한, 고리대를 저리대로 낮춰 민생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일단 백성들이 먹고사는 것이 풍족해져야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신라는 날이 갈수록 부유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너무 민생에만 치중해서였을까요. 선덕여왕 말기인 서기 642년 백제의 의자왕이 쳐들어와 40여 개의 성을 점령하고, 신라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대야성을 함락했습니다. 한 마디로, 촘촘해야 할 국가의 안보에 구멍이 난 것이었습니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때, 상장군 김유신이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백제의 군사를 물리치지 않았다면 아마 신라의 도성인 월성은 백제 군사의 말발굽에 짓밟혔을 것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비담의 최후. 출처 : 구글 이미지

그렇게 선덕여왕의 위기가 시작되었고, 그 위기는 곧 절정으로 치달았습니다. "여자 군주는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라며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이 반란은 김춘추와 김유신에 의해서 며칠 만에 진압되었지만, 선덕여왕은 반란 도중에 승하(昇遐)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선덕여왕은 비록 백제와 고구려의 군사에게 신라가 수세에 몰리고 귀족들의 반란이 일어나 잠시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용해 그 기반을 닦은 왕으로, 현대의 사학자들에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작고도 약한 나라 신라가 불가능한 꿈인 대신국(통일신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오점은 다소 있지만, 그 외에도 진흥왕 이후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 태종 무열왕 등의 훌륭한 왕들의 치적과 김유신과 같은 화랑들의 뛰어난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물 밖의 물고기 신세였던 신라가 등목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환경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환경을 개척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대구 부인사 숭모전에 안치된 선덕여왕 상상화 어진.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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