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배우 '피터 딘클리지'는 132cm에서 멈추는 왜소증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남들과 다른 자기 모습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유머러스한 장점을 발견하며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배우로 성장하기까지 현실의 벽을 통감하게 하는 잔인한 말들과 상황을 수없이 겪어야 했습니다. 왜소증을 가진 배우에겐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역할이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젠가는 진중한 주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배우에 대한 꿈이 살아있었기에 어떤 배역이든 최선을 다했으며 결국 뛰어난 그의 연기력은 영화계에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눈여겨봤던 어느 감독의 러브콜을 받게 되는데 바로 자신처럼 왜소증을 가진 장애인을 다룬 영화 '스테이션 에이전트'에 주연 역할이었습니다.
현대인의 쓸쓸함과 고독함을 보여준 이 영화는 대호평받으며 각종 상을 휩쓸었고 그의 인지도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2011년 HBO의 메가 히트작이자 블록버스터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가문의 아들임에도 왜소증으로 인해 멸시를 당하지만 결국 최고의 전략가로 우뚝 서는 캐릭터로 연기했습니다.
이 작품 이후 그는 에미상 최우수 남우조연상, 골든글로브 최우수 남우조연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해당 부문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습니다.
▲따뜻한 편지 2329호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지만 준비만 하는 사람에겐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 과감하게 도전하세요.
# 오늘의 명언
세상에 "나는 준비 됐어"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보여주세요. 그냥 하세요.
– 피터 딘클리지 –
*출처 : 따뜻한 편지 2329호
따뜻한 편지 2329호 <132cm의 작은 거인> 편 잘 읽었습니다. 키 132cm에서 멈추는 왜소증을 가지고 태어난 미국의 유명 배우 피터 딘클리지는 배우로 성장하기까지 현실의 벽을 통감하게 하는 잔인한 말들과 상황을 수없이 겪어야 했지만, 자신의 꿈을 믿고 어떤 배역이든 최선을 다해 결국, 영화 '스테이션 에이전트'와 드라마 '왕좌의 게임' 등을 통해 최우수 남우조연상과 같은 수많은 상을 받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군요.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했기에, 그리고 최선을 다했기에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군요. "그냥 보여주세요, 그냥 하세요."라는 피터 딘클리지의 말처럼 여러분들도 최선을 다하는, 배짱 있게 도전하는 나를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피터 딘클리지만큼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끊임없는 도전과 끈기로 위대한 업적을 낸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인데요. 우선, 스티븐 호킹 하면 생각나는 것은 휠체어와 금속성의 목소리죠. '빅뱅이론'이니 '아기우주'니 하는 그의 학문적 업적보다 고개조차 스스로 가눌 수 없는 그의 루게릭병을, 사람들은 먼저 떠올립니다. "루게릭병이 아니었더라도 지금 같은 물리학자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읽고 쓰는 일에 지금같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대신 강연하고 시험점수 매기느라 연구를 제대로 못했을 것이므로 결국 루게릭병이 저를 이론 물리학자로 만든 셈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왼손의 손가락 두 개와 얼굴 근육 일부분뿐이었고, 폐렴으로 기관지 제거수술을 받은 후에는 목소리마저 완전히 잃었습니다. 처음 목소리를 잃고 나서의 의사소통 방법은 비서가 옆에서 알파벳을 적은 카드를 들어 보이면 그중 원하는 카드에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휠체어 앞에 달린 컴퓨터를 이용했습니다. 커서가 2,600 단어 위를 빠르게 움직이다 원하는 단어 위에 갔을 때 스위치를 누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겨우 한 문장을 만들면 음성합성기가 미국식 발음으로 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1분에 10개 단어가 고작이었지만 말이죠.
옥스퍼드를 3년 만에 마치고 스무 살에 케임브리지대학 박사과정에 갈 때만 해도 그는 건강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조정선수로도 활약했는데요. 그러나 케임브리지에 갔을 때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자꾸 넘어졌습니다. 풍토병을 연구하는 학자였던 아버지는 그를 전문의에게 데려갔고, 마침내 근육이 점점 수축되어 심장근육에까지 이르면 사망하는 루게릭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육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잃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요. 그는 놀랍게도 전보다 행복해졌다며, "제가 사형선고를 받았고, 지금이 집행유예 기간이라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https://warmachine.tistory.com/95
몸이 악화되어 갈수록 그는 밖에서 더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예견했던 우주 '특이점'의 존재를 그는 스물세 살 때 박사학위 논문에서 증명해 냈습니다. 서른두 살 때는 영국 학술원의 최연소 회원이 되면서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습니다. 1977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의 중력물리학 정교수로 임명됐습니다. 기관지 제거수술을 한 지 3년 후인 1988년에는 《시간의 역사》를 펴내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책은 20개국에서 1천만 권 이상 팔렸으며, 미국 베스트셀러 차트에 55주 머물렀습니다. 또한, 과학 분야에서 수십 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으면 어떤 기분인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스티븐 호킹을 별다른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가능한 한 정상적으로 살려고 하고, 내 상태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실제로는 못하는 일도 별로 없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유머감각과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갔습니다. 이렇듯 일생의 대부분을 기계에 의지했어도 꿋꿋이 살아온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18년 3월 14일 새벽,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과학계 인사들뿐 아니라, 영국 정치인들과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큰 별이 졌다'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오늘은 피터 딘클리지와 스티븐 호킹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 두 사람은 시련 앞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에서도 유머감각과 여유를 잃지 않고, 더 열심히 살았죠. 우리도 상황이 악조건이라 해서 무조건 환경 탓만 하지 말고, 이들처럼 스스로의 인생을 알차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시간의 역사'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