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일 일요일
그렇게 CU 삼산농산물시장점에서 일을 마치면, 나는 곧바로 GS25 연남호호점으로 이동한다. 삼산농산물시장 버스 정류장에서 555번 버스를 타고, 갈산역 정류장에서 내려 갈산역에서 환승해 계양역까지 인천 1호선을 타고 가고, 계양역에서 홍대입구역까지 공항철도를 타고 간다. 장장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 그래도 오후 1시까지 연남동 매장에 도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다.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와 5~7분 정도 연남동 골목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GS25 연남호호점이 보인다. 일한 지 1주 차가 되는 연남호호점은 일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몇 개월 전에도 이곳에 면접을 보러 왔는데, 그때 중년 여성 분이신 사장님이 인상이 좋은 분이셔서 기억하고 있었더랬다. 근데 이번에 다시 면접을 보러 왔는데, 사장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글 쓴다고 했었죠?"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때 서로 얘기 많이 나눴잖아요. 그때 인상이 참 좋았어, ㅇㅇ씨."
"감사합니다."
이번 면접은 일찌감치 면접 1시간 전인 오후 2시에 와서 카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본 것이라 시간적 여유든, 정신적 여유든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나는 그 여유 있는 시간 동안 작성한 (편의점 경력을 상세하게 적은) 이력서를 사장님께 보여 드렸다.
"경력이 되게 많네. 한 매장에서 4년이나 근무했네. 사장님하고 신뢰가 깊겠네."
"그렇죠. 사장님이 좋은 분이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일은 완전히 마스터했겠네."
"네. 웬만한 일은 다 할 줄 압니다. 나중에 점포도 차리고 싶기도 해서..."
"그렇구나. 난 ㅇㅇ씨랑 같이 일해보고 싶네. 근데 4시 면접이 또 있어서... 4시 30분까지 연남동에서 기다려 줄 수 있을까? 통과되든, 안 되든 연락 줄게요. 물론. 통과되는 쪽이 높겠지만."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오후 3시 면접을 보고 나서 나는 매장을 나와 연남동 인근을 슬렁슬렁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 괜찮은 카페 하나를 발견해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4시 10분쯤 연남호호점 사장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지금 매장으로 와 줄 수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매장에 도착하자, 사장님이 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매장 이곳저곳을 소개하셨다.
"여기는 과자, 라면 창고... 여기는 워크인... 여기에 쓰레기를 모아놔요."
그런데 그때 그 시간에 일하던 스토어 매니저가 다가와 사장님께 말했다.
"사장님, 면접 보러 오셨습니다."
"뭐? 4시가 넘었는데... ㅇㅇ씨, 잠깐만 매장 좀 둘러보고 있어요."
사장님은 면접자를 접견하러 가시고, 나는 매장을 좀 더 둘러보았다. 근데 4시까지 오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지각한 건가? 사장님과 면접자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4시까진데, 왜 이렇게 늦었어요?"
"홍대입구까지 오는 길이 너무 복잡해서요..."
면접자는 별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길이 복잡할 걸 예상했으면 30분, 1시간 더 일찍 와서 길을 찾아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사람을 글러 먹었네.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은 그 면접자와 짧게 대화하고, 돌려보내 버렸다. 사장님은 내게로 와서 매장 일을 더 상세하게 알려 주시고, 월요일부터 일해 보자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해서 2월 24일부터 이 연남호호점에서 월화수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게 되었는데, 매번 여유 있게 30분 전에 도착해 오전 근무자와 인수인계를 한다.
그런데 첫날, 인수인계를 하면서 시재점검을 하는데, 돈통에 100원짜리가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이거 100원짜리 동전이 하나도 없는데, 왜 안 채우신 건가요?"
"제 타임에 발생한 게 아니라서 안 했습니다."
이게 말인지, 방귀인지... 자기 시간에 발생 안 했다 해도 돈을 넉넉히 준비해 놓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냥 놔뒀다가 다음 근무자만 일 시키는 꼴이지 않나?
오전 근무자의 어이없는 태도가 황당했지만, 첫날이니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손님 한 분이 삼각김밥을 들고 계산하러 오셨는데, 오전 근무자가 바코드를 찍자마자, 유통기한 경과 상품이라고 경고 알림이 떴다.
"유통기한 검수 안 하셨어요?"
"제시간에 해당되는 게 아니라서 안 했습니다."
이건 또 뭔 개소리? 원래 매 시간대마다 유통기한 상품 확인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새벽 2시라고 해도 오전 근무자가 보고 폐기등록했어야 하는 건데... 이 사람, 책임감이 없구나. 일을 대충대충 하네.
그래도 첫날이니, 괜한 잡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사장님이 면접 볼 때 오전 근무자 얘기를 하셨는데, 괜한 걱정이 상당히 많으셨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인수인계를 마치고, 오전 근무자는 퇴근하고, 나는 혼자 일을 시작했다. 오후 1시 30분쯤 간편식 유통기한 검수를 하고, 오후 2시에 포스기에 폐기 상품들을 폐기 등록 저장했다. 담배 재고 조사와 봉투 재고 조사는 매일 하라는 사장님의 전언이 있으셨기에 담배 재고를 전수 조사하고, 봉투 재고 조사는 오후 4시 되기 전에 시작했다.
번화가인 홍대 근처여서 그런지, 손님이 정말 많이 오고 갔다. 또, 젊음의 거리 홍대여서 그런지 젊은 층의 손님들이 매장에 많이 들어왔다. 시식대 코너에 앉아서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을 먹는 사람들도 왕왕 눈에 띄었다.
이 매장의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온다는 것이다. 외국인 손님이 와서 영어로 얘기하는데, 처음에는 꽤나 당황했지만, 국제통용어인 바디랭귀지와 눈치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소통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외국인 손님 분들에게 1+1, 2+1 행사 상품에 대해 설명해 주기까지 해서 나름 뿌듯했다.
그러나 GS25에서 주로 일해왔던 게 아니었고, 일해봐야 2개월도 안 되는 시간을 일했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공병 반품 등록이라든가, 배달 서비스는 CU와는 체계가 많이 달라 새롭게 배워야 했는데, 다행히 나와 교대하는 저녁 근무자 분이 체계적으로 알려주셔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오전 근무자와 달리, 저녁 근무자 분과는 트러블 없이 잘 지낼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기도 했다.
수요일에는 사장님이 오셔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는데, 사장님이 현재 시국에 대해 말씀하셨다.
"ㅇㅇ씨는 윤석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네? 윤석열이요?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밖에 안 돼요? 난 아주 안 좋게 생각해요. 빨리 탄핵이 되어야 할 텐데... 소상공인들 요즘 아주 죽을 맛이거든. 번화가인 이곳 홍대도 요즘 경기 때문에 폐업하고, 임대 내놓는 데가 수두룩해. 정말 살기 힘들어."
"그렇군요."
사장님은 시국에 대해 한탄을 하시다가 "수고해요. 그럼 난 볼 일이 있어서 가볼게요."하시고 매장을 나가셨다.
요즘 경기도 안 좋아서 알바 자리도 구하기 어려워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과연 그런 것 같았다. 저번 면접에도 수십 명이 지원했다고 하는 것 보니 말이다. 어서 시국이 해결되고, 경기가 풀렸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퇴근시간이 다가와 저녁 근무자와 인수인계하고, 서둘러 매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