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6일 화요일
내가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을 앓은 지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병을 앓기 전에도 잦은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은 있어 왔는데, 병을 앓고 나서는 그전보다 감정을 조절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조현병의 뜻 그대로 나의 정신줄을 잡고 살기가 그만큼 힘들어진 것이다. 거기다가 편집증적인 증세까지 더해져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기까지 하니, 감각은 점점 예민해졌고, 성격은 까칠하게 변했다. 뭐, 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내 성격은 예민하고, 까칠했지만.
무엇보다도 이 병을 앓으면서 불편한 것은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마치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사람들의 눈빛, 말투, 행동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혐오하고, 급기야 해코지하는 것으로 보이곤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이것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상처받는 내 마음을 애써 위로하고, 불편한 감정을 억누른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이 반복되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계속해서 무시나 혐오, 공격의 대상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증상이 심해지면 나는 결국 일조차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두문불출한 채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다. 그리고 약을 먹고 잠을 잔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그런 환각과 망상들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까.
요즘에 편의점 세 곳에서 일하다 보니, 쉬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로 인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게 받고 있다. 스트레스를 자주 받다 보니, 요새 병증이 다시 도지고 있는데, 이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아는 방법이라고는 음악이나 드라마 감상이나 글쓰기가 전부다. 그래도 음악을 듣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쓰는 것이 내게 나름 위안이 되기에 꾸준히 해보려고는 한다. 그래도 조절하기 힘들다면 그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얘기하거나 병원을 찾아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청한다.
최근, 편의점 앞 교회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와서는 "나 쟤 싫어."라고 하는 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나 표정이 사나워 보였다. 나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사람들이 왜 이유도 없이 나를 싫어할까? 이것도 망상일 거야. 나는 애써 내 기분을 달래며, 내 착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언행이 마치 나를 향한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달갑지가 않았다. 사람들의 눈빛과 말소리, 행동 등이 나를 계속 지치고 힘들게 했다. 분명히 실재하는 그런 것들이 아닐 텐데, 나는 왜 실제 벌어지는 일처럼 여겨질까. 정말 힘들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사장님께 양해를 구해 먼지 털기와 바닥청소, 유리 닦기 등의 일을 다음 주로 미루고, 물건 채우는 것만 하고 퇴근했다.
다음 날인 월요일, 나는 정신과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이런 증상들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실재하는 일이 아닌 망상과 환청이라며, 자꾸 내 방식대로 해석하거나 확대 해석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약을 제때에 잘 복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물론 약이야 매일 아침마다 잘 복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한번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인지행동치료 같은 상담치료가 필요한데, 선생님은 상담은 약을 잘 복용하고 나서 차후에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뭔가 선생님의 진료방식이 조금 불만이기는 했지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틀린 것 같지는 않아 일단 따라보기로 했다. 한 달 뒤인 10월 13일 다시 병원에 오기로 예약을 잡고,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병원을 나왔다.
다시 병증이 도지면서 안정적이었던 내 생활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제발 병증이 도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병증을 잘 다스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매번 이런 패턴을 반복하는 게 너무 힘이 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주변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내 증상이 망상과 환청임을 알고, 내가 증상에 시달릴 때마다 내 왜곡된 인지상태를 바로 잡아주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런 그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내가 내 증상을 인지하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이다.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져도 실재하는 게 아닌 거라고 굳게 믿고, 마음을 최대한 평온하게 다스려보는 것. 그것이 내가 조현병을 극복하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