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과기실, 읍참마속의 주인공 마속
나는 어렸을 때부터 행동보다는 말이 앞서는 아이였다.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잔뜩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대찬 공약을 걸어 기대를 심어놓고 결국은 실행하지 못해 사람들의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늘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데도 당장 선생님과 부모님의 꾸중을 모면하기 위해 '내일부터는 지각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공수표를 날렸고, 담배를 하루 한 갑 이상 피우는데도 '곧 끊을 거야.'라고 핑계를 댔다. 말이 앞서고 행동이 뒤쳐지는 일이 잦아지자, 나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은 내가 무슨 약속을 하면 믿지 않기에 이르렀다.
"쟤는 보나 마나 약속을 안 지킬 거야."
"**이는 언제나 말이 앞서. 행동으로 보여준 적이 없거든."
이쯤 되자,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 같아 초조해지고 불안해졌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고, 그들과 꾸준히 신뢰 관계를 이어 나갔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인데, 주변 사람들은 내 말 한마디가 깃털만큼이나 가볍다는 사실에 실망해 버리고, 더 이상 나를 믿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내 기억 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삼국지의 인물 중 한 사람인 마속이었다. 고사성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주인공이기도 한 마속은, 삼국지 세 나라 중 촉한 사람으로, 원래는 형주의 유명인사인 마량의 막냇동생이었다. 마씨 오 형제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었는데, 그중에 마량과 마속의 재능이 가장 출중했다. 마량이 형주를 다스리던 유비의 수하가 되면서 마속도 유비 밑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마속은 마량과 함께 제갈량을 보좌하면서 형주의 정사를 맡아보게 되었는데, 그때 제갈량의 마음에 들게 된다. 그 후, 유비가 황제가 되고 관우의 복수를 하기 위한 형주 정벌전(이릉대전)에서 대패하면서 유비는 병을 얻어 백제성(영안궁)에서 칩거하게 된다. 유비는 자신의 임종이 다가오자, 제갈량, 조운 등 문무백관을 불러 유훈을 남긴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유언을 남기려 할 때, 한쪽에 서 있던 관료가 바로 마속이었다. 유비는 마속에게 나가 있으라 명하고, 마속이 나가자, 제갈량에게 말한다.
"승상은 저 사람(마속)을 어떻게 보시오?"
"마속은 가히 뛰어난 인재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언과기실하니, 중하게 쓸 그릇이 아니오. 명심하시오."
"예, 폐하."
여기서 유비가 한 말인 언과기실. 말인즉은, 말이 사실보다 과장되고 실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을 통찰하는 능력을 가졌던 유비는 마속의 진가를 꿰뚫어 보고, 실행력보다 말이 앞선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훗날, 위나라를 토벌하는 북벌의 총사령관이 된 제갈량은 위나라의 총사령관이 된 사마의에 맞서 가정을 지킬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 그때 마속이 기꺼이 자원해 나선다. 제갈량은 남만 전투 등 여러 번 자신에게 계책을 진언했던 마속의 출중함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믿고, 그와 함께 부장으로 왕평을 가정으로 보낸다. 그러나 마속은 산 밑 진군로에 진영을 세우라고 했던 제갈량의 명령을 무시하고, 산 위에 진영을 세워 독자적으로 사마의에 대항하려 한다. 반면, 부장 왕평은 제갈량의 명령대로 진군로에 진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의견은 갈렸고, 결국 대장인 마속은 산 위에, 부장 왕평은 진군로에 소규모의 진영을 세운다. 이윽고 사마의의 대군이 도착하고, 적군 촉한의 진영과 형세를 파악한 사마의는 즉시 산을 포위하고, 물길을 끊어 마속군의 피를 말리고, 사기를 떨어뜨린다. 결국 사마의는 마속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가정을 빼앗는 데 성공한다.
제갈량은 가정 전투에서 대패하고, 모든 군대를 수습해 한중으로 회군한 뒤, 대패하고 돌아온 마속의 머리를 베면서 통곡을 하면서 운다. 주위 사람들은 통곡하는 제갈량에게 어째서 우는지 물었는데, 이에 제갈량은 전에 유비가 한 말이 기억이 나서 선주 유비의 현명함에 탄복해 울었고, 마속의 무능함을 꿰뚫어 보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면서 울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전 삼국지에서 읽었던 마속의 고사가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마속처럼 말만 앞서고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가 장차 큰일을 하지도 못하고 초주검을 당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 또한, 마속처럼 자기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오만하게 굴다가는 얼마 못 가 주변의 지탄을 받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사람 간의 신뢰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 첫 번째가 말을 앞세우지 않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천에 옮기는 데 있어 왕평처럼 성실함과 꾸준함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앞으로는 더디더라도 꾸준한 행동의 중요함을 알고, 크고 작은 약속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