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벽거수의 달인 사마의
현대 사회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일까? 뛰어난 언변과 임기응변 능력, 완벽한 처세술 등등 여러 가지 덕목이 있겠지만, 나는 '인내(忍耐)'가 가장 큰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 역시 삼국지의 시대처럼 난세(亂世)라 할 수 있겠는데, 너나없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 중국 삼국시대의 군웅할거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집안에서는 한 사람의 가장이자, 주인이지만, 사회 속에서는 누군가의 을이요, 노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내'라는 덕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끈기와 인내가 없다면 큰 일을 도모하기 힘들며, 끈기와 인내 없이 그때그때 형편 되는 대로 산다면 종국에는 남는 것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 인내의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을 보면서 우리네 인생을 돌아보자. 견벽거수의 달인 사마의와 함께 삼국지를 배워 보자.
사마의가 왜 인내의 베테랑일까? 사마의는 첫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사마의의 아버지인 사마방은 지금의 서울시장 격인 경조윤까지 지낸 한나라의 고위 관료였다. 즉, 사마의는 태생부터 금수저, 엘리트 가문 출신인 것이었다. 그때 한나라 조정을 장악한 것은 조조였는데, 조조 밑에는 순욱, 순유, 곽가, 정욱 등의 뛰어난 책사들과 하후돈, 하후연, 조인, 허저 등의 용감한 장수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때 사마의는 학식이 뛰어난 젊은 청년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의 진가를 알아본 순욱과 최염은 그를 조조에게 천거했다. 조조는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이려 했는데, 사마의는 마음속으로는 큰 뜻을 품고 있었지만, 조조와 원소의 대결(관도대전)이 임박한 시점에서 조조가 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관절염'이라는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그 후, 조조가 다시 불렀을 때(적벽대전)도 핑계를 대면서 응하지 않았다가 결국 조조가 협박을 하면서 그를 부르자, 그제야 조정에 나아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점만 봐도 사마의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다른 이의 협박과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참을성 있게 자신의 실력을 펼칠 시기를 기다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조는 사마의가 낭고상(이리처럼 뒤를 잘 돌아본다)인 것을 알고는 그가 언젠가 반역을 꿈꾼다고 생각해 그에게 요직을 맡기지 않았고, 하급관리의 일과 가축에게 여물을 주는 일 등의 한직에 머물게 했다. 사마의는 조조의 철저한 외면에도 굴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하찮은 일도 손수 해나가면서 일을 수행했고, 한직에서 중앙 관리직으로 점점 승진하게 된다. 그 사이 사마의는 조조의 아들 조비와 교제하면서 조비의 호감을 사게 되고, 조비의 책사 역할을 하면서 사마의의 입지는 점점 성장하게 된다. 그때, 관우가 번성을 침공해 번성을 지키던 조인이 수세에 몰리고, 위나라의 수도인 허도를 천도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들려오자, 사마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조에게 오나라의 손권과 연합해 형주를 치자는 계책을 진언한다. 조조는 사마의의 계책대로 손권과 연합해 관우를 죽이는 데 성공하고, 큰 근심거리를 덜어낸다. (사마의는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타이밍을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를 위해 끈기 있게 자신의 시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후, 조조와 조비가 죽고, 조예가 위나라의 황제가 되었을 때, 촉한의 제갈량이 북벌을 일으켜 위나라를 침공해 온다. 제갈량은 사마의가 자신의 최대의 라이벌인 것을 알고, 마속의 계책대로 사마의에 대한 비방을 위나라에 퍼뜨려 사마의를 실각시킨다. 사마의는 고향에 머물면서 시기를 관망하다가 신성태수 맹달이 제갈량과 내통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8일이라는 단시간 만에 신성을 함락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촉한의 보급 급소인 가정을 공격하고, 가정을 지키던 마속을 패퇴시키고, 촉한의 북벌을 좌절시킨다. 물론, 서성에서 제갈량의 공성계를 간파하지 못하고, 복병이 있을 것을 의심해 퇴각하지만, 이 역시 판단하기에 따라서는 일부러 제갈량을 살려둬 위나라 군대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는 심산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마의는 자신의 최대 라이벌인 제갈량마저도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계책을 실행해 나가는 면에서 어쩌면 제갈량보다도 정치적이며, 영악한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연의상에서 제갈량과의 전투에서는 사마의는 항상 일관되게 수비에 치중한다. 그래서 사마의가 견벽거수(벽을 바라보며 수비만 하다)의 달인인 것이다. 적인 제갈량군의 보급물자가 떨어지거나 촉한의 내정에 문제가 생기기를 기다리면서 사마의는 성문을 굳게 닫아건다. 그 결과, 제갈량은 정말로 보급품이 떨어지거나 촉한 내부에 문제가 생겨 퇴각을 하기에 이른다. 종국에는 제갈량 자신이 유명을 달리해 자신의 죽음을 계략으로 이용해 사마의를 꼬여 내지만 말이다. 결국 사마의는 제갈량의 계책에 끝내 넘어가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이라는 표현이 생겨날 정도로, 체면이 크게 깎인다. (견벽거수의 달인인 사마의가 제갈량의 피를 말려 결국에는 오장원에서 유명을 달리할 정도로 타격을 준 것은 전쟁이라는 대국에서 사마의가 제갈량에게 최종적으로 이겼다고 할 수 있겠다.)
제갈량 사후, 사마의는 위나라 조정을 점점 장악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인 조상을 무릎 꿇리고, 조정을 완전히 장악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사마의는 사마사, 사마소 두 아들에게 군권과 정권을 맡기고, 여생을 누리다 71세라는, 그 당시에는 장수(長壽)라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숨을 거둔다. 그는 뛰어난 책사요, 영리한 정치가였고, 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초석을 닦은 최후의 승자였다. 그와 같이 성공하고 싶다면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기회가 왔을 때 낚아챌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오늘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사마의가 주는 교훈은 참으로 귀중하다고 할 수 있다. 최후의 승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인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