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카톡 창을 열어 지인들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보낸다. 이제 지겨울 법도 한데, 매일같이 안부를 묻는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 작은 안녕이라는 인사가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요즘같은 시국에 안녕이라는 말이 무척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천 명을 넘어서는 확진자들과 좀처럼 안녕할 수 없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어제 하루를 잘 보내고 오늘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른다.
원래 코로나 시국이 있기 전에도 나의 안녕 습관은 계속 되었는데, 특히 연락이 뜸해진 친구에게 갑작스레 안녕이라는 말과 함께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을 덧붙인다. 대개 친구들은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인사로 인해 멀어졌던 친구와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친구도 처음에는 어색해 했지만, 곧이어 잘 지내냐, 힘내라 등의 응원 메시지를 보내온다. 우리는 대개 소원해진 사이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곤 한다. 어떤 적당한 말을 건네야 어색해진 사이가 풀릴 수 있을까. 적당한 말이란 없다. 그저 안녕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어렸을 때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 항상 안녕이라는 인사를 해왔다. 그런데 나이가 먹을수록 우리는 안녕이라는 말이 가진 위대함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안녕이란 말이 유치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안녕이라고 하면 괜히 할 말 없으니 둘러대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자. 안녕이라는 말처럼 상대방을 생각하고 존중하는 말이 있을까. 내가 서두에 얘기했듯 안녕이라는 말은 하루를 잘 보내고 있느냐는, 건강하고 평안하냐는 말이다. 이 말처럼 상대를 위한 배려의 말이 있을까.
우리는 점점 안녕하지 못하고 산다. 이 힘든 코로나 시국 때문인지, 미친듯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집값과 물가 때문인지, 나의 힘든 일상 때문인지 우리는 안녕을 전하지 못하고 산다. 청년실업과 노인 일자리, 학자금 대출, 육아휴직 문제 등은 우리의 허리를 온전히 펴지 못하도록 짓누르고 있다. 언제쯤 이 험난한 시기가 지나갈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우리의 대화창도 닫혀가고 있다. 그리고 타인과의 공감도 사라져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안녕하세요 하고 상대방에게 인사를 건네보자. 굳게 닫힌 카톡의 대화창을 열고 우리 함께 안녕하자고 기운을 북돋아주자. 안녕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나는 오늘도 카톡창에 안녕이라는 두 글자를 전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