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야 미안해, 사랑해!

내 자신에게 진심 사과한다.

by 해피영희

살면서 내가 제일 서러웠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참 많이 아파 울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라는 묘약으로 그때의 쓰라린 감정들이 많이 옅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들 나는 자신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했을까? 얼마나 최선의 아군역할을 했을까?

사는게 무어라고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슬펐는지 제대로 뒤돌아보는 시간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가만 생각해 보니 특정 언제라고 정의하기가 어렵다. 다만 몇 번은 또렷하다.

첫 번째 딸을 낳고 얼마후 중등영어교사 임용이 떨어진 그 순간, 시 어머니가 딸을 낳았다고 묘한 핍박을 할 때 나는 나를 보호하지 못하고 오롯이 그 순간을 몸으로 받아 내었다.

서럽게 울면서도 나를 위해 남편에게 시어머니에게 한마디도 못하고 몸으로 다 쌓아 담았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을 때 나는 아들을 내 손으로 기르고 싶었다.

그런데 시 어머니는 기어코 그 아이를 시골집으로 데려가 키우고 싶어 하셨다.

그때 내편은 한명도 없었다. 남편도 시누이도, 심지어 친정엄마까지도 내가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

아파트 주차장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산후우울증과 함께 나는 병들어가고 있었는데 나는 또 내가 양보하고 그 숨막히는 감정들을 내 몸에 쌓아올렸다.



태생적으로 감정이 많던 나는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았다.

그러나 직장과 육아로 지쳐 나의 감정들이 메말라 갈 때 나를 숨쉬게 하는 방법은 찾지 않고 매번 내가 양보하고 내가 해야 하고 내가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그러니 몸이 아팠다. 한때 오진으로 뇌종양이라고 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돈 한푼이 아까웠고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얼 위해 살고 있었을까?


난 슈퍼우먼 콤플렉스였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 좋은 딸, 유능한 직원, 착한 친구를 꿈꾸며 살았다. 그러니 회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육아의 대부분은 내 차지였고 회식이 있어도 내가 양보해야 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2003.4월 토요일 오후, 교육통계 업무 담당자였던 나는 관내 유,초,중학교의 자료를 프로그램에 입력하고 수정작업을 해야 하는데 아이 때문에 사무실을 갈수가 없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이동식 메모리가 없었던지라 깊은 고민 끝에 사무실 컴퓨터 본체를 낑낑거리며 집으로 들고 와서 아이를 옆에 앉혀두고 일을 했었다.


그런 시간중에도 지금처럼 중간중간 숨구멍을 열어주지 못했다.

한치의 선이 어긋나면 큰일나는 것처럼 늘 나를 몰아세우고 인내하고 양보하게 했다. 그러다 아프면 내 성격이 별나고 나빠서라고 받아들였다. 그게 과연 내 생각인지 주변의 조각된 관념인지 따져보지도 않은채....


그러니 몸과 마음이 늘 아팠다. 늘 내가 일번이 아니고 타인이나 사회의 시선이 우선이었다.

내 자아는 늘 서러운데 얼굴은 웃고 있는 아이러니였고 마음은 너덜하다 못해 삭아 사라질 판이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무식하게 나를 몰아갔을까? 나이 40이 다 되어서야 스스로 돌아보고 쓰다듬어 주는 시간을 만났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했어야 했다. 부모님께 형제들에게도 이번에는 안 되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좀 이기적인 사람이 되더라도 직장에서 내 입장을 전달했어야 했다. 마냥 희생하는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나 참 잘 버텨주었다. 그만큼이나 애쓰며 내 자신을 잘 지키고 있었기에 오늘 이만큼 또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마냥 허무하게 쓰러졌다면 지금 내가 어디 있겠는가?

내 자신에게 정말 사과한다.

무식한 주인을 만나 인권 없는 노예처럼 마음고생하고 살아온 내 영혼!

지금보다 좀 더 반짝일 수 있었음에도 늘 목마른 갈증으로 살아온 나!


이제는 뭉쳐진 아픔의 덩어리가 좀 옅어지고 녹아내리면 좋겠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내 자신을 마냥 편하게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하도록 할 것이다.

싫지만 어쩔수 없이가 아니라 최소한 내가 납득 가능한 공감대라도 만든 후 시작할 것이다.

그래야 나의 영혼들이 숨을 쉴 테니까.


내가 나로 살아감에 큰 후회는 없지만 영혼을 갈아넣고 버틴 시간에 어떤 설명도 격려도 없이 견디기만 하라고 강요한 나 자신에게 사과한다.

다만 알면서 그런 잔인함을 행하지는 않았다는 다소 비겁한 변명을 한다.

그렇게도 그때는 몸도 마음도 어린 불쌍한 나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나는 대단한 긍정가이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다.

표현을 못했다는 것이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언제나 나는 내가 애탔고 누구보다 열심히 잘살고 싶었다.

그랬기에 그나마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아닌가 싶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래~ 표현해 보지 뭐. 무엇이 그리 어렵다고.

앞으로는 나를 위해 더 잘 먹고 더 잘 자고 더 이쁜 것 많이 해 줘야지. 그리고 더 많이 안아 줘야지.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해피영희 최고!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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