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우리 대부분은 주어진 체력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니 어떤 영역보다 건강은 타고 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측면에서 저는 안타깝게도 선천적 에너지가 너무도 빈약하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5살 무렵 어느날 평소처럼 잠을 자고 일어난 저는 사지마비가 되어 버렸습니다. 신경이 죽어 아픔도 못느끼고 안지도 서지도 못했습니다.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그렇게 되어 버렸으니까요.
저는 상리면 동산리라는 30여 가구가 있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1남 5녀 중 넷째로 태어난 저는 아들을 간절히 바라던 집안의 소망과는 거리가 먼 어정정한 존재였습니다.
그래도 요즘 말로 우리 어른들이 참 배운 분들이었나 봅니다. 할머니는 전국을 다 뒤집어서라도 아픈 손녀를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아픈 저를 들쳐업고 다녔습니다. 그 시절 분명 돈도 시간도 부담이 컸을텐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를 지켜준 할머니가 진심 눈물로 감사합니다.
5살에서 7살, 2년 사이 얼핏 얼핏 기억들이 조각으로 존재합니다.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가 주말을 마친 새벽, 부산에서 경남 고성으로 출근하기 위해 깜깜한 병실에서 옷을 주섬주섬 입던 뒷모습, 어느 시골 정류장 평상에서 할머니가 쉬기 위해 나를 묶었던 포대기를 풀자 힘없이 뒤로 나 뒹굴던 내 몸 뚱아리, 45도 가파른 오르막을 할머니가 저를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던 시간, 지압 치료사가 아픈 제 팔다리의 감각을 되돌리기 위해 이리 저리 비틀던 손길.....
그 시간 어느 것이 나의 신체와 결합 되어 제가 회복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어느 날 저는 벽을 붙들고 걷고 지팡이를 집고 걷고 하다 총총히 걷고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아픈 손가락이 된 저는 형제들 중 누구보다 입도 야무지고 공부도 잘하고 고집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에 대한 특권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연약한 소화력과 실날같이 가느다란 신경으로 급격한 스트레스라도 받을라치면 졸도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제가 피곤해지고 아파지면 엄마는 틈틈이 보약을 해 먹이곤 했습니다. 덕분에 전 평생 통통한 모습으로 외적으로는 누가 봐도 튼튼한 사람이었습니다.
몸이 힘들어도 원래 그런 거라며 살고 정말 힘들면 병원에 입원하고 한 40년을 살았습니다.
원체 에너지가 없으니 주말은 밀린 잠으로 채워지고 회사 일도 겨우겨우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삶의 파도를 맞아 저 바닥까지 에너지를 소진하고 숨만 겨우 유지하며 도저히 바뀌지 않고는 더 이상 살수없다는 공포심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을 싹 다 뒤집었습니다. 야행성을 새벽형으로 바꾸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허상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던 살들이 제거되고 평생을 괴롭히던 위염이 줄어들고 피부도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운동을 일정 시간 이상하고 나면 만나는 러너 하이 포인트의 쾌감은 중독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제가 운동을 시작한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2011.12.30. 그날 저는 헬스장에 등록을 했거든요.
만 10년 세월이 되어 갑니다. 그동안 거의 하루도 안 빼고 운동을 했습니다. 365일 중 355일은 운동을 합니다. 출장, 여행, 친척집 방문,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더워도 추워도 그 상황에 맞는 운동은 존재합니다.
너무 아파 몸을 못 움직이는 날만 어쩔 수 없이 건너뛰는 겁니다.
아파트 계단 걷기를 하는 제 모습을 본 이웃이 물었습니다.
“ 정말 운동을 열심히 하시네요. 진짜 건강하시겠어요?”
“ 아니에요. 몸이 안 좋아서 운동하는 거에요. 정말 죽지 않을려고 운동하는 거에요.”
정말 그랬습니다. 운동을 시작하자 살이 빠지면서 몸의 움직임이 가벼워지고 생활 전반이 부지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일도 늘어나고 주말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각종 자격증 공부도 가능하고 엄청난 몰입 독서도 가능해졌습니다.
당연히 성취감이 높아지고 긍정의 선순환이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그 짜릿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운동을 해야 했습니다.
죽을 듯 힘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숨차게 뛰면서 몸을 혹사시키면 그 힘듦을 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날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겁니다.
운동을 하기 전 저의 예민함은 최강이었습니다. 손목시계의 초침 소리, 계절이 바뀐 이불의 솜 무게, 거실에서 안방으로 들려오는 친척의 숨소리는 불면증의 원인이었고 출장, 여행, 명절로 인해 만나는 음식과 화장실의 변화는 반드시 변비를 만나 몸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일상을 벗어난 생활은 언감생신 이었습니다. 2006년 회사에서 개최한 어느 대회에서 1등을 해서 금강산을 공짜로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집을 떠나는 예민함의 불편함이 무서워 전 그 특전을 정중히 거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바보~)
그랬던 제가 변한 겁니다. 그러니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것이지요.
스트레스로 1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하면 약 200만원은 병원비와 각종 부대비용, 보약 비용으로 한순간 사라집니다. 평소 몇천원 몇만원이 아까워 못 쓰다 한순간 몸을 괴롭혀가면 돈을 태워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저는 늘 말합니다. 최고의 재테크는 건강이라고.
5시 알람 소리에 일어나 새벽 운동을 위해 옷을 입고 나섭니다. 9월의 5시는 어둠으로 창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내려오니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아차! 안 되지 안 되지, 이렇게 쉽게 물러나면 안 되지. 상황이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차근차근 아파트 계단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 30분 지나니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릅니다. 알 수 없는 묘한 쾌감이 온몸으로 짜릿하게 전해집니다.
정말 이 순간 나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올라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정말 잘살고 싶습니다. 그 강렬한 감정에 가끔은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오늘도 폭발하는 감정을 다독이며 한발 한발 계단을 오르며 되뇌입니다.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아자 아자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