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지 않았지만 남편과 저의 코로나 백신 접종 날짜가 겹쳤습니다. 남편은 2차를 맞는 날이고 저는 1차를 접종했습니다. 백신접종 후 주의사항에 “가급적 피곤한 일은 피할 것!” 그러니 무리한 식사준비 이런 일은 하면 안 됩니다. ㅋ
퇴근 후 남편과 저녁을 먹으로 갔습니다.
결정 장애를 앓는 사람들처럼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음식을 차렸다 치운 후 동네 한 귀퉁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주꾸미 집으로 갔습니다. 짭짤하고 매콤한 주꾸미볶음에 부드러운 달걀찜을 까만 김으로 싸서 먹으니 환상입니다. 콩나물, 무생채, 상추 샐러드를 넣어 쓱쓱 비벼 밥 한 숟가락을 옹골차게 입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음~ 이 집에 오길 잘했어. 맛있는 거 같아.”
기분 좋게 밥을 먹고 우리 부부는 인근 마트로 갑니다. 몽실몽실 구워진 호밀 빵을 한 덩이 사고 남편은 여름 양말을, 저는 보드랍고 시원한 여름 잠옷 바지를 한 장 들고 옵니다. 가격은 1만원이지만 정신적 만족감은 10만원 이상입니다.
“야~ 여보야 만원의 행복이야, 이거 완전 가성비 좋아. 너무 편안하다. 아쿠~ 천국이 따로 없네.”
훌러덩 거실에 드러누워 눈을 감으니 백신의 피로감과 배부름의 만족감이 뒤섞여 입꼬리가 씩~ 올라갑니다.
남편은 요즘 힘이 없습니다. 옛말에 남의 돈을 벌려면 내 살이 녹아내려야 된다고 했는데 아마도 남편이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과 사람의 스트레스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순수하게 행복하던 사람이 너무 피곤해하니 마음이 여간 짠한 게 아닙니다.
얼굴을 쑥~ 들이밀며 남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여보야, 힘내라, 뭐가 걱정이고, 내가 먹여 살려주게, 이렇게 건강하게 밥 잘 먹으면 되지. 걱정하지 마라.”
배시시 힘없이 옅은 미소가 지나갑니다.
“어~ 어~, 마누라가 이렇게 애교를 부리는데 남편이 반응이 없다. 이럼 곤란하다. 웃어 여보~”
저의 적극적 구애에 남편이 순간 환하게 웃습니다.
꼬옥~ 남편을 안아 주고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끈적하게 더워진 몸을 씻으려고 화장실로 들어가니 자연스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보입니다. 어느새 늙었나 싶기도 하고 아직은 괜찮다 하는 내가 있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일단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버티고 그래야 내 사람들을 지킬 수 있습니다.
어릴적부터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이 있습니다. 보통의 여자들은 보호받길 원하고 실제 보호받으며 사는데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사람들을 내가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불편한 건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곧 그들의 평화가 나의 평화가 됩니다. 소소한 어려움이야 늘 따라붙지만 큰 틑에서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 유지되는 나의 삶에 무한한 감사를 느낍니다.
작년 연말에 시어머니가 전화를 하시더니 제가 삼재라 너무 재수가 없어 남편이 승진이 안 되고 아들 대학시험이 떨어졌다는 말을 하셔서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어머니의 어이없는 언어폭력에 남편과 아들은 저에게 엄청 보복을 당했더랬죠.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나 혼자 잘 산다고 잘사는 일이 아닙니다. 제 마음 한구석에도 제 복을 대신해서라도 그들이 정말 잘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매일 일어납니다. 남편은 일단 웃었습니다.
밤 10시 재수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아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목소리가 맑은 것이 아주 명쾌합니다. 아들 합격~
이제 딸이 남았습니다. 11시 20분 카톡 문자가 옵니다. “엄마, 나 안전하게 집에 잘 들어왔어. 잘 자”
음~ 딸도 무사귀환입니다. 어느새 저의 하루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들이 웃으니 저도 웃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특별함은 1도 없지만 허기진 배를 같이 채우면서 웃음을 나누는 시간, 소박한 물건 하나에 행복한 시간, 당연한 안부에 안도감을 느끼는 시간, 어쩜 이 생활을 위해 나는 그리도 열심히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박한 보석을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