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수업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 올려 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떠오른 장면은 참 소박했습니다.
지난 8월 말 서울에서 재수하는 아들이 수능 원서접수를 위해 집으로 왔을 때 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새벽까지 야식을 먹고 다음날 맛있는 점심을 먹으로 갔었습니다.
볼록하게 부어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시원한 카페에서 또 맛난 커피와 블루베리 스무디를 주문하고 니꺼 내꺼 없이 빨대를 공유하며 머리를 맞대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22살 20살 다 자란 아이들이 여전히 아기같은 환한 웃음을 보여주면 그리도 행복 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너무 바쁘고 몸이 힘들어 그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고 감사한 지 모르고 지나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에는 그 시간이 너무 그립고 아쉽습니다.
특히나 알록달록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기저귀와 분유 가방을 들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힘겹게 육아 이모님에게 걸어가던 그 시간조차 추억입니다.
그 작은 생명이 제 등에 업혔을 때 전해져 오는 따듯한 느낌, 사랑, 그리고 알 수 없는 호르몬의 축제.
그렇게 예쁜 느낌과 따듯함을 느끼고 싶어 아이들을 바라보지만 이제는 감히 업을 수도 안아보기도 부담스러운 덩치가 눈앞에 떡 하니 서 있습니다. ㅋ
게다가 자기 주관은 또 얼마나 또렷한지 이제는 엄마의 의견보다 그들의 판단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 점점 나의 영역은 축소되고 있습니다.
뭐 그것이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정상화의 시간이기에 큰 아쉬움은 없지만 아주 가끔은 마음에 선들한 바람이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도 교생실습을 하고 있는 딸과 함께 출근을 함께 했습니다.
딸이 실습하는 학교까지 운전시간은 약 25분이 걸립니다. 오늘은 딸이 마지막 공개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 수업은 녹화해서 현직 선생님들의 평가를 받기 때문에 딸은 어제 밤 잠도 못 자고 여러 가지 수업준비를 했습니다. 이런저런 말에도 대꾸가 신통 찮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평소처럼 얘기를 했고 딸도 그럭저럭 대답으로 우리의 대화는 다정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새벽 본 동영상이 떠 올랐습니다.
“엄마가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확실하게 알았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의지라고 생각하는데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에 의해 그런 의지를 자극받는대. 도파민을 나오게 하려면 잘먹고 잘자고 운동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네.”
“어....”
“진짜 어렵겠지만 너 운동 한가지는 시작해라. 그건 살아가는데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 같아. 정말 ”
“어.....”
대답이 영 시원찮습니다. 제 말을 들은 듯 말은 듯 영혼이 없습니다.
“그래, 됐다. 엄마 말은 늘 잔소리가 되는구나~”
살짝 삐침이 올라온 나도 감정 담긴 소리를 뱉었습니다.
“아니, 엄마, 그게 아니고. 오늘 수업 생각 때문에 정신이 없어. 그 이야기를 꼭 지금 해야겠어.”
“그러니까 알았다고. 그런데 너는 이럴 때가 많더라.”
“아, 진짜 엄마, 피곤하게 왜 이래. 내가 지금 정신이 없다고 했잖아.”
‘피곤?’ 단어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파며 콕 박힙니다. ‘뭐? 내 말이 피곤하다고?’
이쯤 되면 이성은 국에 밥 말아 먹은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울컥하는 억울함만 남는 겁니다.
“그래, 알았어. 엄마가 꼰대라서 그래. 앞으로는 말 안 할게.”
한껏 감정을 담고 딸이라도 질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침 딸이 내릴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말없이 차를 세우는 엄마, 심각한 표정으로 내리는 딸.
좀 전까지 세상없이 소중한 너라며 내 목숨도 아깝지 않다던 감정은 사라지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삐쳐, 나는 이리도 유치찬란 찌질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차를 돌려 막 새로운 도로로 들어서는 찰나 휴대폰이 울립니다.
‘세상의 태양 ㅇㅇ’ 딸입니다.
“왜?”
“엄마, 미안해. 내가 생각해 보니까 엄마가 아니었으면 그런식으로 대답 안 했을 것 같아.”
“그래.”
아주 살짝 메마름이 남아있습니다.
“엄마, 미안하다구. 온통 내 머리와 가슴에 엄마가 한가득이잖아. 이렇게는 안 된다구. 엄마 사랑한다고!”
“내 머리와 가슴에도 니가 한가득이라고. 엄마도 사랑한다고. 엄청 사랑한다고. 오늘 수업 잘해.”
머리와 가슴에 엄마가 한가득이라는 말에 그만, 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냉큼 사랑한다고 말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치 컴퓨터가 한치의 오류도 없이 기다렸다 대답하는 것처럼 그렇게 신속하고 빠르게...
그 완벽함에 제 자신도 깜짝 놀랄만큼.... ㅎ
오늘도 여전히 출근길 도로는 삶의 터전으로 향하는 차량들로 빼곡이 들어차 거북이 흐름입니다.
평소와 달리 나의 마음에는 행복이라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릅니다.
사람의 감정이 이리도 연약한 것인가 싶습니다.
새벽에 오늘은 무슨 사연을 만나 글쓰기를 해 볼까 한참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행복한 순간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며 진심 내가 행복했던 과거의 시간여행을 하며 다양한 순간을 만났습니다. 다.
그렇게 많은 순간이 지나갔지만 한 순간도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참 소박하고 작은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과의 맛난 식사, 가족여행, 사랑하는 이의 아재개그, 아이들의 따듯한 미소 그리고 사랑의 언어!
사랑한다고 다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깊은 마음만 변하지 않고 격한 감정 다툼 끝에 연이어 서로의 사랑만 확인한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당연히 망각의 세포 속으로 녹아 사라질 사소함이지만 오늘도 나는 딸과의 행복한 시간을 만났습니다.
그저 이런 것이 행복입니다.
누군가는 보고 참 어이없다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좋은데요. 그냥 웃음이 나는데요. 그럼 행복입니다.
사무실로 바삐 걸어가는 발걸음 아래 수분을 쪽~ 빼버린 메마른 낙엽은 그 가벼움을 못 이겨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휩쓸려 다닙니다.
오늘도 무조건 행복하고 무조건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