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것(11월의 가을향기, 국화 꽃)

by 해피영희

“우와~ 세상에 이렇게 예쁜 국화는 처음 봐요. 그것도 개인 집 마당에 이렇게 꽃을 피우는 것은 상상도 못해 봤어요.”

난생처음 보는 국화꽃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학교 선생님의 부모님이 유별나게 꽃을 사랑하시고 잘 가꾸는 분이 있으십니다.

마음이 얼마나 넓으신지 국화 모종을 심으시던 그 봄날부터 아들이 근무하는 학교에도 한 송이 보내겠다 하는 마음을 먹으셨다고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시간이 흐르고 가을이라는 시간에 도달하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국화 화분이 학교로 도착했습니다.


보는 이 중 그 누구도 무신경하게 지나갈 수 없는 자태를 지닌 화분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분의 고운 마음으로 수십 명의 마음속에 행복한 미소가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마침 알맞은 때가 되어 마당에 있는 국화들이 만개를 하기 직전 그분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출발 할 때는 사실 큰 기대나 상상이나 그런 특별함은 1도 없었습니다.

신기하리만큼 완벽한 백지상태로 무덤덤하게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운전을 하고 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분명 동네입구를 도착했는데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곳은 목적지가 아닙니다.

가끔 발생하는 기계의 오류의 경우에 걸려든 것입니다.


함께 동행한 분은 이전에 다녀온 적이 있지만 인간의 기억력이 가지는 한계로 인해 뚜렷한 길을 찾지 못하고 제자리를 10분째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차를 세우고 길가던 행인 한 명을 불러 세웁니다.

“저기 아주머니, 이 동네에서 국화꽃 많이 키우는 집이 어디에요?”

옆에서 지켜보던 저는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요즘 세상에 그것도 광역시에서 백화점 관공서도 아니고 개인집을 그렇게 묻는다는 것은 좀 억지스럽기 때문입니다. 아, 그런데~

“저기 저 길 끝에서 왼쪽으로 돌아가셔서 쭉 올라가면 ㅇㅇ빌라가 있어요. 바로 그 옆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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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너무 신기하고 웃기는 장면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너무도 화사하고 예쁜 국화 꽃밭입니다. 낮은 담장과 더불어 하얀 주물 대문은 활짝 열려 누구라도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봄부터 긴 시간을 인내한 꽃들이 드디어 세상의 때를 만나 만개하고 보는 이의 마음에 달콤 쌉싸름한 가을을 만나게 합니다.


함께 하신 분이 큰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안에서 인상 좋으신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십니다.

“꽃구경 좀 해도 될까요?”

“아이고, 얼마든지 됩니다. 보이소, 아이고 이게 누굽십니꺼? 우리 ㅇㅇ이 학교 선생님들 아입니꺼? 들어오이소, 어서 들어오이소. 내 커피 한잔 드리께예”

부담스러운 저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꽃만 보면 됩니다.”


“그라모 제가 서운해서 안 됩니더. 얼릉 이리 오이소”

나이 든 노모는 막내아들의 근무지 직원들을 어찌나 반가워하시는지 감히 그 정을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종이컵 커피믹스 한잔, 빨간 홍시, 봄날 만들어 두었던 쑥떡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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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정과 반가움이 한 상 차려진 장면입니다. 이런저런 얘기 속에 또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됩니다.

“저기 가족사진에 큰딸은 가슴으로 낳은 자식 아입니꺼. 12살에 남의 집 식모로 와서 불쌍하게 살고 있는거 거둬 키워가 시집보내가 아 3명 낳고 잘 삽니더. 쟈가 우리한테 그리 잘한다 아입니꺼”


“국화꽃도 그러십니더. 온 동네 사람들이 몇 년째 보러 와 주고 주변 유치원 아들이 와서 사진찍고 가고 하니까 우리가 그만 둘 수가 없습니더. 그래가고 한 8년째 이라고 있다아입니꺼.”


‘아~ 이분들 뭐지? 이 울컥하는 감정은 뭐지? 이분들 참 잘 살고 있다. 잘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커다란 거실 통유리 너머 잔디밭 마당 위로 만개한 국화가 또 숨이 막히게 합니다.

매일 아득바득 한 치의 오차라도 허용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내가 보입니다.

눈에 눈물이 글썽 맺힙니다.


마당으로 나와 한걸음 두걸음 천천히 걸어봅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운이 채워집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이웃 주민 한 분이 가던 길을 멈추고 꽃 구경을 하십니다.

“작년보다 올해 꽃이 더 화려하고 예쁜 것 같십니더. 진짜 덕분에 꽃구경 잘 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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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꽃으로 변해가는 가로수 단풍잎이 또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정서를 불러일으킵니다.

‘참, 성실도 하다. 어째 저리 때 되면 무서우리만큼 자리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야간상담 지원을 하고 밤늦게 집으로 들어서니 딸이 행복한 얼굴로 뛰어나옵니다.

“엄마, 이것 봐, 오늘 내가 선생님들이랑 사진 찍을 사람? 하니까, 저요 저요 하면서 우리반 아이들이 뛰어오지 뭐야. 다들 엄청 귀엽지? 너무 행복했어.”


딸은 요즘 교생실습을 하고 있고 내일이면 지나면 종료됩니다.

수업을 잘해보겠다고 초콜릿도 사고 요술 주머니도 준비하고 밤새워 자료 준비도 합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렇게도 외모에 관심이 없던 딸이 아이들에게 예쁘게 보여야 한다며 화장도 열심히 하고 아침에 옷도 뭘 입어야 할지 깊은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마냥 생각 없는 아이처럼 생각했는데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하니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찾아가는 모습입니다. 문득 우리 딸이 참 잘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자신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 모습,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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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열심히 살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왕 사는 것 정말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잘 산다는 것에는 세상의 물질적 성공과 별개로, 누군가의 마음에 미소하나, 다정스러운 손길 하나 나누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 나도 할머니가 되었을 때 누군가의 마음에 알 수 없는 따듯한 미소와 누구라도 부담 없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주인장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느 낯선 이의 마음에 ‘아, 저 할머니 미소가 참 곱고 아름답다. 세상 잘 살았나 보다.’하는 생각이 절로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못내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아쉬워 싸준 노모의 빨간 홍시 두 알이 식탁 위에 방긋 웃고 있습니다.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정말 소박하고 가치롭게 잘살고 있는 이의 정입니다.

나의 자리에서 나의 이름이 더 깊이 새겨지는 시간 그것이 내 삶의 가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1.11월의 초, 이 가을이 더 깊고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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