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골(骨)
뼈가 없으면 우리 몸은 어떻게 될까?
뇌와 내장과 살과 핏줄 등은 중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땅바닥과 한 덩어리가 될 게 분명하다.
진화의 메커니즘은 어떻게든 뼈를 대체할 대안을 찾아낼 테지만,
그런 대안이 적용돼서 만들어진 우리의 몸은 지금 하고는 다를 게 확실하다.
“뼈 골(骨)”은 이렇게 우리 몸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뼈를 가리키는 한자다.
시라카와 시즈카는 “骨”을
“가슴보다 위에 있는 뼈의 모양”을 가리키는 글자인 “뼈 발라낼 과(冎)”와
“살의 모양”을 나타내는 “육달월(月)”이 합쳐진 글자라고,
그렇게 “살이 붙은 뼈”를 가리키는 글자라고 설명했다
“冎”가 들어있는 글자들인 “지날 과(過)”와 “노구솥 과(鍋)” 등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이 글자의 구성을 보노라면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우리 몸은 겉에 살이 있고 그 속에 뼈가 있으며 다시 그 속에 뼈의 보호를 받는 내장이 있는데,
우리 몸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月”이 지금처럼 “冎”의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밖에도 하나 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경우,
미적(美的)으로는 꼴 사납고 글자를 쓰려면 지나치게 많은 획을 그어야 하는 글자가 생겨났을 것이다.
한자를 만든 옛사람들이 뼈를 우리 몸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봤다는 것은
“骨”이 들어있는 단어들에서 확인된다.
“몸 전체를 형성하고 지탱하는 뼈의 모임”이라는 뜻의 “골격(骨格),”
“근육과 골격”이라는 뜻의 “근골(筋骨),”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기백과 골격”이라는 뜻의 “기골(氣骨)” 등의 단어가 그것들이다.
심하게 마른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했다”는 표현은
피하지방이 없을 정도로 말라서 “살갗과 뼈가 맞붙어 있는 것 같은 상태”를 가리킨다.
“骨”과 “따를 수(遀)”가 합쳐진 “골수 수(髓)”는
“우리 내면 (또는 내부) 깊은 곳”을 가리키는 단어로
“뼛속까지 사무치다”와 “뼛속까지 빨아먹는다” 등의 표현에 쓰이는 “뼛속”에 해당하는 글자다.
“髓”는 “뼛속에 있는 골수, 사물의 중심이 되는 골자나 요점”을 가리키는
“정수(精髓)” 등의 단어에 들어간다.
“骨”이 들어가는 또 다른 글자로는 “몸 체(體)”가 있다.
“骨”과 “풍성할 풍(豊)”이 합쳐진 이 글자를 보면,
한자를 만든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본 우리 몸뚱어리는
“골격이 되는 뼈 위에 풍성한 살점이 붙은 것”일 거라는 짐작이 든다.
그런데 “體”의 총획수는 23획이나 된다.
한 글자를 쓰는 데 붓을 (또는 펜을) 23번이나 놀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복잡한 이 글자 대신에 많이 쓰이는 약자가 7획에 불과한 “体”다.
획수가 16획이나 줄어든 “体”라는 글자에는
우리의 몸뚱어리가 “사람(亻)의 근본(本)”이라는 시각이 반영돼 있다.
“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뼈(또는 머리뼈)”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해골(骸骨)”의 두 글자에는
모두 “骨”이 들어있다.
“뼈 해(骸)”는 “骨”과 “돼지 해(亥)”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인데,
이 글자에서 “亥”는 발음을 제공하는 역할 말고도
“씨 핵(核)”에서 “亥”가 수행하는 역할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亥”는 “자축인묘(子丑寅卯)”로 시작되는 12 지지(地支)의 마지막 글자로 “돼지”를 가리키지만,
여기에서는 “곧은 줄기뿌리에 잔뿌리가 난 모양을 본뜬” 상형자로 봐야 한다.
“亥”와 “木”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인 “核”이
“나무 한가운데에서 나무의 생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처럼,
“亥”가 “骨”과 결합한 “骸”는 “우리 몸의 근본적인 부분”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누가 봐도 “딱딱한 물질”이라고 생각할 “骨”이 들어있는데도
“미끄럽다, 미끄럽게 하다”는 뜻밖의 뜻을 가진 글자가 있다.
“물(水)”을 가리키는 “삼수변(氵)”과 “骨”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미끄러울 활(滑)”이 그 글자로,
“윤활유(潤滑油)” 등의 단어에 쓰인다.
아무리 미끄러운 액체인 “물”과 결합했다고 하더라도
“딱딱한 뼈(骨)”에서 어떻게 “미끄럽다”는 뜻이 유추됐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