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울 중(重)
“무거울 중(重)”은
“동녘 동(東)”과 “사람 인(人)”이 결합된 글자다.
“東”은 “나무(木)” 뒤에 “해(日)”가 걸려있는 형태라서
“해가 뜨는 동쪽”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여러 옥편은 “東”을
“끈으로 사방을 동여맨 보따리”를 보고 만든 상형글자라고 설명한다.
일반인의 상식과 전문가의 의견 중 어느 쪽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東”과 “人”이 합쳐진 글자인 “重”은
“사람이 보따리를 메고 있는 모습”을 그린 상형자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데에서
“무겁다”는 뜻을 갖게 됐다는 게 옥편의 설명이다.
이런 설명을 납득하면,
“움직일 동(動)”이 무게(重)가 있는 무엇인가를
힘(力)을 써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글자라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힘들여 운반하기 위해 보따리에 담는 물건은
가치 있거나 소중한 물건일 공산이 크다.
요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한 해 작황을,
그래서 이듬해의 식량 상황을 좌지우지하는 곡식의 씨앗도
무척 귀중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重”에 “소중하다, 귀중하다”는 뜻이 있는 것은
그런 소중한 물건을 담은 보따리를 운반한다는 의미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남녀는 평등하다는 시각이
(“평등”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시각차는 존재하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즘 시각에서 보면
마초적인 이야기처럼 들리는 표현 중에
“남아 일언 중천금(男兒 一言 重千金)”이 있다.
“사나이가 한 말은 무게가 천금 같다”는 뜻인데,
여기에서 “重”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게가 천금 같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천금만큼 귀중하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고 보는데,
그 해석은 “重”이 가진 “겹치다”라는 뜻과 관련이 있다.
“重”의 이 뜻은
“이중삼중(二重三重)”과 “구중궁궐(九重宮闕)” 같은 단어에 사용된다.
“이중삼중”은 “두 겹, 세 겹”이라는 뜻이고
“구중궁궐”은
“담과 문이 아홉(九는 ‘많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겹으로
세워져 있는 궁궐”이라는 뜻이다.
“종자(種子),” “종류(種類)” 등에 들어있는 “씨 종(種)”도
“겹치다”는 뜻의 “重”이 들어간 글자다.
옥편은 “벼 화(禾)”와 “重”이 결합한 글자인 “種”에 대해
“볍씨를 등에 짊어지고 있다는 뜻을 표현한 글자”라고 설명하지만,
나는 그것 하고는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곡식의 씨앗에는 그 곡식의 유전자가 들어있다.
그 씨앗 안에 “겹겹이(重)” 쌓여있는 유전자는
(실제로 염색체의 단백질들은 실타래처럼 겹쳐서 3차원으로 말려있다고 한다)
온도와 습도 등 주변 환경이 적합하면 싹을 틔우는 것으로 시작해서는
그 유전자에 담겨있는 가능성이 발현된 곡식으로 성장한다.
“종 종(鍾)”이라고도 읽고 “쇠북 종(鍾)”이라고도 읽는 “鍾”은
글자에서 보듯 “쇠가 무겁게 뭉쳐있는 물건”을, 그래서 소리를 내는 물건을 가리킨다.
“重”은 “어떤 것들이 뭉쳐있는 것”을 뜻하는 글자에 쓰이기도 한다.
한의학과 양의학을 불문하고 쓰이는 단어인
“종기(腫氣)”와 “종양(腫瘍)” 같은 단어에 들어있는
“부스럼 종(腫)”이 그 글자다.
“종기”를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 여기는 요즘과 달리,
위생 수준과 의학 수준이 높지 않았던 옛날에
“종기”는 꽤나 심각한 병이었다.
역사책을 보면 “종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꽤 많다.
심지어는 종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왕도 여럿 있었다.
“重”에도 원래는 “(살가죽이나 어떤 신체기관이) 붓다, 부어오르다”라는 뜻이 있는데,
“腫”은 우리 신체와 관련된 글자에는 꼭 따라붙는 “육달월(月) 변”을 붙여
그 뜻을 더 뚜렷하게 부각한 글자다.
“重”이 “사람이 보따리를 메고 있는 모습”을 그린 글자라는 설명을 납득하면,
“무거울 중(重)”과 “가벼울 경(輕)”의 흥미로운 대비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설명에 따르면
“重”은 보따리를 운반하는 주체가 “사람”이다.
반면, “輕”에서는 “수레(車)”가 운반에 관여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한자를 만들던 시절의 옛사람들이 진짜로
도구의 도움을 받느냐 그렇지 않으냐를 기준으로
무거움과 가벼움을 나눴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런 시각으로 두 글자의 차이점을 바라보면 설득력도 꽤 크고 꽤 재미있기도 하다.
“重”과 “輕”에는
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상은
사람이 가진 힘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곳이고
지혜와 지식을 이용해 자연의 힘을 빌리면 가벼운 곳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