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데기도, 종이쪼가리도, 데이터덩어리도 돈이라고?

조개 패(貝)

by 윤철희

화폐는 사회적 약속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

화폐의 가치는 여러 사람의 약속에 따라 정해진다는 말이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지폐는

근본적으로는 그림과 글자가 인쇄된 종이쪼가리에 불과하지만,

많은 사람의 약속에 따라

거기에 인쇄된 숫자만큼의 가치를 보장하는 증서로 통용된다.


문명이 태동하고 한자가 만들어지던 시대에

오늘날의 한국은행권에 해당하는 물건은 조가비(조개껍데기)였다.

옥편에는 “중국대륙의 내륙에서 생활하는 은(殷)나라 사람들에게

남방의 바다에서 나는 조가비는 귀중품이었다”라고 설명돼 있다.

그 상황이 납득은 되지만,

바닷가에 가면 지천으로 깔려있는 조가비가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며 통용되는 상황은

솔직히 말해 쉽게 이해가 안 된다.

내가 그 시절에 살았다면

귀하다는 조가비를 챙기려고 멀리 떨어진 바닷가를 향해 당장 길을 나섰을 것이다.


아무튼 한자가 만들어지던 시절에 귀중품 대우를 받던

조개의 모양을 본뜬 글자 “조개 패(貝)”

다른 글자와 결합해서 만들어진 글자에

화폐나 금융과 관련된 뜻을 부여한다.

“화폐(貨幣)”에 들어있는 “재물 화(貨)”

“조개(貝)”가 재물로 “화(化)”했다는 글자로 풀어볼 수 있다.

“물건을 팔고 사는 일”을 가리키는 단어인

“매매(賣買)”에 들어있는 “팔 매(賣)”“살 매(買)”에도 “貝”가 들어있다.


“부담(負擔),” “부채(負債)” 등의 단어에 들어있는 글자인 “질 부(負)”

“사람(人)이 조가비를 짊어지고 있는 모양”을 그린 까닭에

“짊어지다”는 뜻을 갖게 됐다.

(윗부분의 “人”이 구부러진 건

등에 진 조개에 가린 사람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이려는 뜻에서 그런 모양이 된 게 아닐까?)

“貝”는 기업이나 관청에서 일하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급여인

“임금(賃金)”에 쓰이는 “품팔이 임(賃)”에도,

부동산이나 물건을 “임대(賃貸)하다”는 단어에 쓰이는 “빌릴 대(貸)”에도 들어있다.


두 손으로 감당이 안 되는

많은 양의 조개를 챙겨서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글자도 있다.

“관통(貫通),” “초지일관(初志一貫)” 등의 단어에 쓰이는 “꿸 관(貫)”이 그것이다.

“꿰뚫을 관(毌)”과 “貝”가 합쳐진 글자인데,

사극에 등장하는 엽전꾸러미를 떠올리면

조가비들을 끈으로 꿰는 상황이 잘 이해될 것이다.


“재물 재(財)”는 “貝”와 “재주 재(才)”가 결합된 글자다.

갑골문에서 “才”는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을 가리키는 글자다

그 뜻을 바탕으로 “재주,” “재능 있는 사람” 등의 뜻을 갖게 됐다).

따라서 “財”는 “화폐로 쓰이는 貝가 싹을 틔워 맺은 더 많은 열매”를 가리키는 글자다.


“貝”는 경제적인 의미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뜻을 가진 글자에 들어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글자가 “승패(勝敗),” “패배(敗北)” 등에 쓰이는 “깨뜨릴 패(敗)”다.

“貝”와 “무엇인가를 치다, 때리다”는 뜻을 가진 “칠 복(攵)”이 결합된 글자인데,

원래 “敗”에 해당하는 글자에 들어있는 글자는 “貝”가 아니었다.

과거에 신에게 제사 지낼 때 사용하던 솥을 가리키는 글자인 “솥 정(鼎)”이었다.

“敗”는 “다른 세력과 맞붙었다가 패배한 세력의 귀중한 솥이 깨져나가는 상황”을

가리키는 글자였는데,

“鼎”이 “貝”로 바뀌면서 지금 같은 글자가 된 것이다.


경제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관계도 없다고 말하기 힘든 글자에 “貝”가 들어가 있는 경우들도 있다.

“귀족(貴族),” “귀중품(貴重品)” 등의 단어에 쓰이는 “귀할 귀(貴)”

“어질 현(賢)” 같은 글자가 그렇다.


“어질 현(賢)”은 “어질 현(臤)”과 “貝”가 결합한 글자다.

“臤”은 신하가 일을 능히 잘 해낸다는 의미에서 “어질다”나 “현명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시로카와 시즈카는 “臣”을 “신(神)에게 바쳐져 신에게 봉사하는 자였는데,

그런 자들 중에 여러 가지 뛰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을 현(臤)이라고 불렀다”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본래 “어질다”는 뜻으로 쓰인 글자는 “臤”이었는데,

이후에 “사람이 어질고 착해서 재물까지 선뜻 나누어 줄 정도”라는 의미가 반영되면서

지금은 거기에 “貝”가 더해진 “賢”이 그 뜻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위세가 대단한 비트코인 같은 화폐는,

전자화폐·가상화폐·암호화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화폐는

따지고 보면 굉장히 많은 0과 1이 나열된 숫자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숫자덩어리를 나름의 가치를 지닌 화폐로 인정하는 순간

1개 당 1억 원에 상당하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냥 데이터 덩어리에 불과할 뿐인데 말이다.


조가비도 종이쪼가리도 데이터덩어리도 가치를 갖는 걸 보면서 생각해 본다.

도대체 돈이란, 화폐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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