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 시(示)
“아홉 번째 지지 신(申)”을 다룬 글에서 설명했듯,
“보일 시(示)”는 “보이다”나 “알리다,” “지시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다.
“示”는 신에게 제사 지낼 때 사용하던,
제물을 올려놓던 “제단(祭壇)”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다.
“示”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길흉(吉凶)이 보인다는 의미에서
“보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示”를 부수로 한 글자들은
대부분 “신”이나 “귀신,” “제사”와 관계된 의미를 갖게 됐다.
(“示”를 부수로 쓸 때 “礻”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礻”와 “옷 의(衣)”의 부수자인 “衤”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示”의 “보이다”는 뜻을 그대로 이어받은 글자가
“示”와 “볼 견(見)”이 합쳐진 “볼 시(視)”다.
여기서 “見”이 단순히 “눈을 뜨고 세상을 본다”는
수동적인 시각행위를 가리키는 글자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見”은 “눈 목(目)”과 “어진사람 인(儿)”이 결합된 글자다.
“무릎을 꿇은 사람의 모습”을 닮은 “儿”의 모양새를 놓고 볼 때,
“見”에는 “더 자세히 관찰하겠다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무릎을 꿇고는
커다랗게 강조된 눈으로 대상을 꼼꼼히 살핀다 “는 뜻이 담겨있다.
따라서 “示”와 “見”이 결합한 “視”는
“見”을 수행하는 자세로 “신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을 주시하며
신이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를 주목하는 글자다.
“視”에 “엿보다, 감시하다”라는 뜻이 있는 것은
이렇게 정신을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유심히 살피는 태도 때문이다.
“示”와 “申”이 결합돼 만들어진 “귀신 신(神)”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示”는 “사회(社會)”와 “회사(會社)” 같은 단어에 쓰이는
“토지신 사(社)”에도 들어간다.
사극을 보다 보면 왕과 신하들이 조정에서 회의를 할 때
가끔씩 등장하는 단어인 “종묘사직(宗廟社稷)”은
“왕실과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종묘(宗廟, 宗에도 示가 들어있다는 것을 주목하라)”는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고
“사직(社稷)”은
“천자나 제후가 제사를 지내던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穀神)”이다
“기장 직(稷)”은 “쌀, 보리, 콩, 조, 기장 등
중요한 다섯 가지 곡식의 신”을 가리키는 글자다).
한자가 만들어지던 시절에 “도끼(斤)”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담긴 무기였던 듯하다.
“제사상(示) 옆에 도끼(斤, 도끼 근)”를 놓으면
“기도(祈禱)하다,” “기원(祈願)하다” 등의 단어에 쓰이는
“빌 기(祈)”가 되는 걸 보면 말이다.
세상사람 누구나 무지하게 많이 받기를 바라마지않는,
중화식당에 가면 사방에 (쏟아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거꾸로 붙여져) 장식된 글자인
“복 복(福)”도 제단과 관련된 글자다.
“福”에서 “제단(示)” 옆에 있는 글자는
“제사드릴 때 바치는 술이 가득 담긴 술통이나 항아리”를 본뜬 글자인
“가득할 복(畐)”이다.
이런 술통이나 항아리(畐)가 (다른 말로 하면 재물이)
“사방이 지붕으로 덮인 집안(宀)”에 가득한 것을 표현한 글자가
“재물이 많고 넉넉하다”는 뜻을 가진 “가멸 부(富)”다.
아득한 과거의 사람들에게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단은
함부로 범해서는 안 되는 신성하고 존엄한 존재였을 것이다.
제단의 신성함과 존엄함이 반영된 글자가 “금할 금(禁)”이다.
“나무가 많은 숲(林)”은
신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이 놓이는 성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 함부로 출입하는 것을 금한다는 데에서 비롯된 글자다.
“금지(禁止),” “금주(禁酒)” 등의 단어에 쓰이는 “禁”은
“외부의 불순한 존재가 출입하는 것을 막는다”는 뜻에서
“궁중을 지키고 임금을 호위하는 군사”를 가리키는
“금군(禁軍)” 등의 단어에도 쓰인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궁궐인 “자금성(紫禁城)”의 이름에도
“황제 이외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뜻에서 “禁”이 들어갔다.
나라와 백성이 태평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것은
순전히 무지와 미신에서 비롯된 미개한 짓일까?
이성의 산물인 과학이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을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우리보다 우월하고 존귀한 존재를 숭상하는 종교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런 존재에게 제사를 올리며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앞으로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