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궁(弓)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시작된 후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아시아 삼국이 맞붙은 전쟁으로 확전된
임진왜란을 묘사하는 표현 중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무기들을 거론하는
“조선의 활과 일본의 칼, 중국의 창이 대결한 전쟁”이라는 게 있다.
이 표현에서 보듯,
활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무기였다.
“활 궁(弓)”은 활의 모양을 본뜬 글자다.
언뜻 보면 스프링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글자에서는
왠지 모를 탄성이 느껴진다.
선 하나로 쭉 이어지는 글자 “弓”의 양쪽 끝에 시위를 걸면
금방이라도 화살을 날릴 활로 변신할 것만 같다.
다들 아는 얘기지만,
우리 민족은 동이족(東夷族)으로 불린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동쪽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표현인데,
여기에 들어있는 “오랑캐 이(夷)”는
“큰 대(大)”와 “弓”이 합쳐진 글자다.
고대 중국인들이 보기에 우리 민족은 큰 활을 쏘는 민족이었나 보다.
“大”를 조금 비약해 해석할 경우에는 활을 잘 쏘는 민족이었거나.
“夷”에 “온화하다”는 뜻도 있는 걸 보면
활을 들지 않은 평소에는 온화한 민족이었을 것도 같다.
앞서 탄성 얘기를 했는데,
“弓”이라는 글자에서 느껴지는 탄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또 다른 글자가 “끌 인(引)”이다.
“만유인력(萬有引力)”과 “유인(誘引),” “인도(引導)” 같은 단어에 쓰이면서
“무엇인가를 끌어당긴다”는 뜻을 가진 “引”은
글자만 놓고 보면 “弓”과 “뚫을 곤(丨)”이 합쳐진 글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활을 당기는 모습”을 상형화한 글자다.
“人”이 “丨”으로 대체된 것이다.
단군신화의 건국이념 중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이 있는데,
여기에 들어있는 글자인 “넓을 홍(弘)”에도 “弓”이 있다.
“팔을 안으로 굽힌 모양”을 본뜬 “사사 사(厶)”와 “弓”이 결합된 “弘”은
활시위를 당겼다 놓아서 화살을 날렸을 때 나는 소리에서 비롯된 “크다”는 뜻과
그렇게 날아간 화살이 멀리 날아갔다는 데에서 유추된 “넓다”라는 뜻을 갖게 됐다.
강하고 약한 것을 표현하는 글자에
무기인 “弓”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굳셀 강(强)”은 “弓”과
“뱀이 웅크린 모양”이나 “벌레”를 뜻하는 글자인 “벌레 훼(虫)”가 합쳐진 글자다.
“强”은 “虫”가 들어간 글자답게
원래는 벌레인 “바구미”를 뜻하는 글자였으나,
어느샌가 “강하다”는 뜻을 갖게 됐다.
“굳셀 강(强)”의 반대말인 “약할 약(弱)”에도 “弓”이 들어있다.
그런데 “약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에 “弓”이 들어있는 것은,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들어있는 것은 조금은 의아해 보인다.
“弱”에 있는 “弓” 밑의 두 획은
“활시위가 약하다는 뜻”을 표현하려고 그어진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활시위가 약한 탓에 실전에는 쓸 수 없는 활 두 개를 나란히 놓는 것으로
“약하다”는 뜻을 강조했다는 것이라는데...
선뜻 납득하기 힘든 설명이다.
“弓”이 왜 들어가게 된 건지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글자는 또 있다.
바로 “죽 죽(粥)”이다.
팥죽, 전복죽처럼 우리가 먹는 그 죽 말이다.
전쟁할 때 쓰는 무기인 “弓”이
어째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인 “粥”에 들어가게 된 걸까?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나 말이다.
앞서 “弱”에 대한 설명을 바탕으로 추론해 보면,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활 두 개를 놓고 그 가운데에 “쌀(米)을 쑤어 만든 죽”을 올린 것을
상형화한 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다지 큰 신빙성이 있는 추리인 것 같지는 않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앞서 “궁리(窮理)”라는 단어를 썼는데,
여기에 들어있는 “다할 궁/궁할 궁(窮)”에도 “弓”이 들어있다.
“궁극(窮極)”과 “곤궁(困窮)” “빈궁(貧窮)” 같은 단어에 들어가는 “窮”은
“구멍 혈(穴)”과 “몸을 구부린 모양”을 글자로 만든 “몸 궁(躬)”이 결합된 글자다.
두 글자를 바탕으로 자원(字源)을 유추해 보면,
“窮”은 “사람이 구멍 속에 몸을 둔 모양”을 가리키는 글자다.
극도로 좁은 곳에 몸을 구부려 들어가게 되므로
“심신의 자유가 속박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 되고,
그것이 “극에 달하다,” “힘들다” 등의 뜻으로 이어진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먼 옛날에 우리 민족을 지켜주던 활은 총으로 대체됐지만,
활이 됐건 총이 됐건
방어를 위한 용도여야지 공격을 위한 용도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활과 총이 심신을 단련하는 운동에만 사용되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게
순진한 망상이 아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