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
이사칠도 서둘러 작업 모드로 돌아갔다.
“그레이스, 빨리 와. 시작하자.”
지구에서 이사칠은 평소에는 자상하기 그지없지만
리허설 때나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냉정해지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었다.
그런데 여기 우주에서 작업 모드에 들어간 이사칠은
지구에서보다 더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번 방송은 “우주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유사 이래 최초의 퍼포먼스”라는
역사적·문화적 의의가 있는 방송이었는데,
중요한 점은 또 있었다.
금전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는 거였다.
방송사고가 생기면서 생방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이사칠과 그레이스가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에는
이미 지불한 시청료를 환불해주겠다는 내용이 약관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피해 수준은 많이 줄어들 테지만
보험으로 보장되지 않은 액수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시리즈의 1편인 이번 방송이 성공해야
다음에 예정된 2편을 시청하겠다고
시청료를 지불할 시청자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사칠에게 금전적 차원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
이사칠에게 중요한 건
“인류의 활동영역을 우주로 넓힌다”는 원대한 야망을 실현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방송의 역사적 의의였다.
타인이 하는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신경망인 거울뉴런을 가진 인류에게
이사칠과 그레이스가, 그리고 나중에 이사칠과 버지니아가 펼칠 퍼포먼스는
인류가 따라해야 할 본보기가 될 터였다.
미소중력이라는 극도로 까다로운 상황에서도
번식을 하는 데 필요하고 육체적·정신적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행동을 수행해야 하는
인류에게 제시할 본보기가 될 터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방송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는
리허설, 그것도 철저한 리허설이었다.
장난기를 주체 못하는 그레이스가 스킨수트를 툴툴거리며 차려입고는
진지한 태도로 리허설에 임하는 것도 그 점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육체를 억누르는 중력에 적응해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미소중력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미소중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지상에서 그토록 많이 받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사칠은 자신도, 그레이스도, 버지니아도
결국에는 그런 어려움을 이겨낼 거라 확신했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앞길을 가로막는 온갖 어려움을 어떻게든 이겨내며 쌓아온 것이다.
쉬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려고 고군분투를 거듭하며 발전해온 것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려는 인류가 나선 여정의 최선봉에 선 이사칠 일행은
앞길에 겹겹이 놓인 또 다른 어려움들을 이겨내며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터였다.
이어폰을 통해 11번과 17번 카메라의 위치를 조정해달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상에서 작업하는 스태프의 목소리였다.
이사칠은 리허설을 멈추고는 선실 곳곳에 떠있는 디지털카메라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카메라들은 손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크기였지만 화질이나 기능은 최첨단이었다.
지상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11번과 17번 카메라의 위치를 조정하는 이사칠의 눈에
벽 근처에 도달한 눈물구슬들이 보였다.
이사칠은 조금 있으면 벽으로 빨려 들어가 정화시스템을 거친 후에 재활용될 눈물 중에서
수분을 제외한 나머지 성분들은 얼마나 재활용되는 것인지,
그 눈물에 담겼던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정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곧바로 잡생각을 떨치고는 리허설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