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화성인 247>

★ 21 ★

by 윤철희

“본론으로 돌아갈까요?

앞서 이 직업의 단점을 말할 때도 애기했지만,

이건 육체적으로 힘든 것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훨씬 외롭고 힘든 직업이라는 점을 명심하셔야 돼요.

인간사회는요, 많은 선을 그어놔요.

윤리적인 선, 법적인 선, 계층이나 계급을 가르는 선 같은 것들을요.

그러고는 그 선을 넘는 사람에게는 유형·무형의 처벌을 가해요.


“포르노배우가 된다는 건

인간사회가 변두리에 제멋대로 그어놓은 윤리적 선을 넘는 일이에요.

포르노를 합법적인 산업으로 간주하는,

개인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하고 개방적인 사회라는 미국에서조차 그래요.

그런데 지금 질문하신 분은 저처럼 한국인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포르노에 출연하는 건

한국 사회가 그어놓은 법적인 선을 넘는 일이기까지 해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법적 처벌을 비롯한 불이익을 당하겠죠?


“한국인으로서 포르노에 출연하면 어떤 일을 당할지 궁금하면 멀리 볼 것도 없어요.

여기 제가 있잖아요.

저 말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20년 넘게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체포되는 게 겁나냐고요? 겁나죠.

그런데 체포되고 싶지 않은 데에는 겁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자긍심입니다.

저는 포르노배우라는 직업에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긍지를 갖고 하는 일 때문에 체포되는 상황을,

누구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상황을

저는 도저히 납득 못하겠습니다.


“어어... 벌써 시간이 다 됐네요.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은데...

우선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이 직업에 발을 들이려면 신체적인 요건도 중요하지만

굳센 의지와 예리한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말씀,

그리고 일단 발을 들이고 나면

정신적으로 정말로 힘들고 외로울 테니까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사칠은 그런 멘트를 하고서도 방송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평소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담아만 둬야 했던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사칠은 이왕 이렇게 자리가 마련됐고 방송시간이 칼같이 정해진 것도 아니니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카메라를 끄려는 그레이스와 버지니아에게로 시선을 돌릴 때

현창 밖에 있는 대원의 모습이 보였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며 목숨을 건 작업을 마친 대원이

우주정거장으로 귀환하려고 우주를 헤엄치는 게 보였다.

한없이 굼떠 보이는 대원의 동작에서 필사적인 안간힘이 느껴졌다.

카메라로 시선을 돌린 이사칠은 손을 들어 두 사람을 제지하고는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시간이 길어졌지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포르노배우로 일하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돈, 중요하죠.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거겠죠.

그런데 포르노배우를 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포르노배우가 되고자 한다면,

그 이유는 실생활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성적 판타지를 작품으로 구현하면서

주체 못할 성적 욕구를 달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온갖 불이익과 제약과 쓰라림을 감수하고도 남을 정도의 쾌감을 느끼는 것을 통해

팬들에게 쾌감을 안겨주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요.


“그렇지만 돈 때문이어서는 안 됩니다.

순전히 돈을 벌 욕심으로 이 바닥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돈도 못 벌고 망가지는 모습을 숱하게 봤습니다.

그러니 포르노는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바닥에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만족감을 느끼면서 자존감을 갖고 이 바닥을 떠나 온전한 사회인으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사칠은 일부 톱스타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출연료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건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그 얘기를 하다보면 불가피하게 성매매 같은 업계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들 중에는 적은 출연료를 받으면서도

‘몸값’을 높이려고 포르노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몸값’은 여러 분야에 적용된다.

스트립클럽에 출연해서 받는 공연료,

성인용 행사와 B급 영화에 출연해서 받는 출연료,

성인용 잡지나 웹사이트에 게재될 화보를 촬영하고 받는 모델료,

은밀한 신체부위의 본을 따서 제작된 성인용품에

몸과 얼굴과 이름을 빌려주고 받는 수수료,

그리고 업계가 모르는 척하지만 공공연히 이뤄지는 거래에서 책정되는 진짜 ‘몸값’까지.


일상생활에서 사용한 물건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하는 배우도 많다.

이사칠은 유명한 배우가 썼던 낡은 슬리퍼와 속옷 같은 것들을

터무니없는 돈을 주고 사들이는 사람이 생각 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세상에는 평범한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 못할 욕구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걸,

인간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이 바닥은 프로야구와 비슷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선수들은 일반인들은 상상만 할 수 있는 떼돈을 벌지만

마이너리그를 벗어나지 못하는 선수들은 햄버거만 먹으며 근근이 살아간다.

이 바닥도 마찬가지다.

극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은 대저택에 살고 명품차를 타면서 호화로운 삶을 살지만

대부분의 그렇고 그런 배우들은 밑바닥을 전전하다 망가지고 만다.

데뷔했다 하더라도 그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올라가게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피라미드의 밑바닥만 전전하다 떠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사칠은 돈 때문에 포르노를 찍지는 말라고 조언했지만,

정작 그 자신도 돈 때문에 찍은 작품이 많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어떻게 생계를 꾸리고

그의 이름을 내건 제작사를 굴리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줬겠는가?

당장 이 우주여행도 돈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작사를 팔고 전 재산을 처분했어도 여행경비를 대는 데는 부족했지만 말이다.

그가 MS 프로젝트에 합류할 수 있게 된 배경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품은 의문도

이 여행에 드는 천문학적 수준의 경비를 그가 어떻게 마련했는가 하는 거였다.

이사칠이 남들에게는 밝히지 못하는 비용의 출처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놈의 돈, 돈, 돈.


이사칠은 생방송 유료 시청 안내를 하고는 마무리 멘트를 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이번 퍼포먼스에서 저와 공연할, 외모는 청초하지만

일단 달아오르면 그 누구보다 섹시한 배우 그레이스 오의 그물위키 읽기가 방송됩니다.

저한테 보내신 것처럼 그레이스한테도 질문 많이 보내주세요.

저는 이틀 후 이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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