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나를 감싸주고 있었던 아주 큰 한꺼풀이 벗겨져 진짜 맨 얼굴을 마주해야 되니 말이다. 특히 이 달콤한 대기업의 복지를 걷어차고 나오자니 솔직히 약간의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언제부터 퇴사가 꿈이 되었을까. 2018년 처음 이직하며 여기에 발을 담근 순간 부터 였었나.
지난 2년은 내가 틀린것인지 아니면 여기가 잘못된 것인지, 내가 부적응자인지 아니면 이 조직이 날 받아주지 않는 것인지와 싸우는 터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고민을 꼭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회사일 하면서 도대체 왜 나의 존재와 옳고 그름을 증명 하는데 이렇게 많은 감정과 시간을 소모해야 되는 것인가.
그래서 그냥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내 존재와 옳음을 끊임없이 시험한다면 그냥 그게 잘못된거라고, 나 스스로 위안하며 답을 찾기로 했다. 떠나가는 마당에 뭐, 원망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2년전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분명 여기서 배운것들은 많으니까.
그냥 이 회사와 나의 인연의 유통기한은 여기까지였다. 여기까지가 내 삶에서 할일을 다 한 거다.
애초에 나는 떠나간 것 들에 대한 미련이 많은 사람이다. 누군가와 이별할 때, 오래 몸 담았던 곳을 떠날 때, 추억이 담긴 소지품을 정리할 때, 하다 못해 계절마다 옷장을 정리할때도 뭔가를 잘 놓지 못한다. 그래서 전 회사를 떠날 때 아주 시원하게 떠난것은 아니었다. 그때의 감정은 후련하기보다는 미안함, 미련, 두려움이었다. 공채로 입사한 첫 직장의 같은 팀에서 7년 반을 있으면서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은 거의 안 했던것 같다. 7년간 술고동락한 선배와 후배들을 뒤로 하고 혼자 떠나오며 숱하게 그 시절을, 그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회사를 옮기면서 새로운 조직과 사람에게 더욱 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결론적으로 조직에 정을 주지 않는 데는 성공했으나,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 데는 실패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내 또래들과 함께 일하는 느낌은 새로웠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선배들과 함께 했었던 전 직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다. 비슷해보이지만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한 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유쾌하고 즐겁게 나를 인연으로 받아줬다. 퇴사를 결심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결국 나와 함께 했던 이 인연들이다.
지난 10년 동안 월급이 없는 삶을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어디엔가 소속되어 계속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다. 그래서 일단 한번 쉬어볼까 한다.앞으로 10년, 20년을 더 달리려면, 인생 퇴직 전 마지막 휴식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