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 틱...붐!’ 리뷰
스물아홉. 꿈을 접기엔 너무 이르고 꿈만 꾸기엔 너무 늦어버린 나이. 이루지 못한 꿈이 무거운 추가 되어 발목을 잡아끄는 순간, 서른이라는 전환점을 앞둔 그 나이는 어쩌면 내 모든 시간을 정리해야 하는 데드라인 같기도 하다. 그렇게 좌절된 꿈 앞에서 주춤대는 시간, 이렇게 살아도 되냐는 뜨거운 질문이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답안지를 건네받는 순간 심장이 싸늘하게 변한다. 그러면 우리는 마치 뜨겁게 달아오른 돌 같은 상태가 된다. 찬물을 끼얹어도 쉬 식지 않고, 불을 붙이려 애써보지만 절대 불타오르지는 않는다.
젊은 꿈, 그 통증과 희망
1990년 뉴욕, 존(앤드루 가필드)은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뮤지컬의 전설적인 작품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작곡에 매진한다. 인생의 가장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쇼 케이스를 앞두고 뉴욕이 아닌 곳에서 예술 강사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여자 친구 수잔(알렉산드라 십), 배우의 꿈을 접고 경제적으로 안정적 삶을 선택한 친구 마이클(로빈 데 헤수스)과의 갈등, 그리고 에이즈로 죽어가는 친구들이 그를 어지럽게 만든다. 막 서른 살 생일은 다가오고, 존은 예술가로서 계속 버티며 살아갈 수 있을지 불안하다.
우리에게는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이자 극작가로 알려진 조나단 라슨의 유작 뮤지컬 ‘틱, 틱...붐!’은 30살 조나단이 1인 뮤지컬로 만들어 본인이 직접 수차례 워크숍을 가졌던 작품이다. 동명의 뮤지컬을 바탕으로 린 마누엘 미란다 감독은 ‘렌트’라는 전설적인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닌 무명 뮤지컬 작곡가의 꿈과 도전, 좌절과 그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린 마누엘 미란다 감독은 이민자들의 삶을 힙합과 라틴 음악을 통해 풀어낸 뮤지컬 ‘인 더 하이츠’를 통해 브로드웨이에서 데뷔한 작사, 작곡가이자 극작가 겸 배우이다. 실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뮤지컬로 꿈을 꾸었던 본인의 경험담을 천재 뮤지션 조나단 라슨에 덧입힌 덕분에 조나단 라슨은 영화 속에서 훨씬 더 입체적으로 부활한다. 그래서 예술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첫 영화를 만들었다.
무엇도 될 수 없을 것 같아 무력하면서도 무엇이라도 되어야겠다는 세기말의 정서가 떠돌던 90년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이야기를 통해 2021년, 오늘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고민과 현실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시대는 변했지만, 꿈을 꾸는 청춘의 고민 속에는 언제든 날 것 그대로의 비릿한 통증과 꿰매어서라도 이어주고 싶은 희망이 동시에 담긴다.
서른, 잔치를 하다
영화의 시작부터 존은 자신이 미래에 전설적 뮤지컬 ‘렌트’를 작곡했다고 말하며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는 것도 이야기한다. 존의 이야기는 실제 존의 뮤지컬 공연 장면과 존의 실제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형식 속에 뮤지컬이라는 판타지를 담은 셈인데 분절되기 쉬운 두 가지 공간을 이어주는 것은 빼어난 음악이다. 빼어난 음악들이 존의 감정과 존의 시간을 동그랗게 감싼다.
실제로 조나단 라슨은 너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이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는 다소 신파로 흐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미란다 감독은 그를 추모하지도 삶의 허무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초월해 살아있는 현재, 후회와 고통으로 점철된 현실이라도 살아 숨 쉬는 현재, 꿈을 꾸고 도전하는 현재야 말로 날 것 그대로의 삶이라는 사실을 긍정한다. 그래서 어쩌면 평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고조시키고, 시대의 청춘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한다.
영화에는 우리가 흔히 만나는 다양한 유형의 예술가 지망생이 등장한다. 존처럼 어린 시절의 꿈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존은 자그마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곡을 했다.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올 인을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같은 꿈을 꿨던 친구 마이클은 현실적인 선택을 한 예술가의 다른 길을 보여준다. 수잔은 안무가로서의 길이 아니라 예술 교육의 길을 택한다. 하지만 이들은 갈등하지 않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다독여준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나와 다른 개인의 삶과 그 태도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법을 배운다.
뮤지컬 영화의 장점을 살려 지긋지긋한 카페가 뮤지컬 공연장이 되는 장면과 수영장 바닥이 거대한 악보가 되어 음표가 그려지는 순간은 판타지로서 우리가 왜 꿈을 꿔야하는지를 설득할 만큼 짜릿하고 아름답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지만 음향이 좋은 대형 스크린으로 보면 좋은 작품이라 앞서 극장 개봉 후 온라인 공개했다.
조나단 라슨은 서른이라는 시간을 두려워했지만, 서른을 넘긴 후 ‘렌트’를 썼다. 하지만 세계적인 성공을 직접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아마 그가 서른이라는 산을 넘지 못하고 꿈을 접어버렸다면 우리는 ‘렌트’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앤드류 가필드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아주 강력한 틀에 갇히지 않고 조나단 라슨이라는 예술가의 꿈을 세련되게 현재화한다.
우리의 꿈은 마치 구겨진 종이 같다. 아무리 펴보려 애써도 한번 구겨진 종이처럼 마음에는 주름이 남는다. 그리고 주름을 따라 생긴 길이 나의 앞길이 될지 뒷걸음이 될지 알 수가 없다. ‘틱, 틱...붐!’은 흉터처럼 남은 흔적들 사이에서 내 마음이 접힌 곳이 바로 자신이 나가야 하는 길이 되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버리지 못한 청춘의 꿈이 아주 긴 어둠인줄 알았는데, 불이 켜지기 전 아주 잠시의 암전일 뿐이라고 토닥여준다.
[영화 사운드트랙 정보]
틱, 틱..., 붐 tick, tick...BOOM! (Soundtrack from the Netflix Film)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별도의 OST는 발매하지 않았고,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 등을 통해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