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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Apr 09. 2024

고칠 수 없는, 깊은 슬픔

영화 <마더스> 리뷰

영화 <마더스> 스틸 컷

살면서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또 그만큼을 잊고 산다. 고맙게도 시간은 마법처럼 우리를 살게 한다. 잃어버린 사람의 빈자리를 확인하고 그리워하고 상실감에 젖어들지만 우리는 먹고, 일하고, 화내고 울다가 때로는 웃으면서 또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상실은 절대 잊히지 않고 마음의 흉으로 남는다. 상실의 시간에 갇힌 채, 휘적대느라 시간이 던져주는 망각이라는 축복을 품어볼 작정 없이 계속 두 발로 뻥 걷어차 버리고 만다.    


브누아 들롬 감독의 <마더스>는 상실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엄마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동갑내기 아들을 키우는 앨리스(제시카 차스테인)와 셀린(앤 해서웨이)은 자매처럼 가깝게 지낸다. 어느 날, 셀린의 아들이 2층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는데, 그것을 목격한 앨리스는 자신이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리고 셀린은 아이를 잃은 슬픔에 빠져 앨리스를 원망한다.


바바라 아벨의 소설 『증오의 뒤편』(Derrière La Haine)을 원작으로 한 2018년 벨기에 영화 <마더스 인스팅트>(Mother’s Instinct)의 리메이크 작품인 <마더스>는 두 개의 원작의 결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 두 배우의 밀도 있는 연기를 동력으로 삼아 이미 알려진 이야기의 공포감과 스릴을 밀도 있게 담아낸다. 그래서 관객들은 아이를 잃은 엄마와 자신의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 사이의 공감과 위로, 공포와 원망 사이, 공감을 얻기 힘든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처음, <마더스>가 집중하는 인물은 아들을 잃은 셀린이라는 엄마다. 자신만의 슬픔에 빠져 주위를 돌아볼 수가 없다. 당연히 친구로서의 역할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놓아버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슬픔을 극복하고 친절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다음 영화가 주목하는 앨리스라는 엄마는 친구의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의식과 자신의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의심하고 긴장하면서 과대망상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브누아 들롬 감독은 어떤 이의 상실은 극복되지 않고 실성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누구의 편에 서지 않고 단단하게 보여준다. 상실을 극복하는 이정표를 따라 지그재그로 걸어가는 동안, 사실 상실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타인에게 또 다른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다. 잃어버린 아이를 진짜로 잊어버리면 존재 자체가 휘발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은 상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족쇄가 된다. 


죽을 만큼 힘들어 바닥을 기더라도 진짜 죽지는 않고, 당장 죽어버릴 것 같이 숨이 막혀도 숨은 쉬고 있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복수하거나 자멸하는 대신 또 다른 엄마가 되기로 한 주인공의 선택은 묘하게 무섭지만 기묘하게 슬프다. 각각 입장이 다른 두 엄마의 어떤 지점에 공감을 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엔딩은 공포일수도 있고, 위안일수도 있다. 


<마더스>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엄마의 마음을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보여주지만, 어쩌면 가장 그 마음에 가까운 리포트 같기도 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어떤 사람의 마음은 너무 약해서 결국 악해지고야 만다. 죄책감, 위로, 상실과 극복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유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각자가 걷는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도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라 말하는 것 같다. 

 

어떤 우울은 우물 같아 그 어두움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어떤 슬픔의 상처는 너무 깊어, 결국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의 위로도, 친절한 시간의 위안도 우물의 끝에 가 닿을 수가 없다. 사실 <마더스>는 우울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 두 엄마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계속해서 마음이 쿵, 바닥으로 떨어진다. 어쩌면 우리에게 평생 4월은 상실의 달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물 같다. 그 슬픔과 우울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4월은 깊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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