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리뷰
[5월 가정의 달 기념 칼럼]
척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무관심한 척, 그리고 괜찮은 척 했다. 내 마음을 들키는 것이 끔찍해 애써 도망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과 제법 거리를 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렇게도 싫었던 선배의 행동을 따라하고 있고, 무심하게 살아왔던 부모의 표정을 닮아가고 있다. 게다가 그저 귀찮고 번거로워 밀어내는 후배의 눈빛은 이렇게 시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닮아가고 있다. 고작, 그런, 쓸쓸한 나를…….
늘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진아(공승연)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불편하다.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은 후 계속 전화를 하고, 교육을 맡은 신입사원 수진(정다은)은 필요 이상으로 친밀하게 굴어 귀찮게 한다. 어느 날, 진아는 출퇴근길에 복도에서 종종 말을 걸던 옆집 남자(김모범)가 혼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성훈(서현우)이 옆집으로 이사 온다.
진아는 콜센터 상담사이다. 친절한 것 같지만 사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전화를 걸어오는 무작위의 진상들을 응대하는 일은 일상이다. 상대가 내 감정을 살피지 않듯, 나도 상대의 감정에 무심하다. 진아는 애써, 마음을 다해 사람들을 밀어낸다. 그래서 얼핏 보면 혼자 사는 것이 제법 익숙하고 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혼자 있는 동안에는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혼자 점심을 먹을 때는 여지없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혼자 집에 남은 아버지의 행동을 감시 카메라로 관찰한다. 소통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상과 단절되고 싶지는 않아 보인다.
진아는 상처받기 싫어 스스로를 가둔 것처럼 보인다. 사실 혼자 있고 싶지 않지만, 가족들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도 계속 그녀에게 상처를 줬다. 가족을 방치하고 병에 걸려 되돌아온 아버지에게도, 그런 아버지에게 모든 재산을 남겨두고 간 엄마에게도 화를 내지 못한다.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우선 사과부터 해야 하는 콜센터 일도 익숙하다.
그런 그녀의 생활을 뒤흔든 건 새로운 사람들이다. 혼자 있기 싫어하는 붙임성 좋은 신입사원 수진과 남자가 죽은 집에 새로 이사 온 성훈은 계속해서 진아에게 말을 붙여, 그녀와 마음을 이어보려 한다. 하지만 냉정한 말로 끝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하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자신이 입주한 집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남자를 위해 장례를 열어주는 성훈의 마음이 진아에게 닿는다.
영화 속 진아가 카메라로 들여다본 아버지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배워보지 못한 현재의 아버지는 미디어가 내세우는 ‘부성’에의 강요와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삶 사이에서 비틀거린다. 존재하지만 아버지 구실을 못하는 자들, 무능하고 약한 남자로 형상화된 아버지는 어딘가에 실존하는 부재의 아버지보다 더 형편없다.
그래서 진아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놓아버리고 혼자 사는 삶을 더 굳게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순간 진아도 달라진다. 진아는 수진에게 마음을 다해 사과하고, 자신을 방치한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무관심으로 놓쳐버린 관계들을 하나씩 풀어본다. 그렇게 닫혔던 문이 삐죽 열리는 순간, 오래 묵은 마음의 원망을 놓아주고 진짜 혼자 사는 삶, 스스로를 책임지는 삶의 길 위에 설 수 있게 된다.
고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버튼 한 번에 휩쓸려 내려가 버리는 변기 물처럼, 사람들은 마음을 비우고 채우고 비우고 채워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함께 있다고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담배 연기처럼 잠시 머물다 가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을 나눠야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놓은 곳에서 마음을 나눠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법이라는 사실도…….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