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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Jun 07. 2024

끝끝내, 기어이 사랑

영화 <세기말의 사랑> 리뷰

<세기말의 사랑> 스틸 컷

1999년, 우리가 세기말이라 불렀던 시절. 20세기를 마지막으로 마치 세상이 끝이라도 날 것처럼 어수선했고, 21세기가 되면 마치 새 세상이 열릴 듯이 들떴던 그런 시간이었다. 21세기도 어느새 1분기가 지나고 있고 어린 시절 과학자들이 호언장담을 했던 로봇의 세상이 ‘결국’ 시작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나의 세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때처럼 여전히 마음이 부족하고, 여전히 사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때 우리가 간절하게 지키고 싶었던 것, 그리고 그때 간절히 사라지길 바랐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세기말이라 부르던 1999년. 한 회사의 경리로 일하는 영미(이유영)는 같은 회사의 배송기사 도영(노재원)을 짝사랑한다. 그래서 그의 횡령을 눈감아주고 빈 돈을 메우기 위해 부업을 한다. 게다가 사촌 오빠 대신 치매 걸린 큰어머니를 부양하는 등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영이 유부남인 것을 알게 되고, 횡령을 감춰준 죄로 교도소에 갇힌다. 그리고 출소하는 날, 교도소 바깥에는 도영의 아내라는 유진(임선우)이 기다리고 있다. 


줄거리만 보면 사기, 횡령, 치정, 불륜에 빠진 여인의 잔혹사처럼 보이지만 임선애 감독의 <세기말의 사랑>은 인간의 결핍을 서로의 체온으로 메워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따뜻한 영화다. 영미는 근래 본 가장 독특한 여성 캐릭터인데, 이유영은 억지스러운 설정처럼 보일 수도 있는 모든 장면을 동화가 아닌 현실로 끌어내리며 믿게 만든다. 얼굴이 세기말이라고 놀림을 받을 만큼 못난 여자로 설정되었지만, 이유영은 이전 그 어떤 영화에서 보다 예쁜 빛이 난다. 


영화는 두 개의 다른 영화를 보듯 색이 변하면서 영미의 인생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짝사랑과 과로에 시달리던 20세기의 영미는 한없이 검은 흑백이었는데, 출소를 하는 21세기의 영미는 예쁘게 알록달록한 색을 입었다. 칠흑 같은 삶을 살아온 영미에게 다채로운 색감이 주어지는 것이 마치 축복이자 선물 같다. 꾸역꾸역 사람의 구멍 난, 슬픈 마음을 들여다보고 끝끝내 맞잡는 그 손이 희망이라 말하지만 무작정 낙관으로 관망하지는 않는다. 결국 각자 제몫의 삶은 스스로 책임지는 거라는 사실도 방점처럼 꾹 눌러쓴다. 


묘하게도 <세기말의 사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함께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아내라는 여자는 어쩌면 불륜녀일 수도 있는 여자에게 방을 내어주고, 영미라는 여자는 짝사랑하는 남자의 아내를 곁에서 돌본다. 임선애 감독은 무너진 세상 속에서도 작은 연대가 희망이라고 속살거리는데, 그 입김이 너무 따뜻해 믿어보고 싶어진다. 겹겹이 쌓인 오해를 이해할만한 사정으로 바꾸면서 감독은 세상 가장 약자인 등장인물들 누구도 나쁜 마음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저런 못난 짓도, 그저 저 사람도 나처럼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이해하고 토닥인다. 


작정 없이 시시한 사람들의 삶을 무시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 영화의 시선이 우리의 눈높이에서 마주친다. 영미의 행동은 얼핏 보면 희생과 봉사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는 영미를 통해 시들지 않는 사랑을 본다. 유진은 늘 감추고 살았던 영미의 화상을 맨드라미를 닮았다고 말한다. 맨드라미의 꽃말이 ‘치정’과 ‘시들지 않는 사랑’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듯이 이 영화는 치정처럼 보이는, 진짜 사랑을 이야기한다. 끝나지 않은 영미와 도영의 만남, 환한 영미의 미소가 너무 예뻐, 이 사랑이 어딘가에는 있기를 바라게 된다. 우리가 세기말에 두고 온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더니, 어쩌면 새로운 세기를 시작할 때 우리가 가져온 것 역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곰곰, 누군가의 결핍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마음을 못나게 만드는 결핍은 선인장처럼 뾰족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생채기를 내고 밀어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결핍은 넉넉한 공간이 되어, 타인을 옆에 앉힐 수 있는 넓고 따뜻한 곁이 된다. 그런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있으면 모래알처럼 작지만 또 모여 있으면 모래사장처럼 눈이 부시게 반짝반짝 빛난다. 그런 빛을 모아 길을 밝힌 덕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끝끝내 사랑이었고, 기어이 사랑인 시간을 살아간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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