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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Jun 14. 2023

초심자의 가벼움

나의 멘토 스티브 잡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을 보여주셨다. 연설 도중에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화면을 정지시키고, 관련된 내용을 자세하게 해설해 주셨다. 평소 책을 가까이하고, 상식이 풍부한 선생님은 연설과 관련된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인 일화 말씀해 주셔서 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강연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점들의 연결(conneting the dots)', '사랑과 실패(love and loss)', '죽음(death)'이 그들이다. 나는 영어로 된 연설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스티브 잡스의 육성으로 그의 연설을 직접 들으니 생생한 현장감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동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던 보람이 있었는지, 원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도 많아서 영어에 대한 도전도 받았다. 연설 중에 어려운 내용은 원문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들으니 강연에 대한 이해도도 커졌고,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입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연설 중에 내가 감동했던 부분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는 '점들의 연결 (conneting the dots)'이라는 개념이다. 잡스는 부모님 저축의 상당 부분이 자신의 대학교 학비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서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기로 결심한다. 자퇴를 한 후에,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나 사라졌기에 평소에 듣고 싶었던 서체 수업을 청강한다. 당시에는 크게 의미 있지 않았던 이 서체 수업은 나중에 잡스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다양한 활자체와 폰트로 컴퓨터의 프로그램에 자리 잡게 된다. 공학적 영역의 컴퓨터 프로그램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예술의 한 장르인 서체가 우아하고 아름답게 연결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 한 '점들의 연결 (conneting the dots)'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가 자퇴를 하고 서체 수업을 청강했던 것은 Apple의 걸작품인 매킨토시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당시 스티브 잡스가 했던 선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했던 것뿐이다. 별 의미 없이 진행했던 일이 나중에 매킨토시를 설계할 때 예술적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점들의 연결 (conneting the dots)'이다.

 

이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비록 지금 우리가 하는 일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미래의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다. 어쨌든 간에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의 총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현재의 당면한 과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랑과 실패(love and loss)'에 관한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잡스는 아버지의 차고를 빌려서 창업해서 Apple이라는 최고의 회사를 일궈냈다. 10년 만에 2조 원대의 회사를 만든 스티브는 회사에서 추진하던 몇 가지 일에서 경영자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Apple에서 해고당한다.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다니?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일까? 그런 마음이 잡스에게도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실제로 잡스는 연설에서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는가?'라며 신세 한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티브는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서 NeXT와 Pixar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를 통해 다시 한번 재기를 위한 불꽃을 태운다. 잡스는 연설에서 Apple에서 해고당한 것이 인생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최고였다고 말한다. 발상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Apple이라는 거대한 공룡을 이끌면서 잡스는 성공에 대한 중압감과 실패에 대한 부담감에 짓눌렸다. 그런 그에게 해고는 다시 한번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는 '초심자의 가벼움'을 선물해 준 것이다. 해고당한 것을 선물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해고는 잡스에게 성공에 대한 부담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마음의 변화는 스티브 잡스를 자유롭게 해 주었고, 다시 한번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나는 이 부분에 크게 매료되었다. 당시의 나는 의대를 가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마음에 부담감만 쌓가고 있었다. 부모님도 은근히 기대를 하고 계셨고, 친구들과의 경쟁도 점점 의식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경쟁을 연료로 삼아 그들을 따라잡으며 공부하던 내가 막상 상위권으로 올라오니 이젠 지키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게다가 이런 부담감 때문인지 슬럼프 빠지게 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부담감에 삶이 팍팍해지면서 마음에 여유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완벽주의'라는 게 생겼다. 의대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실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생각과 아는 것을 완벽하게 맞춰야 한다는 것 때문에 점점 불안해졌다. 공부를 하지 않을 때는 불안한 마음에 시달렸고, 공부를 할 때에 완벽주의라는 강박에 시달렸다.

아는 내용도 꼼꼼하게 점검하지 않으면 불안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수학의 어려운 문제를 풀 때에는 복잡한 연결고리를 해결한 다음, 가벼운 계산은 생략해도 되는데, 마지막까지 정리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리저리 꼼꼼하게 확인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아까운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스티브 잡스의 실패는 의과대학에 대한 도전을 좀 더 가볍게 해 주었다. 아무리 내가 의사가 되고 싶어도, 지금 내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의 삶에 집중하지 못하고 '성공하고 싶다'라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나에게 스티브 잡스는 마치 머리를 내리차는 것처럼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초심자의 가벼움'  


나는 커다란 실패에도 실패가 끝내 패배로 이르게 하지 않고, 실패를 승리의 가교로 연결한 스티브 잡스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가 Apple에서 해고된 이후 무거운 부담감을 내려놓고 창의적인 도전을 계속했던 것처럼 나 또한 공부를 즐겁게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풀고, 잔뜩 움켜쥔 두 주먹을 펴고,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산보해 나가기로 했다.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이 순간을 열정으로 붙태우기로 했다.


담임 선생님 덕분에 또 한 명의 멘토를 얻었다. 스티브 잡스를 직접 만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내 삶에 빛을 던져주었다. 그의 강연은 공부에 지친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내 어깨를 가볍게 해 주었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을 모두 실천할 수는 없지만, 그의 연설을 가슴에 담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며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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