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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Aug 05. 2023

아이를 이기지 말라

아이의 욕구를 존중하라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내와 나는 실수투성이였다. 처음 직면하는 육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 허둥댔다. 아이와 놀아주기, 재우기, 우는 아이 달래기와 같은 것들은 왜 그렇게 어려운지. 아내는 상황별로 지인들에게 물어보며 정보를 찾았다. 때론 임기응변식으로 상황을 모면하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텼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지만, 마음만 있을 뿐 실제로는 육아에는 관심이 없었고,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육아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괜히 나섰다가 실수만 할 것 같아, 그리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필요한 경우에만 아내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내가 하는 일은 아내가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행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던 참에 아내가 푸름이 닷컴이라는 육아 사이트를 발견했다. 푸름이 닷컴은 《배려 깊은 사랑이 행복한 영재를 만든다》라는 책의 저자 최희수 작가님이 설립했는데,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핵심 요소인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다양한 육아법, 아이의 심리, 그림책, 부모 교육, 강연 등을 제공하였다. 초보 부모들에게 배려 깊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푸름아빠 최희수 대표의 강연도 있었다.


아내는 이 강연을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아내에게 끌려가다시피 해서 강연장에 갔다. 아내는 강연을 듣고 나는 주변에서 아이를 돌보는 식이었다. 강연을 듣지는 못했지만, 나처럼 아내들을 따라온 남편들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육아에 대한 아빠들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아이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회원들을 보며, 아이를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지를 배웠고, 아이를 키우는 데 엄마가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만큼 아빠의 역할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푸름이 닷컴에 발을 담그면서 주변의 회원들과 교제했고,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는 그분들을 통해 나 또한 육아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 그중에서 내가 배운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아이를 이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푸름아빠가 강조한 말이긴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를 몰랐다. ‘특이한 방식이긴 하지만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겠지’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는 푸름이 닷컴 덕분에 아빠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되었다. 특히 놀이와 사회성 부분에 관해서 아빠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푸름이 닷컴이 추천하는 육아 책을 읽었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육아에서 아빠가 맡아서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에는 놀이가 있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기, 자연과 함께 하는 여행, 캠핑, 운동과 같은 부분은 아빠들이 엄마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다행히 나는 이런 활동을 좋아했기에 아이들과의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축구, 씨름, 권투를 했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아이들과 놀 때, ‘놀이에서 이기지 않는다’를 대전제로 정했다. 우리 가족은 축구를 많이 했는데, 이기겠다는 승부욕을 내려놓으니 아이들에게 '축구란 재미있는 공놀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승부욕을 불태우기보다는 즐거움과 재미의 수단으로 축구를 즐겼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일 때 축구를 하러 가면, 나는 혼자서 둘을 상대했다. 딸은 주로 골키퍼와 수비를 보았고, 아들은 공격과 수비를 맡았다. 내가 주로 사용한 전략은 공의 위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세부적인 전술로는 딸과 대화를 하면서 공의 방향을 놓쳐버리는 것이다. 딸은 내가 공에 집중할까 봐 계속해서 말을 건다. 집에 갈 때,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말하면, 나는 ‘어떤 아이스크림을 원하느냐?’에서부터 ‘차라리 시원한 물이나 음료수는 어떻냐?’는 식의 대화를 한다. 그 사이에 아들은 공격 진영으로 넘어간다. 나는 딸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아들이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고는 수비를 하기 위해 뛰어간다. 아들은 쫓고 있는 나를 의식하며 득점을 위해 질주한다. 내가 수비 라인을 끌어올려서 아들을 거의 다 따라잡을 때쯤, 아들은 득점에 성공한다.

또 다른 전술은 딸이 수비에서 공을 몰고 나올 때 벌어진다. 나는 딸이 아들에게 패스할 길을 열어준다. 딸을 향해 갑자기 뛰어들면 당황해서 공을 아무렇게나 찰 수 있기에, 딸이 공을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놀이에 재미를 불어넣기 위해 간혹 압박을 가하지만, 웬만해서는 공을 빼앗지 않는다. 공을 빼앗더라도 다시 빼앗겨서 딸이 허무하게 실점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게 아들에게 패스가 연결될 길이 열리고, 나의 실점은 추가된다.

가끔 나도 득점을 해서 경기가 너무 싱겁게 끝나게 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불어넣어 아이들이 재미있게 뛰어놀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런 식으로 시소게임을 진행해서 최종적으로는 아이들이 이기게 했다. 아이들은 경기를 이긴 다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의기양양해서 집으로 향했다.           


씨름도 마찬가지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이용해서 아이를 높이 들어 기술을 걸지만, 아이는 착지하며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는 곧장 반격을 가한다. 몇 차례의 혼전 끝에 마지막 승자는 언제나 아들이다. 아들이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으면 딸이 말한다.      


“이번엔 나랑 씨름하자”      


딸은 아들과의 씨름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딸에게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로 아이를 칭찬한 다음에 딸의 허리춤을 잡는다. 딸과의 씨름은 더 조심해야 한다. 아이의 체중이 가벼워서 충격을 많이 받을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 너무 빨리 움직여서 아이를 무섭게 해도 안 되고, 아이를 내려놓을 때도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딸아이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높게 들렸다가 내려오면서 나의 다리를 잡고 넘어뜨리는 기술을 사용했다. 아이가 공격해 올 때, 나는 비틀거린다. 내가 넘어질 때 아이들은 환호했고, 승리의 쾌감에 도취되었다.


승리의 활력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가져다주었다. 아이들은 씨름에서 이기기 위해 안다리 걸기를 비롯한 각종 다리걸기 기술을 연마했으며, 나는 실감 나게 넘어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놀다 보니, 아이들은 씨름 실력이, 나는 연기 실력이 좋아졌다. 아이들은 이기는 재미와 놀이 그 자체에 푹 빠졌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아이를 이기지 말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인간은 놀이에서든, 경기에서든 본능적으로 이기고 싶어 한다. 게임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승부욕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아이들과의 놀이라고 하지만, 축구와 같은 경기를 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이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경기에서 이기는 쾌감은 언제나 짜릿하기에 아이들을 상대로 멋진 기술도 부려 보고 싶고,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지겠다'는 대원칙을 정해놓지 않는다면 결정적인 상황에서 아이를 이길지도 모른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누구든지 이기고 싶다. 승부에서 지면 화가 나고 감정이 상한다. 아이가 경기에서 패하게 되면, 경기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줄어든다. 패배가 쌓이면,  시합을 즐기지도 못하고, 놀이를 할 때 지는 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자란다. 이기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기에 결핍이,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에 무력감이 생긴다. 경기를 하면서도 자신감이 떨어져서 실력 발휘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이기지 말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꺽지 말라’라는 것이다. 아이는 잘하고 싶고, 존중받고 싶고, 배려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그렇기에 아이의 이기고 싶은 욕구는 당연히 우선시 되어야 한다. 아이는 승리를 통하여 자신감을 갖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간다. 그렇기에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라도 부모는 아이에게 져야 한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결정기가 있는지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성인이 되어서도 삐져나온다. 성인들 중에는 경기를 이기기 위해 상대편의 집중에 방해되는 말을 하거나, 신경전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운동보다 이기기 위해 경기에 참여해나' 할 정도로 승부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과 운동하다 보면 얼굴에 미소는 사라지고 냉정한 승부만이 남는다. 이 사람들은 꼴불견이다. 경기 중에 화가 나서 '다음부터는 함께 어울리지 않아야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들은 아마도 어린 시절에 양육자로부터 아이의 기본욕구를 충족받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대상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잘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또 자신이 잘하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아이가 놀이에 자주 이기면 그만큼 본인의 만족도가 커질 뿐만 아니라, 그 놀이를 좋아하게 된다. 좋아하는 놀이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자발적인 참가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적극적인 삶의 주최자로 키울 수 있다.

 

그렇기에 부디 아이의 관심의 싹을 일찍부터 자르는 행위를 하지 말자. 아이가 이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사랑으로 양육했으면 좋겠다.


혹자는 ‘성인이 일부러 아이에게 지는 것은 힘들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인생에 어떻게 이길 수만 있느냐? 인생이란 게 원래 만만치 않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인생이란 힘들고 어려운 일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이런 점도 한번 생각해 보자.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일찍부터 맞닥뜨리게 할 필요가 있을까?’     


언젠가는 냉정한 세상을 맞이하게 될 날이 있겠지만, 너무 일찍부터 아이에게 인생의 패배와 좌절을 가르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이 부모를 이길 수 있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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