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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Oct 03. 2023

아들과 함께하는 거제도 여행

부자간의 첫 여행

나는 아들을 어떻게든 달래주고 싶었다.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들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들이 공부를 잘해도, 혹은 공부를 못하더라도 우리 아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부모가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아이를 비난하고 아이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아들은 아직 어리고, 변화의 가능성도 많다. 무엇보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또 존중하는 것이 부모가 갖추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하면 자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아이와 더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아들을 윽박지르고 잔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마음을 터놓고 차분하게 대화하며, 아이가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시키고, 아이의 학습에 동행해야 할 것이다.


아내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내는 장인어른이 공부와 관련해서 터무니없는 기대를 거셨다고 하는데, 아내가 장인어른의 기대가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어르신이 사랑을 거두었다고 하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아내는 다른 무엇보다도 아들의 공부에 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본인의 공부 상처를 아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안 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번 일로 인하여 두 사람이 냉각기를 갖는 분위기다. 그 사이에 서로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자리 잡길 바랄 뿐이다.


나는 아들에게 “다가오는 주말에 아빠와 여행 갈까?”라는 제안을 했다. 어차피 집에 있어봤자 엄마와 부딪히게 될 것이고, 서로가 불편하게 지내는 것보다 엄마가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들과 둘이서 새로운 곳을 여행하며 멋진 광경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기분 전환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들은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부자간의 거제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거제도에 도착한 다음 외도 보타니아로 향하는 유람선 티켓을 끊었다. 외도 보타니아는 유람선을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섬인데, 유람선은 외도에 입항하기 전에 거제도의 명물인 해금강을 한 바퀴 돈다.


유람선에 오르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한려수도에 펼쳐진 아름다운 섬과 바다 풍경,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우리의 여행을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유람선은 해금강을 한 바퀴 돌고서 외도에 안전하게 접안했다. 배에서 내리는 동안에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2시간 후에 배가 다시 돌아오니 시간에 맞춰 승선하라는 것이었다.


외도 보타니아는 1973년에 한 부부가 사들인 섬으로 1990년대에 본격적인 개발을 거쳐 섬 전체가 정원으로 탈바꿈된 곳이다. 특히 이곳은 겨울연가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 곳인데, 주인공인 배우 배용준과 최지우가 마지막 회에서 재회하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덕분에 누적 방문객이 2천만 명 이상이나 된다.


외도 보타니아 입구


부부는 이 섬을 처음부터 식물원을 계획하고 만들지는 않았다. 1969년 부부가 외도에 낚시하러 왔다가 하룻밤 묵으면서 이곳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외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했다. 늙으면 낚시질이나 하며 소일하려고 했던 부부는 우연한 기회에 집을 한 채씩 매입하게 되었고, 점점 매입 주택 수를 늘려가다가 결국은  섬의 주인이 되었다.

사람들이 섬을 떠나면서 싼 가격에 주택을 매입할 수 있었던 부부는 처음에는 이곳에서 농장 사업을 시작했다. 밀감나무 3000그루와 편백나무 8000그루를 심었는데, 하필이면 그해 유례없는 한파로 피땀 흘려 가꾼 농장이 초토화되었다.

이후로도 쉬운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새롭게 시작한 양돈 사업은  한우 파동과 양돈 파동이 겹치며 실패하였다. 부부는 망연자실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꽃을 좋아하던 부부가 꽃과 나무를 심으며 거대한 식물원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뒤 본격적으로 정원을 조성했다.

1970년 대에는 거제도에서 외도까지 작은 고깃배로 오가던 시절이었기에 식물원을 조성하려면 자그마한 배에 건축자재와 꽃나무 등을 일일이 실어 날라야 했는데, 부부는 30여 년 동안 그들이 가진 모든 시간과 노력, 자본을 투입하여 결국에는 오늘날의 보타니아 식물원이 결실을 맺었다.


외도 보타니아의 비너스 가든


외도의 탄생 이야기를 알고 나니, 이 섬이 훨씬 더 친숙해지는 것 같다. 섬을 돌아보면서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는 부부의 손길을 느끼며 사람의 힘이란 게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서 새삼 깨닫는다.

      

우리는 외도를 천천히 거닐었다. 2019년의 10월은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습도도 높아 섬을 둘러보는데 땀이 흘렀다. 때마침 산책로 곳곳에 가게가 있어서 여행자들이 멈춰 서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도 더위와 갈증을 해결하고자 아이스크림과 물을 샀다.


아들과 나는 섬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이 식물원에 얽혀 있는 배경과 그간 부자지간에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아들과 여행을 하며 오랜만에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유람선을 타고 육지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시간이 되었다. 낮부터 계속 걸어 다녔기에 활동량도 많아서 배가 많이 고팠다. 아들은 고기를 좋아하는데, 낯선 곳에서 둘이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될 것 같아 간단한 메뉴를 검색해 보았다. 때마침 멀지 않은 곳에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온 중앙식육식당이 있었다. 주메뉴는 두루치기 정식인데 밑반찬도 푸짐해서 아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시장 입구라서 그런지 약간 어수선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곳이 더 편안했다. 두루치기 정식을 2인분 시켰는데, 배가 고팠던 우리는 식사가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정량을 금방 해치워버렸다. 밥을 한 그릇 더 추가해서 나눠 먹으니 배가 충분히 찼다.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한 게 역시 시장 인심은 후덕했다.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샤인 머스캣이라는 포도를 샀다. 샤인 머스캣은 처음 들어보는 품종인데, 씨가 없어서 껍질째 먹는 포도라고 하는데 당도까지 높다고 했다. 1송이에 만 원이라고 해서, 무슨 포도 한 송이가 만 원이나 하냐며 깜짝 놀랐지만, 저녁에 간단하게 먹을 간식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리고 여행 온 기분에 맛이나 한번 보자는 생각에 1송이를 샀다.     


호텔에 도착한 후에 치킨을 시켰다. 치킨이 배달되는 동안 나는 샤인 머스캣을 깨끗하게 씻었다. 샤인 머스캣은 알이 크고 껍질은 유난히 탄력 있고 매끄러웠다. 아들과 시험 삼아 한 알씩만 떼어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어보았던 그 어떤 포도보다도 달콤하고 맛있었다.      


치킨과 샤인 머스캣, 맥주와 콜라로 우리는 조촐한 파티를 했다. 나는 아들과 단둘이서 하는 여행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대략 20년쯤 흐른 후에 내가 할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30대 후반이나 40대의 성인이 되었을 때도 이런 여행이 가능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쨌든 간에 아들도 그렇게 불편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 여행으로 아들이 공부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해소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아들과 나는 생각나는 데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학교 생활을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선생님인데도 아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별로 물어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아들은 공부 빼고는 잘 지낸다고 말했다.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공부는 고등학교에 가서 해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아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학교 생활 외에도 게임과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들의 목소리가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 역시 게임은 아들의 관심 분야가 확실한 것 같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좋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말하면 안 되는지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이런 분위기가 좋다. 그래야 서로를 더 잘알 수 있고, 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그러다가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사실 이 여행에서 아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냐고?   

  

그 이야기가 나오자, 아들은 억울했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이야기인즉슨, 당시에는 엄마가 공부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괴로웠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이라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조금은 더 놀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는데, 계속해서 공부 얘기만 하니까 아들은 마음이 힘들었다고 한다. 얼마나 괴로웠던지 가출까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생이 가출을 한다고 해서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먹고살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가출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엄마가 공부에 관해 심한 잔소리를 해서 아들의 마음이 파도에 일렁이듯 소용돌이쳤다고 했다. 특히 그날은 기분이 유난히 좋아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즐거운 상상에 빠져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는데, 엄마가 흥을 깨버렸다고 했다. 아들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기관총을 난사하듯이 하고 가버린 엄마가 지독하게 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물었다. “아빠, 그날 내가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알아?” 잠시 시간을 돌려 가만히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적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글쎄”라고 대답했다. 아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날이 내 생일이었어”라고 쿨하게 말했다.     

 

'아차! 아들의 생일도 몰랐다니'


아마도 아내가 아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은 시점이 아들의 생일이 시작되던 새벽 무렵이었던 모양이다. 아들은 가끔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데, 그날 새벽에 생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생일로 접어드는 그 시간에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자축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들어와서는 축하해 주지는 못할 망정 공부 안 한다고 잔소리만 해댔으니, 아들의 감정이 상할만했다. 다른 날도 아니고 하나뿐인 아들의 생일날인데, 생일을 축하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잔소리만 해댔으니, 자신에 대한 조그만 배려도 없었다는 것 때문에 아들이 화가 난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난 후에, ‘아들은 엄마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되돌려 줘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의 생일이 되던 10월에, 새벽 12시가 넘어가자마자 본인이 당한 패턴과 동일하게 엄마를 찾아가서 복수를 했다고 했다.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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