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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Sep 30. 2023

그놈의 공부가 뭔지?

엄마는 폭주기관차

아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무심코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곤 했다. 코로나 이후로 외부와 접촉이 차단되면서 무료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일종의 습관처럼 지속하고 있. 별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재미있다나.


창문을 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는 아들. 어떤 날은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고, 또 어떤 날은 우수에 젖은 채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나는 아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반짝이는 별처럼 밝은 꿈도 꾸고, 미래에 펼쳐질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이 처한 처지와 하기 싫은 공부에 대해서도 아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별과 대화도 한다고 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다른 상상력을 가진 아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소통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들 혼자서 본인의 심경을 무심코 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하기 싫은 공부는 어떻게 하면 되니?'라 에게 질문하 그에 대한 답으로 '원래 산다는  하기 싫은 에 적응하는 것이야'라는 식의 대화를 이어가는 식이다.


그렇게 아들이 매일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고 믿었다. 아들의 외로운 방황길에 밤하늘의 별과 달이 새로운 친구가 된 것 같아 작은 위로가 되었다.  이런 사색과 담금질의 순간이 아들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아내에게 반항하기 두 달쯤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도 아들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도심의 불빛이 하나, 둘 꺼지고 아들이 좋아하는 보름달이 높이 솟아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들은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는지 음악을 틀어 놓고서는 조용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후렴부의 반복되는 구간에는 휘파람을 불면서 노래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혼자서도 자연과 어울리고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아들은 과연 '낭만소년'이라 부를 만했다.

 

그 순간, 아내가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 아들 방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로 그날의 공부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아내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앞 아들의 학업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성적이 안 나오긴 했지만, 코로나의 특수성과 아직 게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학생 아들에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지만, 아내 생각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아들은 갑작스러운 아내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을 향해 아내 일장 훈계를 하기 시작됐다. ‘왜 공부를 하지 않는지? 게임은 언제까지 할 건지? 대학은 갈 마음은 있는지? 무슨 정신으로 사는지?’라며 아들을 몰아붙였다.   

  

아내의 도발에 아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아내 잔소리는 늘어졌고 아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아들은 그저 엄마의 잔소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전에 아들은 '엄마의 질문에 대답을 잘못하면 잔소리가 길어진다'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아내는 분명 말을 길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상대가 아내의 말을 인정하지 않으면 잔소리는 더 길어진다. 마치 답을 정해놓고서 대화를 하자는 식으로 사람을 대하니 상대방은 혼란스럽다. 그러기에 나는 아들의 묵비권 행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아들에게 아내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고 소리쳤다. 아들은 잔소리가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가만있는 것인데, 아내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내의 극성에 마지못해 최소한의 응답을 하면 번에는 아들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아직 어린 아들에게 어떤 대화를 기대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내는 아들을 너무 심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아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아내의 잔소리를 묵묵히 감당야 했다.

    

아내 공부와 관련해서 아이를 야단칠 때 가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조짐이 보일 때, 나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아들을 보호한 적이 있다. 평소와 다른 아내를 보며 내가 개입하는 것 말고는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내를 완력으로 붙잡고는 아들을 자기 방으로 돌려보냈다.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데, 아내는 이번에는 나를 대상으로 화력을 집중했다. 자신을 막아서는 나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며, 더 큰 싸움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아내는 내가 아이를 지나치게 기다려 주는 바람에 아이 교육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를 실패의 주범이라며, 더 이상 아이 교육에 나서지 말라고 했다. 나는 나대로 아내를 비난하며 한바탕 크게 부딪힌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부부싸움이 시작된다. 묵혔던 사건까지 싸움에 끓어 들이면 집 안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그런 경험 때문에 이번에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거실에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아내는 말 그대로 폭주기관차 같다. 공부 때문에 조바심이 났는지 아들을 보고서도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아내가 아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고, 공부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에 화가 나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들을 잘 키울 수가 없다. 오히려 아들의 마음이 떠나 엇나갈까 봐 두려운 마음이 생길 정도이다.

   

아이는 학업에 관심이 없는데, 부모가 공부에 대해 강조해 봤자 자녀는 잔소리로 받아들일 뿐이다. 아내에게도 여러 번 얘기했고, 아내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안타깝지만 나도 어떻게 할 도리 없다. 내가 말린다고 아들을 잡지 않을 것도 아니기에 대처할 방법을 모르겠다.   

  

아내도 어린 시절에 아이에게 쏟았던 관심과 사랑이 이렇게 되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인지 아내는 배고픈 맹수처럼 아들을 한 번 물면 가만두질 않는다.   


아들이 부디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바탕 난장판이 펼쳐진 뒤에 아내가 아들 방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아들은 억울한 마음에 울고 있다. 다 큰 아들이 눈물을 펑펑 쏟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어린애처럼 울음보가 터져 ‘엉엉’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무너다. 나는 아들의 방에 들어가 울고 있는 아들을 가만히 안아준다. 아들의 마음을 달래준다고 하지만, 이미 아들의 마음은 생채기가 나버렸다. 


'그놈의 공부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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