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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Oct 09. 2023

상실에 대처하는 자세

내가 우울감에 빠진 이유

이번 추석에는 게으름이 심하게 찾아왔다. 6일간의 연휴 기간에 꼭 필요한 일정을 제외하고는 약속을 거의 잡지 않았다. 그렇게 글을 쓸 시간을 충분히 확보했다. 평소에 글 쓰는 시간이 부족해서 시간을 내느라 고심했는데, 충분한 시간 확보만으로도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적으로 충분히 여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글이 써지지 않는다.


아침마다 피곤함이 몰려와서 늦잠을 잤고,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이부자리에서 뒹굴기만 한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든다. 이 상황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중요한 시간을 쓸데없이 흘려보내는 것 같아 마음속에 부담만 쌓여간다.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카페에서 컴퓨터를 켜지만, 글은 쓰지 않고, 이곳저곳 검색을 하면서 시간만 질질 끌고 있다. 연휴에 밀린 글을 쓰겠다는 평소의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나 자신에 실망한 채 하루가 지나간다.


며칠 동안 비슷한 일상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무슨 문제일까?’, ‘언제부터 이랬을까?’ 내 마음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니 최근에 <아들이 수학을 포기했다>라는 주제로 글을 쓸 때부터 마음속에 불편함이 일렁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거운 내용이긴 하지만 벌써 3년이나 지난 일인데, 아들의 안타까웠던 때를 회상하니 여전히 내 마음이 힘들었나 보다.  

   

그 당시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아들의 공부 실패로 인해 우리 부부는 커다란 감정의 격동을 일으켰다. 나는 나대로 아들이 중요한 시기에 흥청망청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바라보며 적잖게 실망했다. 특히 어릴 때 영특한 면이 있었던 아들이 공부를 하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곧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게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애써 부정하면서 정신 승리를 외치고 있었다.


아내 또한 평소와는 다르게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아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커서 그런지,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분노를 조절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정성을 다해 돌보았고, 가진 사랑의 전부를 쏟아부었기에 이토록 참혹한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렇기에 우리 부부의 멘털 붕괴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끝이 없어 보이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던 우리 부부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가 어떤 심리적인 상태를 겪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는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을 상담한 뒤 그들이 거치는 심리적 단계를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으로 정리했다.


이 다섯 단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때와 같은 상실을 맞이해서 삶 속에서 배우게 되는 기본적인 틀을 말하는데, 인간은 예상치 못한 상실을 맞이해서 심리적으로 이 단계들을 거친다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이별을 경험할 때 예기치 못한 분노가 갑자기 폭발하거나 현실을 부정하는 것 또는 장기간의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지극히 정상적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실의 단계를 거치면서 경험하는 감정적인 소용돌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이별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는 아들의 공부 실패가 곧 상실을 의미했다. 우리가 겪었던 감정은 상실을 경험하며 발생하는 심리적인 상황과 동일한 패턴을 띄었다. 아들에 대한 기대치가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의 전개는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질 때 겪는 정신적인 충격과 비슷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똑똑했던 아들이 공부를 못할 리가 없어. 곧 제 자리를 찾을 거야’라며 아들의 상황을 부정하려고 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분노가 일었지만 억지로 화를 억누르며 심각한 우울감에 빠졌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삶의 재미와 흥미가 사라졌다. 이런 상태를 다르게 말하면 절망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벌써 3년 전에 있었던 이 일에 대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우울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에게는 아직도 그때의 상황을 대면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두렵고 힘든 일인 것 같다.      


아내 또한 어린 시절의 영특했던 아들이 공부를 못할 리가 없다는 부정에서 한동안 빠져 있었을 것이다. 이후에 아내는 나와 아들에게 분노하며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했다. 심한 좌절감에 빠져서 건들면 터질 것처럼 화를 냈다.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조절해 보려고 했지만, 한 번 밖으로 삐져나오기 시작한 분노는 통제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지금은 이 힘겹고 고통스러운 터널을 통과하였다. 당시에 우리가 상실의 단계에 대해 좀 더 알고, 이해했더라면 이런 상황에 대처하면서 훨씬 더 심리적으로 위로가 되고 안전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상실의 고통스러운 터널을 통과할 때, 갑자기 찾아오는 심리적인 갈등에 잘 대처했으면 좋겠다. 변덕스러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극한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감싸줬으면 좋겠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이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잘 챙겼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질책하는 대신에 용서하고 포용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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