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가 쓴 《상실 수업》에 따르면 상실에서 온전하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애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애도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에 겪는 슬픔의 단계를 말하는데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단계를 거친다. 모든 사람이 이 다섯 단계를 거치지는 않으며, 어떤 반응을 먼저 겪고, 또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없다. 다만 이 단계를 통해 슬픔의 영역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슬픔에서 치유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흔히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로 상실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표현하는데, 이는어떤 슬픔과 괴로움도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고,굳이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해결되기 때문일 것이다.시간은 만병통치약으로 아픔이 지나간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치유에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치유 과정이 일차 방정식의 그래프처럼 직선적이지 않기에 눈에 띄는 뚜렷한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치유의 과정은 알 수 없는 고차방정식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N차 함수의 그래프를 띤다. 온전히 자신을 회복해 나가다가도 갑자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감정의 양극단을 쉴 새 없이 오가다가, 그 사이의 감정 상태를 두루 거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한 단계에 오래 머물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여러 단계를 수시로 경험하기도 한다. 결국은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치유가 일어난다.
나는 아들의 성적하락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우울한 감정에 머물러 있었다. 아들에 대한 기대치의 상실로 우울한 감정이 찾아온 것인데, 당시에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또 내가 어떤 감정의 상태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우수에 젖어 우울한 감정에서 헤매며, 좀처럼 절망한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차라리 아내처럼 분노하며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더 좋아 보인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가끔 우울한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나에게 어떤 고민거리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주로 나타나는 감정이 우울함인데, 이전에는 이 감정을 짜증이라고 생각했었다. 감정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감정의 분화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아이의 성적하락과 관련해서 내가 느끼는짜증은 우울함이라는 감정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듯 나의 우울함은 상실을 맞이할 때 주로 사용하는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는데, 이번 기회에 이 우울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근원에 대해서 파헤쳐 보았다. 평소 ‘밝고 활기찬 성격을 지녔기에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한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다가 내가 왜 애도의 주요 감정으로 우울함을 사용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나에게 의사가 될 것을 주문하셨다. 하지만 의사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기에 아버지의 과한 기대는 공부에 대한 부담만 가중시켰다. 노력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의사가 되지 못한 나를아버지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난하셨다.
나는 무서웠던 아버지에게 '노력할 만큼 했다'라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실패에 대한 모든 이유를 내 탓으로 돌렸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 돌리며, 죄책감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 힘든 감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감정에서 헤어 나오는지를 몰랐다.
당시의 나는 이 우울한 감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조차 없었다. 대화를 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기에 힘든 상황을 말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고,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아버지를 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종종 가을을 타는 남자처럼 남에게 말 못 할 우울한 감정에 빠져 지냈다. 그러면서 해결하지 못한 당시의 고민과 괴로움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 삼켜버렸다.
그때 삼켰던 나의 고민과 상념들이 오늘날 나에게 우울한 감정으로 되살아난다. 잊어버리고 지냈던 우울한 감정이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나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괴롭힌다.
아들에 대한 기대를 상실했을 때도 여지없이 우울함이 찾아왔다. 우울한 감정이 상실의 순간에 찾아올 수는 있지만, 이 감정에만 오랫동안 빠져 있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치유의 과정이긴 하지만 사람이 너무 흐느적거리기에 일상이 무너진다. 극도의 무기력함으로 삶에 대한 집중력도 사라진다.
영화 《굳 윌 헌팅》을 보면, 어린 시절에 입양과 파양, 양부의 학대로 인해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윌 헌팅(맷 데이먼)이 등장한다. 그는 수학, 법학, 역사학 등 모든 분야에 재능이 뛰어나지만,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인해 세상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불우한 반항아이다. 하버드 대학을 다니는 사랑하는 연인인 스카일리가 스탠퍼드 의대에 합격하며 윌에게 같이 떠날 것을 말하지만, '버림받음'에 대한 상처가 있는 윌은 두려움으로 헤어짐을 선택한다. 그런 윌에게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암스) 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It wa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야).”
윌은 숀의 말에 “알아요”라고 응답한다. 심리학에도 조예가 깊은 윌은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것이 아니기에 당연히 안다고 응답한 것이다. 그럼에도 숀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또 한 번 힘주어 말한다. 그에 대해 윌은 자기도 알고 있다고,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면서 반항적으로 항변한다. 그럼에도 숀은 멈추지 않는다. 숀은 윌에게 자신의 눈을 바라보라고 한 뒤에 다시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윌은 격렬하게 숀을 밀어내지만, 숀은 멈출 생각이 없다. 또다시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로 윌을 위로할 때 윌의 눈물이 터진다.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가슴으로 전해진 것이다. 가슴속의 울림을 통해 윌의 상처가 진정으로 위로받은 것이다.
지금 나에게도 이 말이 필요하다. 의사는 나의 꿈이 아니라 아버지의 꿈인데, 나는 오랫동안 죄책감에 빠져 우울한 감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가슴까지는 아직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어린 시절의 나를 괴롭히고 있던 오랜 상처를 이 기적의 말과 함께 떠나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