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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일출 Oct 16. 2023

꿈이 아들의 인생을 이끌다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와 데이비스 케슬러가 쓴 《인생 수업》이란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때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더 많이 성장합니다. 조건이 가장 나쁠 때, 오히려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배움을 통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삶입니다”


아들과의 관계가 최악의 순간으로 접어드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 부부는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들을 더 이상 조건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게 되었다. 아들이 인생에서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그것은 본인의 삶이고, 그 실패를 통해서 아들은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인생 수업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들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 우리에게 새로운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듯이 상실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꽃이 피어난 것이다.

     

우리의 변화된 태도 때문인지, 한때 가출까지 고려했던 아들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공부에 대한 부담은 사라지고, 일상에서 완전한 자유와 행복을 누렸다. 아들은 평소처럼 좋아하던 게임에 빠져 살았고, 밤새도록 유튜브를 시청했다.   

   

우리는 아들의 삶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등교에도 간섭하지 않았다. 모든 일상을 본인이 알아서 진행하도록 했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아도 다행히 등교 시간은 스스로 잘 챙겼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잠을 잤을 것이다. 그것도 아들이 선택한 삶이라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들의 성적은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곳까지 밀렸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이 지나갔다.


그런 아들의 생활과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전과는 다르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고, 공부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공부를 못하더라도 부모로서 사랑을 절대로 거두지 않을 것이라는 여유로움도 갖추게 되었다.         

 

이용규 선교사님이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중동 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선교사님은 학위를 받은 후에 자신에게 주어질 편안한 삶과 인간의 기대를 전부 내려놓고 선교를 위해 몽골로 떠났다.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저자가 몽골로 떠난 까닭은 자신의 성공과 명예보다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일상에서 온전히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의를 내려놓고, 오직 그분께 충성하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면 감히 흉내 내기도 힘든 일이다.          

이번에 아들의 방황을 겪으면서 이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이 떠올랐다.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내려놓는다는 것이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나 또한 아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들을 신뢰할 것이라는 마음이 형성되자 아들에 대한 욕심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결국 아들은 독립해서 떠날 것인데, 무얼 그렇게 우리는 기대했던 것일까?’ 우리 부부도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자녀에 대한 기대와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결심하자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가 아니라 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얼마나 잘 견뎌줬는지, 그런 아들이 얼마나 멋진 아이 인지가 보였다.     


그런 믿음 때문인지, 아니면 아들이 성장해서인지, 그도 아니면 우리가 성장해서인지 모르지만, 게임에만 빠져있던 아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아이가 스스로 시작한 공부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2학년 2학기부터 조금씩 공부에 진정성을 보이더니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가 확연히 달라졌다. 본인에게 맞는 학원을 알아봐 달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내신 성적이 바닥이기에 대학을 수시보다는 정시로 진학하겠다는 말도 했다. 어린 시절에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국어의 긴 지문도 그렇게 어렵거나 두렵지 않다고도 했다. 게다가 영어는 절대평가라서 등급을 올리기에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모두가 낯선 말이었다. 아이의 변화에 ‘저 애가 과연 내 아들이 맞나?’라고 말할 정도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그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해 나가기만 한다면 인생에서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그저 아들이 책상에 앉아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일이었다.    


3학년에 들어가서 첫 번째 모의고사를 치렀다. 아이 말대로 국어와 영어 점수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공부에서 주도성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아들은 국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수학도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아들이 수학을 포기하고 나머지 과목에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너무 늦은 시기라 지금 수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얼마나 점수가 오를까,라는 회의적인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점에 나는 아들에게 갑자기 공부를 하게 된 이유가 뭔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들의 변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꿈이 생겼어. 꿈이 나를 변하게 한 것 같아”          


아들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빠가 몇 년 동안 글을 쓰더니 결국 출판까지 해내는 것을 보고 자기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메모장에 시도 적어보고, 다양한 글감을 수집해서 습작도 해보았다고 하는데, 아빠가 책을 내는 것을 보고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이후로 ‘작가들은 글을 어떻게 쓸까? 글의 소재는 어떤 식으로 구할까?’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국어 지문을 읽어나간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지문에 대한 분석이 힘들지도 않고,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한다.     


기뻤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들이 이렇게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화된 게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내가 조금이라도 일조했다는 것에 더 큰 기쁨을 느꼈다.      


4월에 학교에서 교육청 모의고사를 쳤다. 아들과 모의고사를 채점하는 데, 수학 모의고사 문제지 여백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줄곧 1번부터 4번까지만 풀고서 나머지는 찍는 일이 허다했는데, 오늘은 확률과 통계 문제 중에서 풀 수 있는 걸 판별하고 그것을 풀어냈다. 현재 공부 중인 수 1의 사인 그래프와 코사인, 탄젠트의 그래프도 보였다. 그 문제들을 맞힌 것은 아니지만 절반 정도는 이해했다는 것이 내겐 정말 기쁜 일이다. 문제도 35분 동안이나 고심해서 풀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20분 만에 전부 풀고 잠들었겠으나 확실히 오늘은 다르다.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감동이 몰려왔다. 나는 아들이 수학을 포기할 줄 알았는데, 아들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몇 달 동안 공부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더니 아들에게 조금씩 서광이 비치는 것 같다.


인생에 늦은 것은 없다. 아들의 위대한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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