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 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자꾸 일이 생기고, 여행은 계속 뒤로 미뤄졌다. 원래 여행은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설레고 좋다고들 하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벌써 여행 하루 전날이 되어버렸다. 부랴부랴 어디를 갈지 검색을 시작했다. 특별히 이번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예쁜 벚꽃을 보러 가기 위함이었기에, 검색창에 "벚꽃길"을 쳤다. 분홍분홍한 사진들이 연이어 화면을 꽉 채운다. 그런데 어랏, 사진들이 올해의 것이 아니다. 엥? 아직 꽃이 안 핀 건가?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주변도 아직 벚꽃을 보지 못했었다. 그럼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야겠군. 검색을 반복하며 찾다 보니 불길한 기운이 엄습한다. 벚꽃 축제를 지난 주에 했다는 지자체들이 많고, 뉴스에서는 꽃이 피지 않아 울상이라는 기사가 도배를 하고 있었다. 벚꽃 구경이라는 타이틀을 아예 변경해야 하나. 그런데 여행을 계획한 시간이 야속하게도 얼마 남지 않았다.
휴가 당일. 비는 오지 않지만 해가 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흐릿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대로 날씨는 괜찮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집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주문하고, 2층 큰 창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매일 출근하는 그 길이 여전히 차로 복잡하다. 차 안에서는 볼 수 없던 길의 전체가 여기서는 한눈에 보인다. 차가 쉽게 못 가는 이유가 꼬리물기 때문이었구나. 초록불에서 빨간불로 바뀌기 전 노란불이 켜지는 것보다, 횡단보도에서 보이는 숫자가 나타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빨간불을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앞 차만 따라가다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을 텐데.
SNS에 올릴 사진도 요리조리 찍어보고, 차 구경도 하고, 길 건너편에 피어 있는 개나리도 감상하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아침이었다. 그러니 남들 일할 때 놀러다니는 거겠지. 나도 이제 놀러 갈 채비를 차린다. 목적지는 "충주".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도착하면 밥부터 먹어야 하나? 다행히 차는 막히지 않았다. 그런데 여전히 꽃은 보기 힘들다. 3월 말에 폭설이 내리질 않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질 않나, 꽃들이 어지간히 놀랐나 보다.
여기인가, 아닌가. 꽃이 피어 있지 않아 헷갈린다. 그래도 지도가 도착지를 가리키고 있으니 목적지는 맞는 것 같다. 분명 충주댐 벚꽃길인데 꽃은 하나도 피지 않았다. 여전히 나무 가지는 앙상하게 비어 있었고, 그 빈자리가 마음을 더 공허하게 만들었다. 고도가 높아서 꽃이 피기엔 아직 추운 날씨였나. 차라리 굽이굽이 댐을 오르기 전 평지에서는 피어 있었는데. 그래도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나무에게 한 걸음 다가간다. 나무야, 많이 추웠어? 아직 준비가 다 안 끝난 거야? 어렵게 시간 내서 왔는데 여행이 마치 미완성된 느낌이다. 대신 벚꽃나무 길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십수 년 전, 꼬맹이 아이들과 찾았던 그 벚꽃길을 추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비처럼 흩뿌려지던 마법 같은 순간. 정신없이 떨어지다 길 잃은 꽃잎 하나가 나의 손바닥에 살며시 떨어지던 그 순간. 상상 속에서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조금씩 밀려든다. 그러나 돌이킬 수도 없는 일. 그렇게 아쉬움 한 바가지 흘리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다음 날. 차가 사무실에 있어서 부득이 출근을 걸어서 했다. 그런데 전날 그렇게 찾아 헤매던 꽃들이 걸어가는 내내 나의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냥 무심히 길가에 피어 있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걸까. 그토록 행복을 찾겠다고 먼 곳을 헤매다녔는데,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다는 걸 잊어버렸다. 왜 자꾸 잊는 걸까. 이렇게 또 깨달아가는 거겠지. 늘 후회하고 아쉬워하면서. 대신에 그 빈도를 줄여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후회하는 거, 그래도 조금만 후회하는 걸로. 걸어가니 눈에 보였을 일이다. 역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는 녀석들도 사랑스럽게 보인다. 자주 걸어다니면서 눈도장 찍어줄게. 너희들이 피어날 때까지 열심히 응원해 줄게. 너희의 모든 과정을 사랑해줄게. 그렇게 한 시간여 동안 행복을 10개나 주웠다.
나는 되는 인간이다♡
돈 워리, 비 해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