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데스는 지하 세계의 왕으로, 그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게 돼요. 그의 강력한 무기이자 보물은 '퀴네에'라는 투구인데, 이걸 쓰면 신이나 인간의 눈에 띄지 않게 돼요. 하데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 자(haidis)'에서 유래했어요.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투명 인간이 되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깜깜한 지하 세계에서만 살았던 하데스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몸을 드러내지 않고 돌아다녔으니, 요즘 말로 하면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향이었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하데스의 궁전은 음침함과는 거리가 먼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곳이었어요. 지하 세계는 무궁무진한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된 세계로, 이 모든 땅속의 보물들을 가진 하데스는 로마 시대에 부를 주는 신으로 알려져 '플루토(Pluto)', 그리스어로는 '플루톤'이라고도 불리게 됐어요.
하지만 그는 지하 세계에만 머물렀기에 여자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우스에게 대들다 사로잡힌 괴물 티폰이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 밑에서 몸부림칠 때마다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솟아올랐어요. 햇빛이 지하 세계에 들어올까 봐 걱정하던 하데스는 주변 땅을 살펴보려고 지상에 올라갔어요. 사랑에 관심이 없던 하데스를 못마땅해하던 아프로디테는 그를 보자마자 에로스에게 수선화 꽃밭에서 놀고 있던 페르세포네와 맺어주기 위해 황금 화살을 날리라고 명령했어요. 화살을 맞은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보고 불같은 사랑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그녀를 납치해 지하 세계로 데리고 갔어요. 여기서도 그의 소심한 성격이 드러나죠. 사랑하는 여자를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그냥 둘러업고 데리고 간다니,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야말로 범죄 아닌가요?
페르세포네는 제우스와 대지의 신 데메테르의 딸이에요. 딸이 납치된 것을 안 데메테르는 대지를 저주했고, 그 후 매년 흉년이 들어 가축이나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했어요. 그 광경을 본 강의 여신 아레투사는 하데스의 왕비가 된 페르세포네의 소식을 데메테르에게 전하며 대지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어요. 그 길로 데메테르는 제우스를 찾아가 딸을 구해달라고 요구해요. 제우스는 "예로부터 산 자가 지하 세계의 음식을 먹으면 지상으로 온전히 돌아올 수 없는 법이다. 페르세포네가 그곳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면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배가 많이 고팠던 페르세포네는 이미 석류 일곱 알을 먹은 후였고, 결국 1년의 반은 하데스와 지하 세계에서, 나머지 반은 어머니와 지상에서 머물기로 신들이 합의를 보았어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하 세계, 저승 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이렇게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요. 지하 세계를 가본 몇 명의 영웅들을 제외하고 신들마저도 그 세계에 가볼 수 없어요. 데메테르 역시 가보지 않았기에 지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그곳으로 붙잡혀간 딸을 다시 찾아오고자 고군분투해요. 하지만 지하 세계의 왕비는 어쩌면 이미 내정됐을지도 몰라요. 인간이 사는 땅과 죽은 이가 사는 지하 세계는 땅 표면을 두고 위아래에 위치해요. 그러니 대지의 여신이자 풍요로운 곡식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의 왕비가 아니면 누가 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책에서 본 그림이 생각나요.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1818)인데요.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 안개 낀 바다의 신비스러움과 고독하게 서 있는 사람의 뒷모습은 묘하게 빠져들게 만들어요. 하데스도 어쩌면 지상 세계보다 더 철두철미하게 지하 세계를 다스려야 하기에 퀴네에를 쓰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철벽을 치고 고독의 시간을 보내며 사색하고 있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