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동쪽에 위치한 알자스(Alsace) 지방의 주도인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의 수도’라고 까지 불리는 지리적 요지에 위치한 도시다. 흥미롭게도 스트라스부르의 홈페이지 주소 조차 'www.strasbourg.eu'다. 별칭에 걸맞게 유럽 평의회, 유럽 의회(Parlement Europeen), 유럽 인권 재판소등 많은 국제기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 의회 건물
여기까지만 들으면 굉장한 대도시가 연상될지도 모르나 사실 ‘스트라스부르’는 27만의 인구를 가진 수로를 끼고 있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라인 강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로를 이용한 교통의 이점으로 먼 옛날 로마제국 때부터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는 도시다.
그러한 지리적 중요성으로 독일과의 분쟁은 끊이지 않았고 몇 번의 영토 분쟁 후 프랑스 령으로 된 것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다. 학창 시절 많이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도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두 나라 간의 분쟁 속에서 1871년 보불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쓰인 작품이다. 알자스와는 거리가 먼 남프랑스의 작가가 이런 작품을 쓴 걸 보면 이 지역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애착을 알 수 있을 듯하다. 도데는 특히 지역 언어를 중시하는 프로방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미스트랄(https://brunch.co.kr/@cielbleu/86 참조)의 절친이기도 하니 말이다. 보불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자 이 도시는 독일령으로 되었다가 1 차 대전 후 다시 프랑스 령, 2 차 대전 중에는 다시 독일이 점령했다가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프랑스령으로 귀속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도시다. 지금도 이 도시에는 언어나 문화 등 여러 면에 독일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이어지는 시내 도로
유럽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하는 11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작은 마을, 큰 도시 할 것 없이 크리스마스 마켓(Marché de Noël)이 문을 연다.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이곳을 'Capitale de Noël(크리스마스의 수도)'이라 부르는 것만 보아도 짐작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무차별 총기 사건이 일어나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좋은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스트라스부르의 상징인 노트르담 성당 앞 광장에 설치되어 온갖 크리스마스 관련 상품들을 판다. 샹젤리제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시즌과는 관련 없는 가게들도 많이 있어 상업성이 보였다면 이곳의 마켓은 크리스마스 관련 상품들을 주로 취급하고 있어 둘러보는 마음을 완전 동심으로 돌아가게 했다.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마켓이 열리는 광장은 구 시가지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 앞의 광장이다. ‘커다란 분홍 천사(Le Grand Ange Rose de Strasbourg)’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성당은 대표적인 고딕 양식 건물로 11세기경부터 짓기 시작하여 15세기에 와서야 완성되었다고 한다. 높이가 142m에 달하는 거대한 성당의 파사드를 장식하고 있는 섬세한 조각들을 본 순간 독일의 쾰른 대 성당이 떠오른다.
노틀담 성당 전경
노틀담 성당(좌), 쾰른 대성당(우)
이 성당 안에는 스트라스부르 유일의 르네상스 작품인 ‘천문시계(Astronomical clock)’가 있다. 그런데 이 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시계와는 거리가 멀다. 14세기에 처음 만들어졌고 16세기에 중세의 정신과 철학, 예술, 과학이 총망라된 걸작품으로 완성된 르네상스의 걸작이다. 상단에는 매시간마다 예수님이 등장하여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쫓고(대신 해골은 시간을 알리는 종을 울려준다), 15분마다 인간의 사계절을 나타내는 인형들이 등장하며 정오에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예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는 모습과 예수님이 일반인들에게도 은총을 주시는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맨 하단에는 사냥의 신 다이애나와 태양의 신 아폴로가 만세력을 수호하는 모습이 조각된 대단한 시계였다.
종합 예술의 걸작 천문 시계
노트르담 성당 안의 작품들에서는 세련되기보다는 서민적인 북유럽적의 요소들도 많이 눈에 띄어 역시 지리적 요충지답게 스트라스부르만의 것이 아니라 중세에 이 지역에 퍼져 있던 문화들이 복합되어 만들어진 작품들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게세마네 동산(좌), 트립티크 제단화(우)
성당 밖으로 나오면 바로 건너편에 얼핏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이 눈에 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약국이다. 이름은 'Pharmacy of the Deer'.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젊은 시절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다녔던 괴테도 이 약방의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사실은 약사가 그의 친구였다고. 이 약방은 13세기에 지어졌고 현재의 건물은 15세기에 증축된 것이라 한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좌), 카머젤 하우스(우)
이 건물의 왼편에는 겉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또 하나의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 건물주의 이름을 따 'Kammerzell House'라고 부르는 이 건물은 돌로 된 하단 위에 정교하게 장식된 외관의 상층이 포인트다. 멋진 경사를 자랑하는 지붕과 어우러져 광장의 유명 건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너무도 정교하게 조각된 외관은 12개의 별자리와 인간의 생, 오감(five senses), 신화와 중세 전설 속의 영웅들이 조각되어 있다. 너무 세밀하여 망원경이 필요할 정도다. 손재주가 놀랍다. 1층에는 이 지역 화가인 Leo Schnugg의 벽화가 유명한 전통 레스토랑이 인기인데 그 벽화의 내용이 재미있다. 내용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위스 취리히를 출발한 배가 18시간 항해 후에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는데 냄비의 수프가 식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두 도시 간의 동맹관계를 나타내는 사건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정도로 즉각 지원을 하겠다는 뜻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구텐베르크 동상(좌), 꾸흐 뒤 꼬르보(우)
그런가 하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을 기념하는 동상도 있다. 그는 1433-1445년까지 ‘스트라스부르’에 살았었고 그의 인쇄술이 처음으로 빛을 본 것도 이곳이라고 한다. 동상에 그가 들고 있는 동판에는 'Et la lumiere fut'(그리고 거기에 빛이 있었다.)라는 구약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그의 발명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스트라스부르 사람들이 새겨 넣었다고 하는데 그의 동상을 바라보다 보니 잠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만든 우리의 직지심경은 이보다 100년 가까이 앞선 것이 아니던가?
16세기에 지어진 스트라스부르 전통 목조 가옥을 그대로 살린 예쁜 부티크 호텔이 있다. ‘꾸흐 뒤 꼬르보(Cour du Corbeau)’라 불리는 16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여인숙인데 이곳은 중세에 주로 어부들이나 뱃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지역에 있는 여인숙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묶었던 사람들의 면모를 보면 이곳이 싸구려 여인숙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볼테르, 프러시아의 프레드릭 대제(Frederick the Great of Prussia), 오스트리아의 조세프 2세 황제들의 이름이 보이니 말이다. 이 집의 특징은 건물을 둘러싼 발코니가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나무를 보존하기 위해서 소의 피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이 알자스 지방의 전통 건축 방식이라는데 어째 기분은 좀 그렇다. 알자스 전통 가옥이라는 것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현재는 파리의 부티크 호텔들에 견주어질 정도로 깨끗한 시설의 부티크 호텔로 운영 중이다.
쁘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보트 투어를 해야 진정한 도시의 매력을 맛볼 수 있다.
이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라인 강의 지류인 일(ill) 강 위에서 보트를 타고 수로를 따라가면 수로 변을 따라 동화 속에나 나올 듯한 예쁜 집들과 다리를 통과하게 된다. 이곳이 바로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라 불리는 지역이다. 16- 17세기에 지어진 알자스 지방 특유의 목조 건축들이 즐비한 이곳은 원래 어부, 피혁 공 들이 살던 거리였다고 한다. 프랑스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프랑수와 1세가 이곳을 ‘쁘띠 프랑스’라고 명명하고 천연두에 걸린 군인들을 치료하는 병원을 짓기도 했던 곳이다.
스트라스부르의 보트 투어
강의 수심의 차이로 회전 다리가 설치된 곳에는 보를 만들어 배를 운행시키고 있어 시간대만 맞으면 회전 다리와 함께 흥미로운 장면을 볼 수도 있다. 보트 투어는 멀리는 유럽의회 건물까지 둘러볼 수 있어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었다. 쁘띠 프랑스가 끝날 즈음에 눈에 들어오는 예쁜 건물이 있어 배에서 내린 후 그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쁘티 프랑스의 예쁜 레스토랑
‘쁘띠 프랑스’의 생 마르탕 다리(Pont Saint-Martin) 근처에 있는 식당 ‘오 뽕 생 마르탕(Au Pont Saint-Martin)’이다. ‘쁘티 프랑스’를 감상하면서 알자스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예쁜 식당이다. 전통적인 알자스 지방 인테리어에 서비스도 아주 친절한 편안한 식당이었다.
생 마르탕 식당에서
맛도 좋아야 하지만 여행 중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는 만나기 쉽지 않다. 너무 긴장을 풀었는지 추위에 얼은 몸에 먹은 알자스 맥주는 살짝 기분을 업 시켜 주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찾은 ‘스트라스부르’는 동화 같은 마을 풍경을 창 밖에 펼치고 있고 몸은 따뜻하게 녹아드는데 잘 마실 줄도 모르는 맥주는 지친 여행객을 달래주느라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알자스 전통 음식
슈크루트
알자스는 와인 생산지로도 유명한데 특히 리즐링(riesling), 게부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품종으로 빚은 화이트 와인이 유명하다.
독일인들이 많이 주거하는 지역이라 이곳은 독일어가 자유로운 사람들이 많고 건축 양식이나 음식 문화도 상당히 독일적이다.
독일식 김치라고 일컬어지는 절인 양배추 ‘자우어크라우트(Saurerkraut)’는 이 지역에서는 쉽게 맛볼 수 있는 독일 전통 음식이다.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아 기름진 독일 음식을 먹는데 꼭 필요한 사이드 디쉬(side dish)다. 이것을 이용한 알자스 지방의 전통 음식에 ‘슈크루트(Choucroute)’라는 것이 있는데 절인 양배추와 소시지, 돼지고기가 같이 곁들여져 나오는 음식이다. 양이 엄청 많으니 주문시 양을 고려해서 주문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양에 비해 맛은 그냥 먹을 만하다.
‘스트라스부르’가 있는 알자스 지방은 세계 3개 진미 중 하나인 ‘푸아그라’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알자스 지방과 프랑스 남서부의 페리고 지방(https://brunch.co.kr/@cielbleu/68 참조)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세계 최고의 '푸아그라' 산지다.
동화 같은 이야기들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황새의 모형이다. 어떤 황새는 아예 굴뚝 위에 올라 간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조각품에 황새 모형이 들어가 있으면 다른 것들보다 값도 더 비쌌다. 그 이유는 이랬다.
지붕 위 황새 장식을 한 크리스마스 마켓
서양 동화를 보면 아기는 황새가 보자기에 쌓아 가져온다는 황새 이야기가 많다. ‘스트라스부르’에는 아기를 가져다준다는 흰 황새의 전설이 있다고 한다. 서양 동화 황새 이야기의 진원지가 바로 알자스였던 것이다.
지붕 위에 둥지를 만든 황새 가족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데 알자스 전설에 의하면 만일 황새가 당신의 집 위를 날고 있다면 아기가 곧 태어날 것이란 뜻이고, 이미 아기가 태어났다면 가족 중 죽은 자의 영혼을 다시 살려 아기로 태어나게 될 거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던 다 좋다는 뜻이라고.
알자스에서 흰 황새는 길조이며 그것은 황새의 생태와도 관련이 있다. 황새는 가족적이고 성실하기 때문에 길조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황새는 평생을 한 둥지에서 지내며 이른 봄 수컷이 먼저 도착하여 둥지를 정비해놓으면 뒤에 암컷이 도착하고 여름내 새끼 낳아 키우다가 이른 가을이면 다시 남쪽으로 떠나 알자스에는 빈 둥지만 남는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해 그들은 영락없이 다시 자기 둥지를 찾아온다고. 알고 보면 동물의 세계에서는 자기 둥지나 고향을 찾아오는 습성이 많은 가 보다. 현재 ‘스트라스부르’에만 50여 개의 둥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알자스 인들은 그들이 역사적으로 전쟁과 험난한 시간들을 많이 가졌음에도 밝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모두 황새의 덕으로 여긴다고 한다. 우리 집 지붕에 그들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면 대박인 셈이다. 그래서 ‘스트라스부르’에는 유난히 흰 황새에 관한 기념품이 많았던 것이다.
알자스 지방에는 흰 황새의 전설 말고도 부활절 계란을 가져온다는 부활절 토끼(Easter bunny)의 이야기도 전해 온다. 독일의 의대 교수였던 게오르그 프랭크는 1682년에 그가 쓴 책 ‘디 오비스 파알리버스(De ovis paschalibus)“에서 부활절 토끼는 알자스 지방의 전통이라고 기록했다고 한다. 토끼는 오래전부터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으며 토끼가 굴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마치 예수님이 동굴에서 부활하는 것과 의미가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설이 있어 진위 여부는 가리기 어려우나 부활절 토끼의 존재는 게르만 민족에서 시작되어 자연스레 독일 지역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오늘날 전 세계로 퍼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 말고도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 인들에게는 역사적인 곳으로 기억된다.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가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대 혁명으로 유럽의 강호들은 연합군을 만들어 프랑스를 제압하려 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1792년 4월 20일 선전 포고를 하게 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스트라스부르’의 시장 ‘디트리히(Dietrich)’는 군인 ‘클로드 조셉 후제 드 릴(Claude Joseph Rouget de Lisle)’에 부탁하여 군인들의 사기를 돋울 수 있는 노래를 만들 것을 의뢰한다. 클로드는 1792년 4월 25일 하룻밤에 이 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원래 제목은 ‘라인 군을 위한 군가(Chant de guerre pour l’armee du Rhin)’이었다. 그해 5월, 튈르리 궁을 습격한 마르세유 의용군이 불렀다 하여 이름을 ‘라 마르세예즈’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1795년 정식 국가가 되었다가 왕정이 있었던 시기엔 ‘왕을 쓰러뜨린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잠시 금지곡이 되었다가 1879년에 다시 정식으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가사가 '아이들과 아녀자들의 목을 자르고'라는 등 너무 과격하여 내용을 알고 들으면 좀 섬뜩하기도 해서 개사를 해야 하는 가로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대로 원본대로 부르고 있다.
또 다른 ‘라 마르세예즈’
파리의 개선문에는 4개의 부조가 있다.
샹젤리제를 굽어 보고 있는 두 부조 중 오른쪽의 부조가 ‘라 마르세예즈’라 불리는 ‘프랑스와 휘드(Francois Rude:1784-1855)’의 작품이다. 이 부조는 프랑스 혁명군의 1792년 8월 10일 봉기를 기념하는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마리안은 프랑스 민중의 여신으로 유명한 캐릭터다. 최근 노란 조끼 시위대에 의해 개선문 안에 전시된 마리안 상이 파손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라 마르세예즈
왼편의 부조는 장 피에르 꼬르토(Jean-Pierre Cortot:1787-1843)의 ‘승리’라는 작품인데 이것은 나폴레옹의 오스트리아 빈 강화조약(1809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반대편의 두 부조는 앙투앙 에텍스(Antoine Etex)의 작품으로 오른편은 ‘1814년의 저항’을 왼편은 ‘1815년 평화’를 의미하는 내용이다.
승리(좌), 저항(중앙),평화(우)
세계 최대의 크리스마스 가게,
'케이터 볼화트(Käthe Wohlfahrt)'
나는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가게들을 구경하던 중 세계 최대의 크리스마스 가게인 ‘케이터 볼화트(Käthe Wohlfahrt)’를 만난 것이 무척 반가웠다. 독일 로텐부르크(Rothenburg)에 있는 가게를 방문했을 때의 환상적인 기억을 아직 생생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64년 스투투가르트 근처에서 부부가 시작한 이 가게는 대를 이어 1977년 로텐부르크로 옮겨 세계 최대의 크리스마스 가게가 되었다. 수 만 개의 다양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고 있으며 로텐부르크의 가게 전시실에는 5미터나 되는 대형 크리스마스 츄리가 1000개 이상의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 가게 안은 일 년 내내 ‘Winter Wonderland’다. 동화 속의 나라에 들어온 듯 즐거운 착각에 빠지게 되는 곳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로텐부르크의 명소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의 가게를 ‘크리스마스 박물관’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