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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Dec 11. 2018

13. 남 프랑스의 두 도시 이야기

               니스(Nice), 칸(Cannes)


니스(Nice)

     

코트다쥐르에서  가장 유명세를 타는 도시는 아마도 ‘니스(Nice)’가 아닐까 싶다. 프로방스의 주도이자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유’가 있지만 프로방스 다운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니스가 더 나은 모양이다. 두 도시 모두 바다에 인접한 도시지만 니스가 좀 더 여유롭고 휴양지다운 분위기로 다가온다. 이름처럼 ‘나이스’한 도시 ‘니스’다.

그래서인지 니스는 영국의 귀족들이 해변의 아름다움과 좋은 기후에 반하여 일찌감치 자신들의 휴양지로 찜해 놓고 개발한 도시다. 그래서 니스 해변을 따라 무려 3km에 달하는 산책로는 이름도 ‘Promenade des Anglais’로 ‘영국인의 산책로’라고 명명되어 있다. 허기야 궂은 날씨로 유명한 영국의 날씨를 생각하면 이곳의 햇빛을 본 순간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영국인의 산책로'에 놓인 야자수 화분과 19세기 니스 산책로의 그림


야자수 나무가 한가롭게 서 있는 해변의 풍경은 꼭 니스가 아니더라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런데 니스 해변의 야자수는 화분에 심은 모습이고 푸른 바다와 인접한 해변은 하얀 모래사장이 아니라 검은 자갈밭이다. 그래서 우리가 상상한 하얀 모래와 푸른 바다의 모습은 아니다. 자갈밭이라 걷기도 힘든데 그들은 그 위에 누워 일광욕을 태연하게 즐긴다. 부드러운 해풍에 몸을 맡기고 '영국인의 산책로'에 주욱 놓여있는 벤치에 한가로이 앉아 프로방스의 무결점 햇빛과 눈앞에 펼쳐진 푸르른 지중해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자갈이면 어떻고 모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니스 해변에서 일광욕 중인 사람들


무엇을 감상하던 좀 떨어져 멀리서 봐야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름답다는 니스의 해변도 마찬가지다. 사진에서 자주 보는 니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초승달 모양의 해변과 푸른 바다를 보고 싶다면 발품을 팔아 니스 해변의 끝에 위치한 일명 ‘전망대’라고 부르는 ‘La Tour Bellanda’를 올라가는 것을 잊지 말자.

전망대로 올라가는 입구와 전망대에서 보는 니스 해변

오르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아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고 여행에 지쳤다 싶으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책이나 사진으로 늘 보아왔던 니스 해변의 멋진 모습에 ‘아! 여기서 본 니스였구나.’하고 절로 탄성이 나온다.

 

전망대 정상에는 조용한 공원과 산책길이 형성되어 있어 해변가에서 느꼈던 니스의 약간은 어수선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면의 니스를 만나게 된다.

어느 초 겨울날, 니스 전망대의 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다른 해변과 요트 선착장,멀리 흰 눈 덮인 산의 끝자락이 살짝 보인다.


전망대에서 보는 다른 쪽 해변과 요트가 빼곡히 늘어선 선착장, 멀리 보이는 흰 눈이 덮인 산 전망은 덤이다.

아름다운 해변과 전망을 눈과 마음에 담고 전망대를 내려오면 니스 해변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커다랗고 빨간 산타 우체통이 시선을 끈다. 물론 계절이 계절(초 겨울)인 탓도 있겠지만 파아란 니스 해변과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를 배달해주는 빨간 우체통이라. 프랑스 인들은 안 어울릴 것 같은 것들을 참으로 멋지게 조화시키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하는 우체통이다.

겨울이면 등장하는 니스의 산타우체통




시내로 발길을 돌리면 ‘꾸흐 살레이야(Cour Saleya)’를 바로 만날 수 있다. 이곳은 해산물을 파는 식당들의 총집합 장소다. 해변도시니 이름도 예쁜 ‘후리 드 메르(Fruits de Mer)’(일종의 해산물 모둠)를 시식해 보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다. 프랑스에서는 식당마다 자신들의 메뉴를 입구에 진열 해 놓고 있다. 프랑스 인들은 식당을 결정하기 전 문 앞의 메뉴를 꼼꼼히 보고 식당을 결정한다. 이 집 저 집 비교하는 것은 으레 식당 앞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 집 저 집의 메뉴를 비교해 보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찾고 있는 것 같아 진지하게 까지 보인다.






중앙에 꾸흐 살레이야 시장이 보인다.(지붕이 편편한 건물들이 시장건물이다)
'후리 드 메르'가 진열된 식당 '쉐프레디'와 길거리의 흥겨운 연주가들


낯선 메뉴는  잘 모르겠고 나는 주로 사람 많은 식당을 택한다. 큰 실수는 없을 거 같아서. 그래서 ‘꾸흐 살레이야’에서 나에게 선택된 곳은 ‘프레디의 집(Chez Freddy)’으로 시장 한가운데 있는 가장 큰 식당이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 치고는 양도 푸짐하고 서비스도 꽤 괜찮았던 식당으로 기억한다. 프랑스의 웨이터들은 워낙 서빙 속도가 느려 웬만큼 시간의 여유가 없으면 식당 들어가기가 걱정이 될 정도다.(https://brunch.co.kr/@cielbleu/3 참조). 나는 프랑스 여행 중 디저트까지 포함된 세트메뉴를 주문했다가 기차 시간이 다 되어 디저트를 못 먹고 식당을 떠나야 했던(시간이 없다고 말해도 웨이터는 자신의 서빙 순서대로 묵묵히(?) 서빙을 한다) 기억으로 시간 여유가 웬만큼 있지 않고는 식당 선택이 망설여지곤 했다.


니스 시내를 걷다 보면 높은 봉 위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한 조각품들이 여러 개 서있는 광장을 만나게 된다. ‘마세나 광장(Place Massena)’이다. 니스 구시가지의 중심인 이곳에 설치된 특이한 조각상 작품들은 모두 7개로 각각 7 대륙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스페인 조각가 요메 플렌사(Jaume Plensa:1955~)의 작품으로 지금은 니스의 명소가 되었다. 그 옆에는 아폴로 신의 조각상이 있는 분수대가 화려함을 뽐내면서  '마세나 광장'에 일조를 하고 서있다.

마세나 광장 입구의 아폴로 동상과 요메 플렌사의 작품들

  

니스에는 아름다운 해변 말고도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샤갈과 마티스 박물관이다. 샤갈은 원래 니스 근처의 아름다운 마을 ‘생폴 드 방스(https://brunch.co.kr/@cielbleu/95 참조)’를 너무나 사랑하여 그의 미술관 설립 제의가 들어왔을 때 ‘생 폴 드 방스’에 자신의 미술관을 설립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조그만 중세 마을인 ‘생 폴 드 방스’에는 미술관 부지로 사용할 만한 자리가 없어 할 수 없이 니스에 마련하게 된 것이라 한다. 아름다운 남 프랑스에 이곳저곳 골라가며 미술관을 지을 수 있었던 그가 갑자기 부러워진다.

 

샤갈 미술관 입구와 미술관 안의 카페

1973년 7월 7일 그의 생일에 오픈한 샤갈 미술관은 구약 성경의 내용을 그린 그의 역작들 17편으로 꾸며져 있다. 샤갈은 자신의 미술관에 전시될 작품들의 위치를 일일이 정하는 등 무척 애착을 가지고 미술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미술관을 보고 나온 느낌은 정말 대 만족이었다. 역시 주인이 애정을 가지고 심혈을 기울여 만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나 보다. 주인도 어디 보통 주인인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

 

또 한 명의 니스가 품고 있는 대작가가 있다. 바로 앙리 마티스다. 마티스는 니스 출신은 아니지만 니스를 워낙 좋아하여 40년 가까이 니스에 살았던 대 화가다. 1963년 문을 연 마티스의 미술관도 니스에 왔다면 당연히 들러봐야 할 곳이 아니겠는가? 마티스의 푸른빛 배경이 눈에 선한 '댄스'를 기대하며 부랴부랴 발길을 돌린다. 기대가 컸을까?  샤갈의 미술관보다는 좀 실망스러운 마티스 미술관이었다. 마티스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작품들보다는 그의 습작이나 '이것이 마티스의 작품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불어로 쓰여 있는 설명서를 읽어야만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아마도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마티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샤갈의 미술관을 보고 나서 기대가 너무 컸는지도. 기대했던 그의 대작 '댄스'는 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쥬 박물관과 뉴욕 모마(1909년작)에서 만났다.    

마티스 미술관의 입구와 내부 전시실
에르미타쥬 박물관의 '댄스'(1910년작)
모마의 댄스(1909년작)


(Cannes)

     

니스 남쪽에 위치한 칸은 우리에겐 무엇보다도 ‘칸 국제 영화제(Cannes Film Festival’)로 유명한 곳이다. 칸에 대한 첫인상은 니스와 상당히 흡사한 도시라는 것이다. 칸도 니스처럼 해변을 따라 큰 산책로 ‘크루아젯 길(Boulevard de la Croisette)’이 나 있는데 주변은 고급 호텔과 명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큰 차이점은 니스와는 달리 해변이 모래사장이라는 것.


크루아젯 길과 산책로에서 만나는 피카소의 그림
산책로 옆의 한가로운 카페

이 길의 끝에 레드카펫으로 유명한 ‘Palais des Festivals et des Congres’가 자리하고 있다.  빨간 카펫이 깔린 오디토리엄 앞 광장은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레드 카펫은 연중무휴 깔려 있어 영화제가 아닐 때는 바로 관광객들의 차지가 된다. 위에서도 보고 아래서도 보고 미디어를 통해서 보던 레드카펫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나!'가 된 날이었다.

위, 아래에서 본 레드카펫

그리고 이 건물 앞 ‘조지 퐁피두 산책로(Esplanade Georges Pompidou)’에는 유명 배우들의 손도장이 찍힌 패널들이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누구의 손인가 열심히 보면서 걷다 보면 이 패널은 우리를 관광안내소로 안내한다.  

퐁피두 산책로와 칸 영화제의 상징 종려나무 장식
메릴 스트립의 손도장과 관광안내소로 연결되는 손도장이 나열된 보도



해변의 크루아젯 길은 해가 질 무렵부터 마치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연상시키듯 빨간 조명이 서서히 들어오면서 산책하는 이들이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산책로를 따라 여유 있게 놓여 있는 벤치나 의자에 앉아 사랑하는 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에 칸의 로맨틱한 분위기는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해질녁 조명이 서서히 들어오는 크루아젯 길


 '크루아젯 길'의 꿈같은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면  칸의 생활의 중심가 '앙티베(Rue d’Antibes) 길'이 기다리고 있다. 크루아젯 길이 고급 호텔과 명품 가게들로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면 일 차선 도로인 앙티베 길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냄새가 나는 정겨운 길이다. 중심이 되는 이 두 길이 칸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칸은 인구 7만의 자그마한 도시다.

앙증 맞은 앙티베 길



그런데 이 도시는 영화제 명성만큼 영화와 관련된 명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벽화 그림(Murs Peints)’이다.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건물 벽에 그려진 영화 관련 그림들인데  2002년부터 시작된 이 그림들은 모두 영화와 관련된 그림들로 현재는 모두 15개의 벽화가 칸의 도시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도시를 걸으며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이 대형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은 영화의 도시 칸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보너스인 셈이다.


칸 시내의 여러 벽화들



트롱프뢰유(Trompe l’oeil)  

        

시각적 환영을 그리는 화법을 가리키는 말로 실제로 3차원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눈의 착시를 가져온다. ‘트롱프뢰유’란 단어는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적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법을 찾아볼 수 있으며 폼페이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주로 창문이나 문, 복도 등에 이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영국 'Chatsworth House'의 트롱프뢰유(문 안에 다른 문이 있는것 같은 착시를 보여준다)



칸 앞바다, 반 마일 정도 거리에 ‘생 마그리트(Sainte-Marguerite)’라는 섬이 있다.  레드카펫이 있는 ‘Palais des Festivals et des Congres’ 옆 항구에서는 ‘생 마그리트’ 섬으로 가는 페리가 수시로 출발한다. 많은 방문객들이 철가면이 수감되어 있었다고 전해지는 마그리트섬으로 가는 배에 승선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기 때문이다.

칸에서 배로 15분 정도 걸리는 지척에 있는 이 섬은 철가면이라 불리던 죄수가 11년이나 수감되어 있었다는 섬이다. 마르세유 앞의 이프 섬(https://brunch.co.kr/@cielbleu/93 참조)처럼 철가면이 수감되어 있었다는 감방을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섬들은 주로 요새 아니면 감옥으로 사용하는 것이 대세인가 보다. 마르세유 앞바다에는 에드몽 단테스의 이프 섬이, 칸 앞바다에는 철가면의 생 마그리트 섬. 어딜가던 이야깃거리도 참 많은 나라다.

칸을 출발 생 마그리트로 향하는 배

철가면은 과연? 

    

프랑스에서 철가면은 인기 있는 캐릭터라 그런지 그의 족적이 남아있다는 감옥이나 성들이 심심치 않게 많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처음 수감된 것이 1669 경이고 1679년에는 이탈리아의 피네롤로(Pinerolo) 감옥에서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었다가 1698년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된 것으로 전해진다. 철가면은 실제는 검은 벨벳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대화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아무도 그의 얼굴이나 목소리 조차 들어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니콜라 푸케의 보르비콩트 성에 전시된 철가면

수감 중 그에 대한 대우는 일반인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상당히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정체가 확실치 않다보니 당시 소문으로 떠돌던 루이 14세의 어머니의 불륜 설(어머니가 바람을 피워 나은 아들이란 설)부터 루이 14세 때의 재무장관을 지냈던 니콜라 푸케(https://brunch.co.kr/@cielbleu/8 참조:실제로 그는 1680년 피네롤로 감옥에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란 설 등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들어졌다. 문제의 철가면은 34년을 감옥에 있다가 1703년에 ‘막쉬올리(Marchioly)’라는 이름으로 바스티유 감옥에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1771년 볼테르는 철가면이 루이 14세의 배 다른 형이라고 주장했는가 하면 19세기에 와서는 삼총사를 쓴 알렉산더 뒤마는 루이 14세와 일란성쌍둥이인 것으로 그의 작품에서 자세히 다루면서 그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에 더욱 불을 집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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