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9. 이층이 열렸다.

뉴욕 프릭 컬렉션을 다녀오다

by Ciel Bleu

3년 만에 재개장한 뉴욕 프릭 컬렉션으로.


뉴욕 어퍼 이스트 70번가.

철강왕 '헨리 프릭'의 저택에 자리한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이 3년여의 리모델링을 거쳐 2025년 4월 재오픈하였다.


https://brunch.co.kr/@cielbleu/335 참조.

sorj12.jpg

이 공사에 들어간 비용만 2억 2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3000억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었다고 한다.

금액도 금액이려니와 현지 관계자들도 성공한 리모델링이라는 평을 줄줄이 내놓고 있어 멀리서 찾아간 방문객의 발길을 재촉했다.


이층이 열렸다.

예전 '프릭 컬렉션(이하 프릭)'과 가장 큰 다른 점은 가족들 방으로 쓰였던 사적인 2층 공간이 대중에게 최초로 오픈되었다는 점이다.


입장 방법도 달라져 인터넷으로 미리 원하는 시간대를 예약해야 한다.

예약 사이트 주소는 https://tickets.frick.org/events/330/list.


프릭 오픈 시간은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금요일은 오후 8시 30분까지 연장 오픈하고, 화요일은 휴관이다.

입장은 30분 간격으로 이뤄지는데 예약 사이트에서 가능한 시간대를 확인할 수 있다.


일반 입장료는 30불이고, 매주 수요일 오후 1시 30분 입장부터는 'Pay-what-you-wish'로 30불부터 10불, 5불, 1불까지 원하는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그래서(?) 이 시간대 예약은 최소 일주일 전에 마감된다는 뮤지엄 측 설명이다.

물론 많은 관람 인파는 감수해야 한다고.

개인 저택으로 크긴 하지만 전형적인 뮤지엄이 아닌 '대 컬렉터'의 집인 셈이니 많은 인파가 있으면 프릭이 갖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 안에서 여유로운 작품 감상은 어렵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뮤지엄은 무조건 오프닝 시간에 간다는 철칙대로 이번에도 오프닝 시간인 10시 30분을 예매했다.

여유 있게 도착했음에도 이미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스탠바이 줄이 있나?' 했다.

'스탠 바이 줄' 있다.

그러나 이건 예매한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었다.

프릭의 인기를 새삼 실감하는 광경이었다.

줄을 서고 10 여분을 기다린 뒤 정시에 입장이 시작되었다.

sorj6.jpg 예매권을 가지고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비 오는 날 다시 찾은 프릭.

지난번 보다 더 긴 줄을 보고 이런 날씨에도 저런 대기줄이라니.

예약 시스템을 모르고 온 사람들이거나, 혹 자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찾아온 관람객들이다.

그들은 'stand by'라인에 서서 기다리다가 결원이 생길 경우 몇 명씩 입장이 되고 있었다.

언제 입장이 될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게 무슨 시간 낭비냐?'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보다 이렇게 해서라도 프릭을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관람객들이란 생각에 그들의 여유와 예술품에 대한 관심이 부러워지는 광경이기도 했다.

sorj10.jpg
sorj14.jpg
비가 오나 날이 좋으나 대기줄은 항상 길었다.

재개장한 프릭은 지하 1층의 220석 규모의 강당(Auditorium)과 2층의 10개의 전시실과 카페, 기념품샵등이 새롭게 단장하고 있었다.


프릭은 유언으로 자신의 컬렉션의 위치를 옮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층 전시실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이고 그의 소장품들도 거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 같았다.

전시실 안에서의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니 흐릿한 나의 기억력에 의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명작이 주는 임팩트는 대단해서 나의 허약한 기억력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일일이 다 기억할 순 없으나 특히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1497~1543)'의 '토마스 모어(Sir Thomas More:1527년 작)'와 '크롬웰(Thomas Cromsell:1532년 작)' 초상화와 '엘 그레코(El Greco:1541~1614)'의 '성 제롬(St. Jerome:1590년 작)' 초상화는 나란히 리빙홀 한쪽 벽에 옛 모습 그대로 걸려 있었고,

Hans_Holbein,_the_Younger_-_Sir_Thomas_More_-_Google_Art_Project.jpg
Saint_Jerome_as_Scholar_MET_DT3103.jpg
800px-Cromwell,Thomas(1EEssex)01.jpg
토마스 모어(좌), 성 제롬(중앙), 크롬웰(우)

'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1727~1788)'의 초상화가 주를 이루는 18세기 영국 회화들이 전시된 다이닝 룸의 전시도 낯익었고,

Mrs._Peter_William_Baker_-_Gainsborough_1781.jpg
1024px-Thomas_Gainsborough_-_The_Mall_in_St._James's_Park_-_Google_Art_Project.jpg
The_Hon._Frances_Duncombe_-_Gainsborough_c._1777.jpg
Mrs.Peter William Baker,1781/The Mall in St. James's Park,1783/The Hon. Frances Duncombe,1777,Thomas

그리고 '프레고나르 방(Fragonard Room)'은 기억에 진하게 남아 있어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니 말이다.

RrKabe7jnvcQ2YMWg42jAaAl4Io (3).jpg 프레고나르 방(위키미디어)

이번에 눈에 남은 작품으로는 '도서실(Library)'에 전시되어 있는 '토마스 로렌스 경(Sir Thomas Lawrence:1769~1830)'의 '쥴리아 레이디 필(Julia, Lady Peel)'이란 1827년 작품이었다.

Julia,_Lady_Peel_-_Lawrence_1827.jpg

프릭의 대표작으로 자주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눈길을 잡는 유난히 화려한 팔간 깃털 모자와 고급스러운 의상에 팔목에 차고 있는 여러 개의 보석 팔찌등으로 주인공의 신분이 궁금했던 초상화다.


영국의 수상을 두 번 엮임 한 '로버트 필 경(Sir Robert Peel:1788~1850)'의 부인이다.

그녀(Julia Peel:1795-1859)는 당대 미인으로 유명한 데다 수상의 부인이니 그에 걸맞은 초상화를 그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남편은 승마 사고로 사망하고 아들은 천연두로, 사위는 결핵으로 사망하는 등 겹친 불운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림 속 여인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슬픈 인생사다.


이 작품은 1827년 작품으로 비극적 종말이 일어나기 전의 작품이지만 왠지 그녀의 우수에 찬듯한 눈이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 몇 번을 돌아보게 된 작품이었다.


저택에서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웨스트 갤러리'에는 보고 싶은 작품들이 즐비한데,

그중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1606~1669)'의 1655년 작 '폴란드 라이더(The Polish Rider)'를 다시 찾아보았다.

렘브란트가 왜 이런 주제의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은 미스터리 한 작품인데 폴란드 왕이 소유하고 있던 작품이라 타이틀을 그리 붙였다는 설명이다.

Rembrandt_-_De_Poolse_ruiter,_c.1655_(Frick_Collection).jpg

'웨스트 갤러리'의 한쪽 벽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베로네세(Paolo Veronese:1528~1588)'의 두 대작 또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덕과 악덕 사이의 선택(The choice between virtue and vice:1565년 작)'과 '지혜와 힘(Wisdom and Strength:1565년 작)'이란 제목의 두 대형 작품으로 '우화(Allegory)' 그림들이다.

Paolo_veronese_(boucher)_-_hercules_na_encruzilhada.jpg
Veronese_Allegory_of_Wisdom_and_Strength.jpg

반대편 벽에는 한때 프랑스 왕 루이필립의 소장품이었던 '고야(Francisco de Goya:1746~1828)'의 1815년 작 '더 포지(the Forge)'가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고야'가 그린 노동자를 주제로 그린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800px-Francisco_Goya_y_Lucientes,_de_-_La_fragua_-_Google_Art_Project.jpg

'오벌룸(Oval room)'에는 '제임스 맥닐 휘슬러(1834~1903)'의 'Lady Meux의 초상'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발레리나였던 그녀는 양조장을 운영하던 부유한 집안의 남성과 결혼하여 영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여인 중 한 명이 되었고, 후에 휘슬러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를 후원하기 위해 초상화를 의뢰했다고 한다.

그중 한 작품이 바로 이 그림이다.

James_Abbot_McNeill_Whistler_011.jpg

유일하게 사진이 허용되는 '가든 코트(GardenCourt)'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20250811_103605(1)(1).jpg

가든 코너의 한 편에선 '버미에(Vermeer)'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으나 이 글을 발행할 때는 종료된 전시회이기에 간단히 포스터만 올린다.

sorj16.jpg 리셉션 홀에 있는 '버미에' 전시 전광판

'가든 코트'를 지나 '사우스 홀'(말이 홀이지 그냥 복도에 해당한다)에 오면 드디어 보고 싶던 '브론치노(Agnolo Bronzino:1503~1572)'의 작품 '로도비코 카포니(Lodovico Capponi)'의 초상화가 여전히 정중앙에 걸려 있었다.

유부녀를 사랑한 그는 3일 안에 혼인을 성사시키면 결혼을 인정해 주겠다는 추기경의 허락을 받고 이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는데 그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액자에는 그녀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는 해설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확인이 어렵다. 인물 뒤의 그린 커튼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이것 역시 프릭의 대표작 중 하나다.

500px-Angelo_Bronzino_055.jpg

1층 전시실의 마지막 홀인 '사우스 홀'을 지나면 2층으로 오르는 웅장한 계단이 나타난다.

이 계단은 2층으로 오를 때만 이용할 수 있고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나 다른 쪽 계단을 사용하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많은 인파 때문인 거 같았다.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2층이라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은 주변을 꼼꼼히 둘러보면서 느릿느릿 오르고 있었다.

sorj5.jpg 2층으로 오르는 계단
sorj18.jpg 건물의 다른 쪽에 위치한 지하 1층부터 2층을 연결하는 계단

2층에는 조찬실(breakfast room), 시계실(clocks and watches room) 인상주의 방(Impressionist room), 부쉐룸(boucher room), 바우처룸, 도자기실(ceramics room), 골드 그라운드룸(gold-grounds room, 치미부에), 메달룸(medals room), 거실(sitting room), 월넛룸(walnut room)등 10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그마한(2층 전시실은 실제 거주 공간이었기에 대형 전시실은 없다) '인상주의 방'에는 많은 작품들은 아니지만 '모네(Claude Monet:1840~1926)'의 '겨울의 베퇴유(Vetheuil in Winter:1878)', '마네(Edouard Manet:1832-1883)'의 문제작 '투우(The Bullfight:1864)'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785px-Claude_Monet_-_Vétheuil_in_Winter.jpg Vetheuil in Winter:1878, Monet

특히 '마네'의 작품은 1864년 살롱전에 전시되어 비평을 받자 마네가 그림을 잘라낸 것으로 유명한 그림이다.

그림의 하단에는 쓰러진 투우사가 그려져 있었는데 '마네'는 투우를 희화적으로 그렸다는 비평에 투우사 부분을 잘라내고 그림의 하단에는 소의 머리 일부분을 후에 그려 넣었다고 한다.

잘라낸 쓰러진 투우사 그림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Édouard_Manet_-_La_corrida.jpg la corrida, 1864, Manet

'골드 그라운드 룸(Gold-Grounds Room)'에는 치마부에(cimabue:1240~?)와 두치오(duccio di buoninsegna:1255~1319)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고,

Cimabue_-_Flagellation.jpg
Duccio_-_The_Temptation_on_the_Mount.jpg
The Flagellation of Christ,1280,Cimabue(좌)/The Temptation of Christ on the Mountain,1308,Duccio(우)

가장 보고 싶은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1525~1569)'의 작품은 조그만 'sitting room'에 전시되어 있었다.

A4용지보다도 작은 작품이지만 그 방을 들어서는 순간 자석에 이끌리듯 사람들이 조그만 이 작품 앞으로 자동적으로 다가서는 걸 보니 '명작의 힘이란 이런 거 구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바라보았던 작품이다.

506px-Pieter_Brueghel,_the_Elder_-_Three_soldiers.jpeg Three Soldiers,1568, 브뤼겔

그리고 프릭 본인의 침실이었던 '월넛 룸'에 전시된 프릭을 대표하는 작품.

바로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1780~1867)'의 1845년 작 'Louise, Princesse de Broglie'가 걸려 있었다.

Jean-Auguste-Dominique_Ingres_-_Comtesse_d'Haussonville_-_Google_Art_Project.jpg

앵그르가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는 이 초상화는 오페라를 즐기던 주인공이 공연에서 막 돌아와 오페라글라스를 선반 위에 놓고 겉옷을 옆 의자에 벗어 놓는 순간을 그린 것이라 한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Louise de Broglie, Countess d'Haussonville(1818~1882)'는 프랑스의 수필가이자 유명 전기 작가였는데 앵그르 자신도 놀랄 만큼 지성미가 넘치는 27세의 여인을 잘 묘사했다는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로살바 카리에라(Rosalba Carriera:1673-1757)'의 파스텔화를 끝내 못 본 것이다.

직원에게 문의하니 비교적 최근에 구입한 작품이라 아직 설치 장소를 결정하지 못하고 보관 중이란 설명이다. 다음 방문에선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jcdSEX2pxfMji4RUZUmCRfkx98w.jpg Portrait of a Man in Pilgrim's Costume, 1730-1740, Rosalba Carriera

그런데 말이다.

아쉬움이 컸던지 바로 옆 메트에서 같은 그림은 아니지만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되었으니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던가?

sorj17.jpg Met에서 만난 '로살바 카리에라'의 1730년 작 'Gustavus Hamilton in Masquerade Costume'

https://brunch.co.kr/@cielbleu/314


2층의 전시실 반대편에는 카페 'Westmoreland'와 기념품 점이 새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많은 관람객에 비해 턱 없이 작은 카페는 당일 관람객만 이용할 수 있으며 예약은 안된다고 한다.

카페 이름 'Westmoreland'는 프릭의 개인 기차 이름이란다.

자가용 기차인 셈이다.

프릭은 이 기차를 타고 미국 곳곳을 여행했다고.

sorj8.jpg 'Westmoreland' 카페 내부

기념품 점도 많은 사람을 수용할 정도로 넉넉지 않아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다.

마치 명품 샵 입장을 제한하는 것처럼 말이다.


티켓 예매부터 전시실은 물론이고 카페와 기념품 샵의 붐비는 인파들 까지.

프릭의 재개장을 기다린 사람들이 많았음을 실감케 하는 방문이었다.


재개장의 열기가 좀 식으면 다시 원래 프릭이 주는 프라이빗한 작품 감상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100여 년 이상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던 2층의 사적 공간이 개방된 것은 반길 일인데 지금의 모습에서 자꾸 차분하고 여유 있던 옛 모습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은 왜일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짧은 방문 기간 동안 두 번을 더 방문하게 된 걸 보면 프릭은 역시 뉴욕의 'must see' 뮤지엄임을 다시 생각게 한다.

sor 7j.jpg 프릭 정문
sorj11.jpg 5th Ave에서 바라본 프릭 (왼편 건물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88. 그녀가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