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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Feb 01. 2018

파리의 사라진 코끼리 분수

La Fontaine de l’Elephant de la Bastill



사라진 코끼리 분수는?


바스티유 광장에 서 있던 코끼리 분수(위키미디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1862년)’에는 꼬마 혁명가(?)가 등장한다. 이름도 '신문팔이 소년'이란 뜻의 가브로쉬(Gavroche:불어 발음은 개브호쉬)다. 

우리는 이 꼬마 혁명가를 들라크루와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년 작)'에서 여주인공 옆에 양 손에 권총을 들고 있는 소년이라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실은 들라크루와의 그림을 본 빅토르 위고가 그림 속의 소년을 가브로쉬의 이미지로 염두에 두고 쓴 것이라고 한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Eugene Delacroix,루브르

어찌 되었건 소설 속에서 그의 은신처로 묘사되었던 곳이 바스티유 광장에 서 있던 이 코끼리 분수대였다.  

최근 리메이크된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도 배경에 코끼리 분수가 나오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사라지고 볼 수가 없다.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분수대까지 알 필요가 있겠냐만은 파리의 책방이나 부키니스트(https://brunch.co.kr/@cielbleu/11 참조)에서는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파리의 대표적 옛 모습이다.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파리에는 그들의 옛 모습을 마치 지금 공유하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파리가 우리에게 주는 보너스가 아닐까 싶다. 보너스는 받고 가는 게.


파리의 다른 개선문(https://brunch.co.kr/@cielbleu/12 참조) 들을 찾아 나섰을 때와 같은 심정으로 가브로쉬의 은신처였던 코끼리 분수 이야기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마레를 지나 4구와 12구의 경계에 있는 바스티유 광장(Place de la Bastille)으로 가야 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발원지였던 바스티유 감옥이 있었던 바스티유 광장에는 현재 1830년 7월 혁명에서 숨진 이들을 기리는 7월 혁명 기념탑(July Column)이 우뚝 서 있다.



*7월 혁명(1830년 7월 27일-29일)

1830년 7월, 3일 동안 일어난 혁명으로 샤를 10세의 왕정 강화 정책에 반대하는 혁명파에 의해 주도되었다. 혁명 파였던 루이 필립을 왕좌에 앉히게 되나 그의 무능으로 후에 2월 혁명 <1848년 2월 22일-24일:루이 필립이 쫓겨나고 나폴레옹의 조카가 나폴레옹 3세(https://brunch.co.kr/@cielbleu/19 참조)로 즉위하게 된 혁명이다>의 도화선이 된다.*



이 기념탑은 프랑스 건축가 장 앙투앙 알라부안(Jean-Antoine Alavoine:1778-1834)의 디자인으로 1840년에 완성되었다. 방돔 광장(Place Vendome)에 세워진 탑(44m)과 유사한 모양이지만 크기 면으로는 조금 높고(47m) 크다. 


7월 혁명 기념탑, 방돔 컬럼, 로마에 있는 트로쟌 컬럼(좌로 부터)



*방돔 컬럼(Vendome Column)

1805년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나폴레옹의 명으로 세워진 이 기둥은 루브르의 초대 관장이었던 드농의 지휘 하에 완성되었다. 로마에 있는 'Trajan Column'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이 기둥은 1810년 8월 15일 나폴레옹의 생일에 맞춰 완공되었다. 로마의 5 현제 중 한 사람인 트라야누스의 기둥을 모델로 하여 만들었다는데서 로마제국을 흠모하던 나폴레옹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로마의 5 현제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불리는 로마 제국 최고의 전성기를 지배했던 5명의 현명한 황제를 이른다. 네르바(Nerva), 트라야 누스(Trajan), 하드리아누스(Hadrian),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그들이며 AD96년 원로원 대표로 황제에 오른 네르바를 시작으로 200여 년 간 로마의 번영을 이끈 이들이다.*




7월 혁명 탑이 세워지기 전에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 바로 코끼리 분수다. 파리와는 좀 안 어울리는 듯한 이 코끼리 분수도 역시 나폴레옹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디자인은 7월 혁명 탑과 같은 건축가인 알라부안이 담당했으며 1810년대에 완성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코끼리 모양이었을까?

예부터 코끼리는 왕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사랑했던 퐁텐블로(Chateau de Fontainebleau) 성에 가면 왕가를 상징하는 코끼리 벽화를 볼 수 있다.


퐁텐블로 성의 코끼리 벽화

코끼리 동상은 원래는 동(bronze)으로 만들려 했으나 나폴레옹의 전쟁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바람에 재료가 불충분하여(당시에는 전쟁에서 노획한 대포를 녹여 재료로 사용했다.) 석고(plaster)로 만들었다. 설치된 후에는 거리의 부랑자나 쥐가 꼬이기 시작하여 청결상의 문제 등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았다고 한다. 급기야는 철거되고 그 자리에 현재의 7월 기둥이 서게 된 것이다.


코끼리 분수가 사라지고 7월 혁명 기념탑이 우뚝 서 있는 바스티유 광장 옆 보도에는 바스티유 감옥의 망루 자리가 지나는 이들의 발 밑에서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보도에 남아 있는 원형의 바스티유 감옥 망루 흔적


<바스티유,1789>,Jean-Pierre Houel,프랑스 국립 도서관소장,  이곳이 바스티유 감옥이었음을 알리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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